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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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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거리인데도 왜 갈 때보다 올 때 더 짧게 느껴지나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등록 2012-02-08 15:09 수정 2020-05-03 04:26

항상 목적지로 갈 때보다 돌아올 때 시간이 더 빨리 지난 것처럼 느껴집니다. 거리는 똑같은데 왜 그럴까요? (전상규씨)

그렇게 느껴지시나요? 저는 아닌데…. ‘항상’ 그렇게 느껴지는 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주변인들에게 물었습니다. “한 번 갔던 길이라 익숙해서”라는 답이 많네요. 그러나 갈 때와 돌아올 때의 길이 같은 길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길치’이자 ‘방향치’인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답입니다. 같은 길로 오간다 해도, 갈 때는 우회전했던 길에서 올 때는 좌회전을 해야 하지 않나요? 아닌가요? 아무튼.

목적지로 가는 길에서는 ‘다시 출발지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돌아오는 시간까지 생각하다 보니 더 오래 걸리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돌아올 때는 남은 시간만 생각하니 짧게 느껴진다는 답변도 있었습니다. 나름 논리적으로 들립니다. ‘입만 살아 있는’ 고아무개 기자는 “똑같이 느껴진다. 왜 다르냐”고 했습니다. 네이버 지식in에는 “갈 때는 오르막, 올 때는 내리막”이라는 답변도 있군요. 등산을 좋아하시는 분인가 봅니다.

목적지를 향해 걷든 운전을 하든 똑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날씨와 도로 상황 등 외부 조건이 같다고 가정하면, 일반인들의 답변은 모두 ‘심리적 요인’으로 모아집니다.

심리학자께 물었습니다. ‘인지적 에너지’를 이용한 추정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전우영 충남대 교수는 “처음 가는 목적지라면, 갈 때는 친숙하지 않은데다 목적지가 언제 나타날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인지적 에너지가 더 투여되고, 인지적 에너지가 많이 소모될수록 더 오래 걸린다고 느낄 수 있다”고 하십니다. 길을 ‘쉽게’ 왔다는 것을 ‘금방’ 왔다는 것으로 느낀다는 얘기입니다.

뭔가 ‘과학적’인 이유는 없을까요?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의 설명도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상황을 예측하며 인지하는데, 처음 가는 길은 예측이 어렵기 때문에 수많은 정보 가운데 무엇을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몰라 인지하는 데 오래 걸리고, 그걸 고스란히 시간의 흐름으로 느낀다”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이미 겪은 상황이니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고,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는 데 둔감해진다는 것이죠.

‘시간 지각’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시간의 경과나 시간의 길이를 물리적 계측 수단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파악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시각은 눈으로 느끼고, 청각은 귀로 느끼는 것처럼 감각에는 각기 특유한 감각기관이 있지만, 시간을 전문적으로 느끼는 감각기관은 따로 없습니다. 결국 시간은 많은 감각기관의 종합적인 작용에 의해 지각된다고 합니다. 쉽게 얘기하면 주관적으로 느낀다는 겁니다.

주변인들의 답변 가운데 가장 근사한(?) 것은 “얼마 전부터 사귀기 시작한 애인을 만나고 돌아오셨나요, 라고 답해주세요”였습니다. 목적지가 어디인지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지 않는지 생각해보라는 거죠. 그나저나 저는 마감 시각이 닥쳐올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꼬르륵.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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