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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잘 먹나요?

등록 2013-09-27 06:43 수정 2020-05-02 19:27

젓가락질의 정석은 대체 누가 만든 건가요? DJ DOC 노래처럼 젓가락질 잘 못해도 밥 잘 먹는데…. 어른들과 밥 먹을 때 젓가락질 못한다고 꾸중 들을까 노심초사하는 1인입니다. 아서왕도 울고 갈 전주의 엑스칼리버, 짬뽕 먹다 의문 생겨 문의드립니다.(독자 전주 사는 김아무개양)

답: 그녀의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위태롭게 공중을 가릅니다. 끼니를 챙겨먹을 때, 그녀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은 늘 고공농성 중입니다. “오냐오냐 사랑만 받아서” 젓가락질을 못 배웠다는 동료 기자 이야깁니다. 정석에 가까운 젓가락질을 정교하게 구사하는 저는 사실 잘 모릅니다. 날렵하게 잘 빠진 잔치국수도 파스타처럼 젓가락에 돌돌 말아 먹는 소수자들의 비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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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쇠젓가락을 한 손에 쥔 채 김치를 찢어내는 한국인들의 ‘젓가락 신공’은, 같은 젓가락 문화권인 중국이나 일본에 견줘도 세계적인 ‘레전드급’입니다. 그러나 음식문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실 젓가락을 쥐는 데 완벽한 표준은 없습니다.

다만 젓가락을 사용하는 한·중·일 삼국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기술은 있습니다. 위의 젓가락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우고, 약지와 소지로 아래 젓가락을 받친 뒤 엄지로 두 개의 젓가락을 가볍게 눌러주는 방식입니다. 중국에서 발원해 3천여 년 동안 역사를 이어온 두 개의 작대기를 요리조리 쥐어보는 과정에서 인류가 지혜를 짜모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때문에 ‘수학의 정석’ 표지에 홍성대 선생님 이름이 아로새겨졌듯 ‘젓가락질의 정석’ 저자가 누구인지 그 저작권자를 찾아내는 일이란 단언컨대 불가능할 것입니다.

국제표준화기구에도 등재되지 않은 젓가락 사용법으로 숱한 젓가락 소수자들을 울리는 도도한 움직임이 언제 비롯됐는지는 따져볼 만합니다. 한국인의 젓가락·숟가락 문화를 20년 가까이 연구한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 교수는 “얼마나 젓가락질을 잘하는지 따지는 건 일본에서 들어온 풍속”이라고 설명합니다.

원래 한국 문화에선 숟가락이 더 중요했다는 겁니다. 밥·국만으로 연명한 조선 민중에게 젓가락은 호사스러운 물건이었습니다. 잘게 썬 밑반찬을 푸짐하게 차려 먹던 양반님네나 소장하는 ‘레어템’이었던 거지요. 실제 옛 풍속화를 보면 민초들이 숟가락만 들고 밥 먹는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젓가락은 양반가의 남자가 아니면 가진 경우가 드물었고 양반 여성들도 숟가락으로만 밥을 먹었습니다.

반면 숟가락을 쓰지 않는 일본에서는 젓가락 사용법이 정교하게 발달했습니다. 근대화 이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젓가락질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것도 일본이고, 최근 젊은 엄마들 사이에 유행하는 젓가락 교정기를 발명한 것도 일본이거든요. 일제시대 이후 조선에서도 외식업과 근대적 위생관이 발달하면서 젓가락이 각광받게 됐다는 게 주영하 교수의 추정입니다. “너 밥상에 불만 있냐”고 참견하던 옆집 아저씨는 일본에서 건너왔을 확률이 높습니다.

젓가락 소수자 여러분, 어른들이 또 “젓가락질 못 배웠냐”고 핍박하면 당당히 이야기하세요. “한국인의 얼은 숟가락에 담습니다”라고. 손발이 오그라들지도 몰라요.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연재를 마칩니다. 2008년부터 5년간 손가락질당할 4차원 질문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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