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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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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래된 물건] 어른이 돼도 내 친구, 둘리

등록 2008-08-29 00:00 수정 2020-05-03 04:25

▣ 김광규 경기 부천시 상동


중고등학생 시절 학교 근처 만화가게 단골이었다. 그때 나는 이현세, 황미나, 강수정 등 특정 작가 몇 명의 작품만 보고 또 보고 했는데, 특히 김수정의 만화를 좋아했다. 김수정의 만화는 등 동화적인 캐릭터와 내용 때문에 보통 어린이용으로 생각한다. 당시 친구들도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둘리’를 보냐”고 놀리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나는 그 이야기들이 너무 재미있었고 시험과 성적, 입시로 쌓이는 스트레스를 김수정 만화로 해소할 수 있었다. 또 김수정 만화에는 학원물도 여럿 있는데, 나보다는 윗세대 선배들 시절을 배경으로 한 것이지만 참 재밌게 보았다.

당시는 만화가 단행본으로 발행돼 일반 서점에서 판매하는 것이 흔하지도 않았고, 만화는 사지 않고 가게에서 빌려 본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만화책을 소장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우연히 김수정의 를 갖게 되었다. 만화가게에서 몇 권을 빌려서 보고 또 보고 그러다가 반납 기일이 한참 지나서 ‘큰일 났다, 어쩌나’ 하면서 반납하러 갔는데 그새 만화가게가 폐업을 했던 것이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학교 근처와 서울 동대문의 헌책방들을 드나들면서 눈에 띌 때마다 김수정의 작품을 사 모았다. 소금자, 오달자, 고도리, 요요, 아리아리 동동, 볼라볼라, 자투리반의 오갑희, 소룡이 등 김수정 작품의 주인공들은 아기엄마가 된 지금도 지치고 피곤할 때, 우울할 때, 아무 생각 없이 멍할 때 손에 찾아들어 나에게 웃음을 준다. 1980∼90년대 그때 그 시절 생각과 함께 마음 한쪽이 뻐근해지는 감동을 주기도 한다.

이후 김수정 만화 가운데 고급 양장본으로 애장판이 나온 것도 있지만, 그와 별개로 이 20세기 만화책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10대의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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