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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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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빤’ <한겨레21>

등록 2013-10-24 17:53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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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 있어요?”

밤 10시쯤 전화 인터뷰 말미에 이 질문을 하는데, 갑자기 사무실의 여기자들이 “뭐야~” “느끼해!”라며 야유를 보내왔다. 왜들 이러나 싶어 수화기를 잠시 떼었더니 주위가 지극히 조용했다. 다들 엿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고생 김유미(16)양의 답은 “있었어요”였다.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 영상미디어과 1학년이란다.

-은 언제부터 봤나.

=처음 접한 건 아빠를 통해서였다. 그러다 지난 7월 촛불집회에 나갔다가 특별호를 받아봤다. 빨간색 표지에 그거(국정원개색희야) 써 있던 거. 그 뒤로 꾸준히 매주 사서 보고 있다.

-‘국정원개색희야’는 어떤 느낌이었나.

=하하하하. 생각만 해도 웃음이. 우리끼리 표현으로 ‘약 빨았다’고 했다(그런 아이디어를 내다니 마약이라도 한 게 아니냐는 뜻).

-국가정보원 사건에 관심이 많은가보다.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하면 안 되는 거잖나. 정황상 개입한 것 같은데, 그럼 잘못된 거라고 본다. 부모님과도 친한 편이어서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아빠도 같은 얘길 하셨다. 학교 친구들도 옳지 못하다는 생각을 공유해서, 처음엔 촛불집회에 혼자 갔지만 나중엔 서넛이 함께 갔다.

-부모님은 어떤 분이신가.

=부모님이 젊으시다. 두 분 다 1973년생(40살)이다. 두 분이 대학 때 ‘사고’를 치셨고, 나는 1997년생이다. 그리고 18개월 된 남동생이 하나 있다. 2년 전에 아빠가 “동생 만들까” 하길래, 장난인가 싶어 나도 장난으로 “그럼 난 일찍 자야겠네”라고 했는데, 진짜로 태어났다. 이럴 줄 몰랐다.

-배신당한 기분인가.

=그건 아니고, 귀엽고 예쁜 친구가 생긴 기분이다. 부모님 모두 일을 하셔서 동생은 보통 어린이집에 가 있다. 내가 학교 끝나고 데려오기도 한다. 밥도 해서 먹이고.

-장래 희망은.

=역사나 시사 문제를 다루는 PD가 되고 싶다. 영상물을 만드는 게 재미있어서 부모님을 설득해 특성화고교로 왔다. 부모님은 ‘틀’을 벗어나는 게 위험하단 생각을 하시지만, 어떤 공부든 그만둘 생각은 없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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