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자로서 부럽다. 지난 6월30일 한국방송 기자들이 ‘기자의 로망’을 현실에서 이뤘다. 정치부 기자는 성명을 쓰는 존재가 아니라 듣고 취재하는 존재다. 그림자요, 복화술사다. 그러나 한국방송 국회팀 기자들은 해냈다. 지난 6월30일 민주당의 한국방송 ‘압박 취재’ 논평에 대한 반박 성명을 발표했다.
동업자로서 그들의 두꺼운 안면근육이 부럽다. 한국방송 기자들은 “취재할 때 취재기자 수와 카메라 대수까지 동의를 받으라는 것인지 어안이 벙벙할 뿐”이라고 밝혔다. 이론적으로는 옳다. TV 수신료 인상을 논의하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회의실 안팎에 모두 6대의 한국방송 카메라가 왔다고 한다. 한국방송 기자들의 항변은, 적어도 담론 수준에서는 옳다. 다만 수신료를 내는 시청자는 되물을 것 같다. ‘한국방송 정치부가 지난 1년간 국회 안팎에서 카메라 6대를 동원해 취재한 사건이 뭔지’ 말이다. 국회 국토해양위 4대강 공방 때도, 전·월세 상한제 공방 때도 안 그랬다. 한국방송 카메라 6대가 한데 모여 시청자의 아픈 곳을 비췄던 기억이 당최 떠오르지 않는다.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 해고 무효 1심 판결 소식은 2009년 11월13일 단신이었다. 그때 한국방송은 ‘노종면’이라는 이름 석 자도 말하지 않고 ‘YTN 기자’라고 보도했다.
동업자로서 그들의 기억상실증이 부럽다. 나를 포함한 수십 명의 동료 기자들이 지켜본 지난해 사건을 잊었나 보다. 2010년 8월17일 민주당 문방위 의원들이 정론관에 섰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천안함 유족에게 막말한 동영상을 이 입수하고도 ‘내압’에 의해 불방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제작진도 “특종 보도를 준비 중이던 제작진에게, 소속 국장에 의해 아이템이 엎어지는 KBS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고 별도 성명을 냈다.
성명을 읽고 복도로 나온 민주당 의원들 앞에 한국방송 정치부 전종철 기자가 섰다. 그는 두 의원에게 “(성명이) 사실과 다르다. 이렇게 성명 내면 국민이, KBS가 조직원을 억누른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말했다. 15분간 설전이 벌어졌다.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최종원 의원이 전종철 기자에게 “고만하시라”고 했지만 전 기자는 “(동영상을 보도하지 않은 것은) 조정의 문제였다. 누른 게 아니다”라고 대꾸했다. 최종원 의원이 “KBS가 공영방송다운 짓을 했어야지!”라고 외쳤다. 서 있던 다른 한국방송 정치부 기자가 “짓이라니요!”라고 받아쳤다.
백보 양보해 의원들의 추측성 성명이라면 애사심에서 항의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같은 한국방송 동료인 제작진이 성명을 냈던 터다. 그날 한국방송 정치부 기자들은 홍보실 직원이었다. 그들의 기억상실증이 부럽다. 그들은 아마 과거의 뼈아픈 낙종도 금방 잊을 게다. 성명서 마지막 문장이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사실상의 비문이라는 사실도 금방 잊을 테니, 참 좋겠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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