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흠, 지금부터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기자 여러분은 자리를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발표할 내용은 ‘2011년 사회 교육 개정을 위한 시안’입니다. 핵심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선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에서 하나의 대단원이었던 ‘시장 기능의 한계와 정부 개입’을 통째로 뺐습니다. 왜 뺐냐고요? 흠, 불쾌하군요. 교과서 아무나 만드는 거 아닙니다. 우리라고 대충 교과서를 만들지 않습니다. 학생들에게 거짓말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기자님들처럼, 우리도 취재 다 했습니다. 그래서 봤습니다. 요즘 시장 기능에 한계가 있나요? 시장이 횡포를 부려도 정부가 개입할까요? 한 조선소가 있습니다. 대주주에겐 174억원을 배당하면서 멀쩡한 노동자 400명을 잘랐더군요. 노동자들이 살려달라고 할 때, 정부는 침묵했습니다. 시장 논리니까요. 뭐, 정부가 완전히 놀지는 않습니다. 해고 노동자들을 찾아간 시민들에게는 세금 들여 물대포를 마구 쐈습니다. 그런데, 회사 경영진에게 물대포를 쐈다는 얘기 들으셨나요? 잊지 마세요. 이게 시장 원리입니다.
그뿐입니까. 은행이 셔터문 내리고 ‘VIP’들에게만 수백억원씩 줬습니다. 정부는 몰랐습니다, 가 아니라 모르는 척했습니다. 현장에 금융감독원 관료들이 있었다는 걸 잊지는 않으셨겠죠. 시장의 이 정도 반칙쯤에 우리 정부는 개입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이렇게까지 노니까, 시장이 오히려 이래라저래라 훈수를 둡니다. 전경련 회장님은 지난 6월 기획재정부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중요한 정책 결정에서 (정부가)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순수하고 분명한 원칙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의문”이라고요. 그 자리에서 장관님은 별 말씀은 없었습니다. 뭐, “열심히 하겠다” 정도의 답만 했더군요. 우리 교과서 집필위원들, 그래서 사실 단원의 제목을 바꿔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시장 기능의 한계와 정부 개입’이 아니라 ‘정부 기능의 한계와 시장의 개입’으로 말입니다. 격론 끝에 결국 단원을 없애기로 했습니다. 시장은 신났고, 정부는 개입하지 않았다는 데는 내부에서 이견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사회책이 홀쭉해지지는 않았습니다. 빈자리에는 새 단원을 넣었습니다. 제목은 ‘경제생활과 금융’입니다. 여기 우리 교육과학기술부의 자료를 그대로 읽어드릴까요? “자산관리를 적절하게 하는 능력을 계발하기 위하여 자산관리의 원칙을 파악하고, 예·적금, 주식, 채권, 펀드, 보험, 연금 등 다양한 금융상품의 특성을 이해하고 비교한다.” 맞습니다. 살기 팍팍한 시대입니다. 저마다 살길을 찾아야죠. 우리는 ‘경매나 장물 투자 전략’도 교과서에 넣고 싶었는데, 꾹 참았다는 걸 참고로 알아두시길 바랍니다. 오늘 교과서 시안을 보고 한 언론에서 이렇게 제목을 뽑아서 소개했더군요. ‘고등학생에 펀드 굴리는 법 가르쳐… 전경련 교재인가?’ 빙고, 맞습니다. 이제야 아셨다니, 좀 늦군요. 참고로 한 가지만 말씀드리죠. 우리 집필자 가운데는 김진영 강원대 교수도 계십니다. 2008년 전경련이 발간한 인정교과서인 ‘중학교 경제’를 쓴 분이시죠. 이제 좀 분위기 파악이 되시나요?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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