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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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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래된 물건] 딸에게 준 반짇고리

등록 2008-09-04 00:00 수정 2020-05-03 04:25

▣ 라벤더향(dltmrb)


꼭 30년 전 대학을 마치고 직장에 처음 나갈 무렵의 일이다. 어느 날 퇴근해보니 엄마가 풀을 쑤어 둥근 대바구니 위에 하얀 한지를 덧바르고 계셨다. 며칠 전 손님이 한과를 담아 오셨던 대바구니를 이용해서 뭔가 만드시는 모양이었다. 그때는 그런 바구니를 구하기도 쉽지 않던 시절이고 재활용 차원에서 작업하시는 듯한데, 뭐 하시냐고 물으니 그냥 빙그레 웃기만 하셨다.

한지 바른 바구니는 그늘에서 가슬가슬 잘 말랐다. 안에 적당히 칸을 나누어 다음날에는 한지를 한 겹 더 바르고, 그렇게 아홉 번 한지옷을 입은 대바구니는 전혀 새로운 공예품으로 태어나고 있었다.

엄마의 손길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바구니 안팎에 노란 치자물이 곱게 물들고, 색지가 태극 모양으로 오려져 가운데에 붙여지고, 다시 주역의 4괘 문양이 뚜껑과 몸체 곳곳에 어우러졌다.

햇빛 좋은 가을날, 아홉 번째 칠을 마무리하신 엄마는 허리를 펴며 말씀하셨다. “자, 이걸 좀 봐라. 네 혼수로 장만한 반짇고리다. 엄마가 정성껏 만들었으니 돈 주고 산 거 아니라고 허술히 보지 말고 잘 간수해라.”

세상이 옛날 같지 않아 바느질일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시집가면 가족들 바느질 치다꺼리는 생기게 마련이니, 평생 내가 가까이 해야 할 물건 중에 빠질 수 없는 반짇고리를 엄마는 이렇게 손수 만들어주신 것이다.

그 반짇고리가 이제껏 내 방 윗목에 자리하고 있다. 솔직한 그때의 내 심중은 거의 무감흥이었다. 어느새 실용을 표방한 물질 만능 풍조에 젖어 있었나 보다. 하나 사면 되지, 만드느라 괜한 고생 하시네 싶었다.

그러나 세월의 힘이란! 막상 딸을 시집보낼 나이에 이르고 보니 엄마의 정성이 담뿍 담긴 반짇고리로 자꾸만 눈이 간다. 늘 자식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셨던 어머니께 받은 사랑을 나는 얼마나 돌려드리고 있는가, 나는 딸아이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라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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