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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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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706호를 읽고

등록 2008-05-02 00:00 수정 2020-05-03 04:25
출마자가 본 ‘아파트 투표’

이번 총선에 경남 창원시 갑구에 진보신당 후보로 출마한 독자 최재기입니다. 이번호에 전체 제목으로 ‘아파트 투표’라고 뽑아놓고 겨우 한 꼭지 분석 기사로 되겠소? 나는 진보적 정치 진영이 보수주의자들의 개발논리를 이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넘어서지 못하면 집권과 집권 후 제시할 사회 변화의 전망이 없다고 봅니다. 개발논리의 핵심은 이른바 자산이득, 즉 지대(rent)의 배분 문제인데, 이 배분은 자산계층이 더 유리한 구조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우리 사회는 소득의 양극화보다 자산의 양극화가 더 심각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렇다고 연대의 가치를 중시하는 진보진영이 개인의 이기심을 자극하는 자산 증식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공약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창원시 갑구 선거에서는 39사단 부대 이전 문제가 핵심 선거 쟁점이었는데, 나는 선거 유세를 통해 집값·땅값이 뛰면 대다수 1가구 1주택을 가진 노동자·서민들은 손해라고 말했습니다. 경제적 이득을 계산할 때는 상대적 비교가 중요한데, 임금소득이나 자영업자의 사업소득이 자산이득의 증가에 비교해 상대적으로 덜 증가하면 결국은 손해라는 논리이지요. 그래서 나는 39사단을 이전할 때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그 터를 민간 개발업자에게 팔아야 한다는 한나라당 후보의 공약을 비판하면서, 그 터가 민간에 넘어가면 비싸게 분양되고, 그러면 주변 지가나 집값도 들썩거려 자산계층이 아닌 대부분의 노동자·서민들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다는 식으로 설명을 했습니다. 유권자들에게는 다소 어려운 이야기죠.

같은 논리가 경부대운하에도 적용되지요. 운하를 핑계로 국유지인 하천 부지를 민간업자에게 넘겨 그들의 지대이득을 보장하겠다는 사업이 아닙니까? 건국 초기 적산불하처럼 정부가 지대를 특정 계층에게 나눠주는 사업이죠. 같은 논리를 이른바 민간자본유치(BTL) 방식의 사업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제목도 섹시하게 ‘아파트 투표’라고 뽑아 잔뜩 기대를 하고 봤는데, 겨우 한 꼭지 분석이라니, 떽끼!

나는 경제학이라는 이데올로기 학문의 장에서 진보가 이론적·정치적으로 이기지 못하면 진보의 집권은 어렵다고 봅니다. 19~20세기 초엽에 진보주의가 성행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당시 가장 우월한 이론체계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내가 지대를 주목하는 것은 현대 경제 세계에서 차지하는 규모가 커졌고 내용도 풍부해졌기 때문만 아니라, 노동자 계급이 이데올로기적으로 경제관계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하는 장치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리카르도가 지대론을 이론화할 때는 겨우 농업지대와 광산지대 정도였는데, 현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지대는 금융지대입니다. 전통적인 노사관계가 아니라 지대의 배분구조가 계급의식 구조를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었지요. 요즘은 노동자든 자영업하는 서민이든 누구라도 어디엔가 투자한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지대는 말하자면 근대 경제학에서는 자취를 감춘 경제재의 ‘가치’의 인출권이라 볼 수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배분하는가 하는 것은 곧 생산된 가치를 자산계급이 전취하는 배분 비율의 결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지대의 규모가 커질수록 생산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전통적 계급대립의 선은 의미가 없어지는 셈이 됩니다. 계급투쟁의 전선이 이동하는 것이죠. 지대 문제에 대한 좀더 전문적인 분석 기사를 다음호에 기대합니다. 최재기(faust57)

절망의 땅에 심은 나무 인상적

포토스토리 잘 봤습니다. 절망의 땅에 꽂아놓은 ‘작대기’들이 인상깊었습니다. 그 작대기들은 마치 우리가 늘 꿈꾸지만 현실에 과연 존재하는지 의심하게 되는 희망이란 놈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말라죽지만 심고 또 심으면 결국 뿌리를 내리는 나무들처럼 저도 희망을 심고 또 심어봐야겠다고 다짐해봤습니다. 개장수(06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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