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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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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기를 왜 들어요?

등록 2013-07-23 14:38 수정 2020-05-03 04:27
제 옆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지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나, 아무런 의구심 없이 보고 듣고 행하는 것에 대해 뜬금없이 ‘아해’처럼 질문하는 어른. 때는 지난 런던올림픽, 장미란 선수가 등장하는 여자역도 경기가 한창이었습니다. 여러 선수가 비장한 표정으로 심각하고 경건한 자세를 잡고 끙끙대며 역기를 들어올렸습니다. 웃음과 울음, 기쁨과 비통함이 이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저거 왜 들어야 해?” 그러게요. 왜 역기를 들고 공을 정해진 구멍에 넣어야 하는 걸까요?(독자 파토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대한역도연맹 누리집을 들여다봤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나 그 이전부터, 돌 과 같은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는 경기가 있었답니다. 한편 중세에 접어들면서, 독일에서는 힘자랑으로 돌 던지기가 있었고요. 근대적인 역도 경기가 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800년대부터…’ 뭐 대충 이런 식으로 나갈 줄 아셨나요?

파토스님 질문을 보면서,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네요.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나 갈 무렵이었습니다. 진도도 다 나갔고, 딱히 할 것도 없 고. 어느 학교에나 한 분쯤 계시는 수학교사 ‘매드도그’ 선생께서 간만에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오늘 하루는, 마, 어떤 질문을 해도 괜찮습니다. 궁금한 거 있 으면, 뭐든 물어도 좋겠습니다. 자, 1번~!”

교실 맨 앞부터 차례로 한 놈씩 일어나 공손히 질문을 하 고, 용케 맞지 않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시간은 그렇게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 었지요. 이윽고 평소 ‘난지도’란 별명으로 통하던 녀석 차례가 됐습니다. 갑자기 교실 안에 긴장감이 흐릅니다. 다들, 뭔가 일이 터질 것이란 걸 직감했기 때문이 죠. 겨울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교실에선 곧 먼지가 날 겁니다.

“근데, 지구는 왜 돌아요?” “지구는 왜…, 나오세요. 이리 나오세요. 이리, 이리.”

역도는요, 무거운 역기를 들어올려 그 중량을 겨루는 경기거든요. 체급을 나눠 겨루는데요, 들어올리는 방식에 따라 용상과 인상, 그리고 두 무게를 합산한 것 으로 승패를 가려요. 역기를 왜 들어야 하냐고요? 그게, 경기 규칙이거든요. 올 림픽에 나간 선수가, 무대에 올라 역기를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으면, 그거 많 이 이상한 거거든요.

참고로 장미란 선수는요, 중3 때 모든 다이어트 방식에 실패한 뒤 역도를 시작했 다고 하더라고요. 지난 런던올림픽 때 장 선수 어머니 이현자씨가 하신 말씀이에 요. 장 선수는요, “그때부터 한동안 엄마하고는 말도 안 했다”고 하더라고요.

공을 정해진 구멍 또는 바구니 또는 문 안으로 집어넣는 이유요? 그런 걸 ‘구기 종목’이라고 하는 건 잘 아시잖아요. ‘구멍’에 넣는 대표적인 종목은 골프고요, ‘바구니’에 집어넣는 것으론 농구가 있지요. ‘문’ 안으로 밀어넣는 건 축구를 떠 올리시면 되고요. 각각 왜 그래야 하느냐고요? 그게, 경기 규칙이거든요.

제 앞자리에요, 한때 잘나가는 스포츠평론가였던 ㅅ형이 앉아 있는데요. 그 형 한테도 물어봤거든요, 문답이 대충 이런 식이었어요.

“역기는 왜 들어?” “역기가 거기 있으니까.”

“공은 왜 구멍에 넣는 거지?” “재밌거든.”

대답이 충분히 됐지요? 잘 아시잖아요. 등산을 하는 이유는요,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인 거거든요. 여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컴퓨터 화면 앞에 뽀얗게 먼지 가 내려앉고 있네요. 비 오는 날과 먼지의 상관관계, 파토스님도 잘 아시지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는 거거든요.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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