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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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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온 세상에 평화를

등록 2012-10-24 17:21 수정 2020-05-03 04:27

전임 출제위원장의 말을 순진하게 믿었습니다. 그는 당첨자 추첨과 정리가 “반나절이면 끝난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물경 390명의 당첨자를 뽑아야 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퀴즈큰잔치인 것을 고려해 ‘한나절쯤 걸리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입니까. 행운의 당첨자를 추려내고, 오답자를 포함해 또 한 번 기회를 드리는 패자부활전 추첨과 명단 정리를 마치고 나니 새벽 4시입니다. 애타게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던 아내는 소파에서 혼절했습니다.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찬 소주를, 아니 미지근한 컵라면 국물을 부어 넣으며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중입니다.
그러다 문득 회의실 탁자에 수북이 쌓인 응모 답안지에 눈길이 갑니다. 뿌듯합니다. 역대 가장 많은 독자님들에게, 전무후무한 규모의 상품이 돌아갑니다. 무엇보다 이번 한가위 퀴즈큰잔치에서는 패자부활전이라고 하는 ‘퀴즈적 안전망’을 마련했습니다. 정답을 맞혔지만 당첨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분들과, 안타까운 오답을 보내주신 분들에게도 다시 한번 당첨의 기회를 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백지나 다름없는 상태의 답안지를 제출하신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의 박성구 독자님, “이제훈 편집장님이 캐리커처만큼 잘생겼나요”라는 다소 생뚱맞은 질문을 남겨주신 부산 사상구 학장동의 서막녀 독자님. 패자부활전에서 당첨되셨습니다. 네 번째 고개 우리말 짜맞추기 퀴즈의 가로 45번 ‘지저깨비’를 ‘진저깨비’라고 잘못 적어 상품을 받지 못하게 된 광주 북구 임동의 채승연 독자님도 마지막에 부활하셨네요. 크고 작은 선물의 주인공이 된 모든 분들의 가정에 풍성한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이제 모든 짐을 내려놓고 취재 현장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그런데 이번 퀴즈큰잔치의 규모와 그 업무량에 놀란 차기 위원장이 ‘퀴즈 민영화’를 추진하다가 딱 걸렸다는 첩보가 전해집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골방에서 관련자들의 비밀 회동도 열렸답니다. 어떤 인사는 “정치적 임팩트가 매우 큰 사안”이라며 민영화 발표의 형식과 시기에 대한 치밀한 계획을 주문했다네요. 에라이~. 그래도 걱정하진 마세요. 꼼꼼한 꼼수가 세상에 드러나버렸으니 내년은 물론 앞으로도 ‘퀴즈 민영화’는 없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감사의 말씀 덧붙입니다. 위원장으로서 작은 자부심이라도 허락될 수 있다면 그건 온전히 출제위원회 산하 정은주 보급투쟁위원장, 경품 추첨 소위의 오승훈·김성환 위원의 몫입니다. 위대한 독자의 승리를 일구어낸 그대들 앞날에 영광 있으라!
출제위원장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당첨자 명단을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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