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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치 뽑으면 그 자리에 또 새치가 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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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1-11-29 15:41 수정 2020-05-03 04:26

새치를 뽑으면 그 자리에 또 흰 머리카락이 나는 건가요?(송기룡 대한축구협회 총무국장)

잔인하십니다. 겨우 머리카락 탈색 정도로 고민하시다니요. 매일 아침 욕실 바닥에 떨어진 터럭의 수를 헤아리며 깊은 수심에 잠기곤 하는 저로선 국장님이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흑모백모(黑毛白毛)’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검은 머리든 흰 머리든 두피에 붙어 계신 것만으로도 감읍해하는 남성들, 널렸습니다. 물론 국장님 고민을 폄하하는 건 아닙니다. 머리숱 많은 제 아내, 30대 초반부터 늘어나는 흰머리로 고민했습니다. 주말마다 뽑아달라 보챘습니다. 그건 노역(勞役)이었습니다. “한 올에 100원 줘.” 거래도 시도해봤지만, 돌아온 것은 “남편이 할 소리냐”는 타박이었습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동국대 일산병원 피부과의 이승호 교수께 물었습니다. 답변이 명쾌합니다. “흰머리 뽑은 데 흰머리 나는 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교수의 말씀인즉, 머리카락이 탈색되는 건 모근에 자리잡은 멜라닌 줄기세포가 수명이 다해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모근의 ‘색소 공장’이 가동을 멈추니 머리카락이 다시 나더라도 검은 색을 띨 수가 없다는 겁니다. 간단하지요?

내친김에 머리털에 대한 몇 가지 속설과 관련해 궁금증을 발동시켜봤습니다. 첫째, 흰머리는 뽑을수록 더 난다? 낭설이랍니다. 뽑아서 더 나는 게 아니라, 뽑은 만큼 다시 나는 것일 뿐이라는 겁니다. 다만 흰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빨리 자란다는 학계의 보고는 있답니다. 뽑을수록 더 난다는 건 일종의 심리적 착시 현상이란 말씀 되겠습니다.

둘째, 머리 나쁜 사람이 머리를 많이 쓰면 흰 머리카락이 늘어난다? 이건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는군요. 두뇌 활동에 부하가 걸리면 스트레스가 쌓여 ‘뉴로펩타이드’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는데, 이게 모발의 노화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답니다. 그런데 영향의 강도에 대해선 학계 의견이 분분하다는군요. 어쨌든 스트레스가 관건이란 얘기네요. 머리가 좋지 않은 사람일수록 두뇌 사용에 따른 스트레스도 클 테니 흰 모발이 많을 개연성은 충분합니다. 그렇다고 오해는 마십시오. 흰머리 많은 사람이 모두 머리가 나쁘다는 얘긴 결단코 아닙니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니까요.

아, 요즘도 아내의 흰 머리카락을 뽑아주느냐고요? 주말 노역은 지난해 끝났습니다. 뽑아도 뽑아도 잡초처럼 돋아나는 백발들을 무슨 수로 감당한단 말입니까. 아내도 포기했습니다. 요즘은 약 사다가 염색해줍니다. 숱 많은 여자 머리 염색, 이것도 만만한 일 아닙니다. 그나마 나아진 건 역(役)의 횟수가 줄었다는 정도. 이게 다 살뜰한 아내를 둔 기자의 ‘카르마(業)’입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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