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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스, 비 엠비셔스!

등록 2002-01-02 00:00 수정 2020-05-02 04:22

의 작가 김형경은 소설 말미에서 베이비 붐 시절(60년대)에 태어난 여성들의 고뇌를 섬세하게 짚고 있다. 엄마처럼 살기는 싫은데 새로운 역할모델은 없는. 두달째 손때만 묻혔던 이 소설을 389호 표지이야기 ‘여자의 성공’을 쓴 다음에야 겨우 다 읽었다. 미리 읽고 기사를 썼더라면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연말에 멀리 있는 한 선배가 전화를 걸어왔다. “기사에 너무 날이 서 있는 것 같아. 남자들도 알고보면 불쌍해.” 내가 그를 찾는 게 편하지만 매번 그로부터 안부 연락을 받는 쪽이다. 기자생활 초기에 나는 그를 열심히 따라 배우기도 하고, 절대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결심하기도 했다. 애증의 대상이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건대 아주 훌륭한 역할모델이었던 것 같다.
여성의 역할모델은 꼭 여성일 필요는 없다. 내 경우에도 그랬다. 한데 직장생활을 하면 할수록 나는 ‘여성’에 목마르다. 베이비 붐 세대가 아닌 여성들이라도 자신을 비출 만한 참고대상은 항상 아쉽다. 당장 만 해도 여기자는 단 두명. 유독 징징대는 성품이라 이 문제에 예민한 것일까?
편집장도 남자, 팀장 네명도 모두 남자이다. 훌륭한 선배들이지만 심한 불균형이다. 물론 이런 질문을 받을 수 있다. 회사가 당신을 여자라는 이유로 구박했어? 남자들이 많은 게 취재와 기사작성에 무슨 방해가 된다는 거지? 존재 그 자체로 마이너리티인 것이 불행은 아니지만 몹시 불편하다. 특정 남자들을 적대시하려는 게 아니다. ‘사회적 성공’을 열망하기 때문도 아니다. ‘사회적 생존’의 필수조건이기에 하는 말이다. 정치권에 대고 할당제를 말할 자격이 에 있을까. ‘여자의 성공’은 그래서 다분히 역설적인 이유로 탄생한 기획이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사회생활 초기 내가 속한 조직에 여자가 많지 않다는 데 대한 ‘선택받은 자’로서의 은근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어리석게도 내가 잘나서 사랑받는 줄 알았다. 회사를 옮겼지만 여전히 여자는 적다. 철이 들고나니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다. 여자가 적은 조직풍토가 나를 위축시키고 발목을 잡는다는 것을. 심재명씨의 사회생활 초기 경험담을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취재중 만난 각 분야의 여성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이는 성주인터내셔널 김성주 대표와 긴급구호가 한비야씨였다. 김 대표는 이른바 부잣집 딸로 태어나 유학까지 마친 좋은 조건의 여성이었다. 한비야씨는 혼자 힘으로 돈을 벌며 대학을 마쳤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가진 것 하나없이 인생항로를 확 바꾼 여성이었다. 전혀 다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갖고 있을 듯한 이들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걸스, 비 엠비셔스!”(여성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이 말을 나와, 갈팡질팡하는 나를 밀어주고 당겨주는 소중한 동료 김은형 기자, 그리고 독자들께 전하고 싶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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