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오늘은 내가 쏜다’는 말의 유래는?

[독자와 함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등록 2011-02-23 15:54 수정 2020-05-03 04:26

<font size="4"><font color="#C21A8D">Q.</font></font> <font color="#C21A8D">40대 주부입니다. TV를 보다 보면 술이나 음식을 사겠다는 말을 ‘오늘은 내가 쏜다’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나름의 상상으로는 거대한 조직(?)에서나 황야의 무법자들이 승리의 뒤풀이로 사용했을 법한 속어인 듯한데, 유래가 궁금합니다.(박영희)</font>

<font size="4"><font color="#008ABD">A.</font></font>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조카에게 ‘쏜다’는 말뜻을 아는지 물었습니다. “음식 먹고서 혼자 돈 내는 거잖아”라고 말합니다. 웃습니다. ‘삼촌이 웬일로 한 방 쏘려나’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냥”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냥 전화를 끊었습니다. 공시적으로 2011년, 적어도 초등 3년생부터는 서로 쏘고들 다닙니다. 컵떡볶이, 컵쫄면을 쏩니다.

통시적으로 추적해봅니다. 1995년 대학 입학 당시 제가 누구에게 쏜 기억이 없습니다. 하지만 2년 뒤 드라마 에서, 2000년 ○○카드 광고에서 ‘총질’이 포착됩니다. 탤런트 김소연씨가 “난 오늘 여왕이 된다”며 ○○카드 광고가 시작됩니다. 광고는 “(카드를 쓰는) 매월 1120명(의 여성)에게 여왕 품위유지비를 준다”고 말합니다. 김소연씨가 외칩니다. “오늘은 여왕이 쏠게!” 웃으며 손권총을 만들어 보입니다.

드라마·광고는 ‘오늘’을 비추고 ‘내일’을 선도합니다. 거칠게 추적하자면 ‘쏘다’의 유래는 1990년대 후반에서 찾아볼 수 있겠습니다. PC통신과 채팅이 유행하며 인터넷 신조어가 만들어졌지요. 모임은 잦아졌고 또 ‘번개’처럼 빨라졌습니다.

결국 2001년 한 일간지의 ‘문화신조어’라는 꼭지에 ‘쏘다’가 등장합니다. “음식점 계산대 앞에서 서로 돈을 내려고 지갑을 서둘러 꺼내는 것을 지갑을 ‘뽑는다’고 표현했고, 이것이 마치 서로 빨리 총을 뽑으려는 서부극을 연상시켜 그 내용물인 돈을 내는 것이 ‘쏘는’ 것이 되었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는 설명이 몸통을 차지합니다. 말의 확산은 역시 인터넷을 통했을 거라 지적합니다.

조금 억지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서구 문화와의 상관성도 충분합니다. 영어에는 이미 ‘pay the shot’이란 숙어가 있습니다. shot은 shoot(쏘다)의 명사형·과거형인데, 말 그대로 “한턱 쏜다”로 통용됩니다. 다만 위 설명처럼 의태어 꼴로 만들어졌다기보다, 위스키 한 잔(shot) 값을 대신 낸다는 뜻이 점차 확장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불쑥 손을 내미는 행위를 ‘shoot hand out’으로 표현하기도 하므로, 지갑을 꺼내려는 행위가 ‘shoot’으로 그려질 수도 있겠습니다. 지역을 떠나, 총을 꺼내는 듯한 유사 행위에 두루 적용될 수 있는 용언이지요.

정치인이나 사업가들은 난데없이 ‘총알’이 떨어졌다고도 합니다. 자금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들이 누군가를 위해 돈을 쓸 때 “쏜다”라고 표현하는 건 당연해 보입니다.

우리의 언어생활은 풍족해진 건가요. “쏘지 마”란 말이 흔한 나라는 “쏘다”로 인한 피해가 잦다는 얘기입니다. 총기 소유가 가능한 미국이 그렇지요. “돈트 슛, 돈트 슛!” 우린 그렇지 않습니다. 늘 그럽니다. “오늘도 네가 쏴라!”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E7E7E2"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7F6F4"><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

<font color="#1153A4">*독자 여러분의 질문을 받습니다. 손가락질당할까 묻기 두려웠던 4차원 질문,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던 이 세상 최초의 질문, 부지런히 발로 뛰어야 답을 얻을 수 있는 질문을 han21@hani.co.kr로 보내주십시오.</font>
</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