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한림
내 나이 스물셋, 이 녀석 나이는 스물일곱.
나보다 나이 많은 이 선풍기는 나의 보물이다.
매년 무더운 여름, 시원함을 주기엔 2%, 아니 20%쯤 모자란 바람 세기와 작동할 때마다 덜덜거리는 소리(정지가 아닌 회전 동작에선 더더욱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소리를 낸다)를 감수해야 할 때면 “에잇, 이제 그만 갖다버리자!” 하다가도, 또 해마다 모셔두는 이유가 있다. 바로 현대식 선풍기가 갖지 못한 이 녀석만의 ‘미덕’이 있기 때문. 지난해부터 우리 집 여름을 책임지는 최신식 선풍기는 바람도 세고 조용하지만, 바람이 센 만큼 오래 쐬면 머리가 아파오고, 예약 타이머는 1시간·2시간·4시간밖에 선택할 수 없다. 반면 30년 가까이 된 이 애물단지 선풍기는, 10분에서 60분 사이를 자유롭게 선택 가능하도록 태엽처럼 돌려 설정하는 타이머를 탑재했다. 여기다 바람이 순하고 약해서 여름밤 몸이 쉬이 차가워지는 잠자리에서 틀어놓기에 제격이다.
또한 이 유용함은 우리 가족 중에서도 나만이 누릴 수 있으니, 바로 베개에 머리를 놓았다 하면 잠들어 업어가도 모르는 무신경과 꽉 막힌 잠귀 덕분에 덜덜덜덜 소리내는 선풍기의 몸부림쯤이야 자장가 삼아 잠들 수 있는 까닭이다.
모든 게 편리성, 효율성, 신속성만을 향해 쉼없이 달려갈 때, 이 녀석의 존재는 잊혀져가는 여유로움과 인간성을 생각해보게 한다. 무조건 발전, 개발만을 외친다고 해서 우리 삶이 더 행복해지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이 선풍기만 보더라도, 자주 고장나고 교체되는 요즘 것들보다 오히려 꾸준한 근성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올해도 나보다 더 나이 드신 ‘귀하신 몸’을 창고에서 꺼내 방으로 들여놓으며 이런 단상에 잠시 빠져본다. 이번 여름도 잘 부탁해!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윤석열, 연락 안 받는 사연 [그림판]
군복 벗은 노상원, ‘김용현 뒷배’ 업고 장군들 불러 내란 모의
“닥쳐라” 김용원이 또…기자 퇴장시킨 뒤 인권위원에 막말
[단독] 여인형 “윤, 계엄 사흘 전 국회에 격노…작년부터 언급”
[단독] 국회 부수고 “헌법 따른 것”…계엄군 정신교육 증언 나왔다
한덕수, 내란·김건희 특검법엔 시간 끌며 눈치 보나
[단독] 백해룡의 폭로… 검찰 마약수사 직무유기 정황 포착
‘윤석열 색칠놀이’ 비판 시민 용산어린이정원 출입 거부는 “위법”
[속보] 남영진 전 KBS 이사장, 윤석열 상대 해임취소 소송 승소
권성동·한덕수, 롯데리아 ‘권’모술‘수’ 세트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