의 작가 김형경은 소설 말미에서 베이비 붐 시절(60년대)에 태어난 여성들의 고뇌를 섬세하게 짚고 있다. 엄마처럼 살기는 싫은데 새로운 역할모델은 없는. 두달째 손때만 묻혔던 이 소설을 389호 표지이야기 ‘여자의 성공’을 쓴 다음에야 겨우 다 읽었다. 미리 읽고 기사를 썼더라면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연말에 멀리 있는 한 선배가 전화를 걸어왔다. “기사에 너무 날이 서 있는 것 같아. 남자들도 알고보면 불쌍해.” 내가 그를 찾는 게 편하지만 매번 그로부터 안부 연락을 받는 쪽이다. 기자생활 초기에 나는 그를 열심히 따라 배우기도 하고, 절대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결심하기도 했다. 애증의 대상이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건대 아주 훌륭한 역할모델이었던 것 같다.
여성의 역할모델은 꼭 여성일 필요는 없다. 내 경우에도 그랬다. 한데 직장생활을 하면 할수록 나는 ‘여성’에 목마르다. 베이비 붐 세대가 아닌 여성들이라도 자신을 비출 만한 참고대상은 항상 아쉽다. 당장 만 해도 여기자는 단 두명. 유독 징징대는 성품이라 이 문제에 예민한 것일까?
편집장도 남자, 팀장 네명도 모두 남자이다. 훌륭한 선배들이지만 심한 불균형이다. 물론 이런 질문을 받을 수 있다. 회사가 당신을 여자라는 이유로 구박했어? 남자들이 많은 게 취재와 기사작성에 무슨 방해가 된다는 거지? 존재 그 자체로 마이너리티인 것이 불행은 아니지만 몹시 불편하다. 특정 남자들을 적대시하려는 게 아니다. ‘사회적 성공’을 열망하기 때문도 아니다. ‘사회적 생존’의 필수조건이기에 하는 말이다. 정치권에 대고 할당제를 말할 자격이 에 있을까. ‘여자의 성공’은 그래서 다분히 역설적인 이유로 탄생한 기획이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사회생활 초기 내가 속한 조직에 여자가 많지 않다는 데 대한 ‘선택받은 자’로서의 은근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어리석게도 내가 잘나서 사랑받는 줄 알았다. 회사를 옮겼지만 여전히 여자는 적다. 철이 들고나니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다. 여자가 적은 조직풍토가 나를 위축시키고 발목을 잡는다는 것을. 심재명씨의 사회생활 초기 경험담을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취재중 만난 각 분야의 여성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이는 성주인터내셔널 김성주 대표와 긴급구호가 한비야씨였다. 김 대표는 이른바 부잣집 딸로 태어나 유학까지 마친 좋은 조건의 여성이었다. 한비야씨는 혼자 힘으로 돈을 벌며 대학을 마쳤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가진 것 하나없이 인생항로를 확 바꾼 여성이었다. 전혀 다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갖고 있을 듯한 이들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걸스, 비 엠비셔스!”(여성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이 말을 나와, 갈팡질팡하는 나를 밀어주고 당겨주는 소중한 동료 김은형 기자, 그리고 독자들께 전하고 싶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윤석열, ‘사형’ 훈장으로 여길 것”…서울대 로스쿨 교수 경고
![[단독] 김건희 메모 “나경원 머리 높이지 마”…국힘 전당대회 개입 정황 [단독] 김건희 메모 “나경원 머리 높이지 마”…국힘 전당대회 개입 정황](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112/53_17682232429106_5417682227122231.jpg)
[단독] 김건희 메모 “나경원 머리 높이지 마”…국힘 전당대회 개입 정황

사형 구형 순간 윤석열, 머리 내저으며 웃음…이전까지 여유만만

특검, 윤석열에 사형 구형…“반성 없어, 중형 선고돼야”

특검, 윤석열에 사형 구형…“헌법 수호 책무 져버려”

특검, 김용현에 무기징역 구형…“내란 설계·운용 핵심”

‘서부지법 폭동 배후’ 혐의 전광훈 구속

특검, 조지호에 징역 20년 구형…“내란에 적극 가담”

트럼프 “쿠바에 석유∙자금 지원 더는 없다”…쿠바도 강경 대응

“집 가서 뭘 하겠냐”던 윤석열, 추가 구속했다며 재판부 기피 신청




![[단독] 서울~평양~베이징 고속철도 건설 등…이 대통령, 시진핑에 4대사업 제안 [단독] 서울~평양~베이징 고속철도 건설 등…이 대통령, 시진핑에 4대사업 제안](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113/53_17682661160943_20260113500742.jpg)
![[단독] 서울시가 세운3-2·3구역 용적률 올리자, 한호건설 예상수익 1600억→5200억원 [단독] 서울시가 세운3-2·3구역 용적률 올리자, 한호건설 예상수익 1600억→5200억원](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109/53_17679679801823_20260108503886.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