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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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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왜 집 밖에서 잠을 더 잘 잘까요?

등록 2012-06-27 10:59 수정 2020-05-03 04:26


요즘 태어난 지 5개월 된 조카를 보는 행복감에 푹 빠져 있는데요. 조카가 집 안에서는 또릿또릿하게 눈을 뜨고 잘 놀다가도 유모차를 태워서 밖에 나가면 금세 잠이 들더라고요. 바깥은 집 안보다 더 시끄러운데 말이죠. 이유가 궁금합니다.(석연화)
정용일 기자

정용일 기자

여기 또 질투 나는 ‘조카바보’가 있으시네요. 요즘 솔로들 모이면 어김없이 조카 사진들을 놓고 ‘누가 더 예쁘나’ 배틀이 벌어집니다. 제가 볼 땐 다 비슷비슷한데 말이죠. 조카가 없어 늘 예선 탈락인 저는 대화가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요. 흑흑.

이번 기회에 육아에 대해 공부해서 다음 대화에선 생색 좀 내보렵니다. 일단 아기가 정말 외박을 좋아하는지부터 알아야겠습니다. 엄마에게 다정하게 물었습니다. “나도 아기 때 밖에서 더 잘 잤어?” 대답에 부끄러워집니다. “아니, 넌 젖 물리고 아침 9시에 재우면 오후 5시는 돼야 깨어나서 밖에 나가고 말고가 없었어.”

하필 이럴 땐 인터넷 검색도 별 도움이 안 되네요. 지난호에 아들 윤재(5)와 다정하게 노는 사진이 실린 옆자리 오승훈 기자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아빠 기자, “그랬던 것도 같고~”. 실망하던 순간 돌아온 대답에 입이 떡 벌어집니다. 잠투정이 심했던 윤재가 유모차나 자동차 안에서만 자니까 하루는 와이프가 아기를 재우려고 음주운전까지 했다나 뭐라나.

이쯤 되니 이제 저도 이유가 정말 궁금해집니다. 서울 고은아이소아과 김미화 원장에게 물었습니다. 아기들은 생후 4개월을 넘기며 유희의 욕구가 생긴다고 합니다. 벌써 놀고 싶은 거죠. 그런데 이거 몸이 안 따라줍니다. 주체적으로 앉고 기어다니기는커녕 목을 겨우 가눌 정도니깐요. 안아주고 놀아달라고 엄마에게 눈짓·발짓을 합니다. 그런데 엄마는 자꾸 먹이고 잠을 자라고만 하네요. 사실 아기의 마음을 알아챈 엄마들도 이미 7~8kg 된 아기를 집에서 항상 안아서 놀아주기엔 벅찹니다.

그러니 어쩌다 한번 찾아온 외출이 아기는 얼마나 좋을까요. 뱃속에 있을 때처럼 엄마의 품에서 따뜻한 체온과 심장박동을 느끼다 보면 안정감에 금세 스르르 잠이 듭니다. 유모차나 자동차에서 느껴지는 규칙적인 진동도 아기에겐 잠들기 안성맞춤입니다. 사실 1초에 2번 정도의 떨림을 뜻하는 2Hz 진동에선 쉽게 잠에 빠지는데 이것엔 아기와 성인이 따로 없다고 하네요. 그러고 보니 고향인 제주에서 어릴 적 할머니가 갓난아이인 동생을 바닥이 둥글게 휜 ‘구덕’(바구니)에 눕혀 흔들며 “자랑(자라) 자랑~” 몇 번 해주시면 곧 잠들던데, 이런 과학의 원리가 숨어 있었네요.

아기가 밖에서 잘 자는 것처럼 보이는 다른 이유도 추측해봤습니다. 생후 5개월 정도 된 아기는 2~3시간 자고 1~2시간 놀기를 반복한다고 한답니다. 보통 엄마들이 아기가 깨어 있을 때 외출을 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잠잘 시간이 돌아온 겁니다.

이쯤에서 자신감이 붙어 욕심 한번 부려봤습니다. ‘길거리 수면 효과’를 기억했다가 나중에 엄마가 되면 꼭 써봐야겠네요, 헤헤. 이 말을 들은 이강이 서울대 교수(아동가족학)는 웃다가 “아기의 뇌가 발달 못한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3살까지는 태내기·사춘기와 함께 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기인 만큼 무엇보다 집에서 숙면을 취하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군요. 방대하고 깨알 같은 육아의 세계, 저에겐 여전히 머나먼 안드로메다네요.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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