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hanna0331
요즘 학교에서 일해보니 점심시간 도시락의 낭만은 머나먼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일 뿐이다. 식당에 들어가 네모난 배식판에 모두 같은 반찬을 받아 먹는 급식은 그 편리함에 새삼 고맙지만, 아이들에게 더 이상 도시락의 추억이 없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서글프다.
유치원에 코 흘리며 다니던 시절부터 나는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다. 제법 규모가 컸던 유치원에서 선생님은 아침마다 우리가 싸온 도시락 밥통을 걷는 게 일이셨다. 유치원 교실 구석에 펼쳐진 전기장판 위에 우리 밥통을 쭉 올려놓고 담요를 몇 겹 덮으면 집에서 싸온 밥이 점심시간까지 따끈한 상태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어린 시절에도 점심시간은 유치원에 가는 하나의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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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정이 생겨서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하는 친구들에게는 ‘십시일반’ 정신을 발휘해 도시락 뚜껑 위에 각자 싸온 밥과 반찬을 덜어주었다. 이미 우리는 그때부터 다른 친구의 반찬을 맛보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었고 어느 친구의 어떤 반찬이 맛있는지 집에 가서 엄마한테 조잘조잘 떠들곤 했다.
이 스테인리스 도시락은 내가 쓴 것만 정확히 20년이 됐다. 전기장판 밑에서 뜨겁게 온기를 지켜준 이 도시락은 나름대로 깜찍한 그림이 그려져 있어 그 당시부터 내 애장품이 되었고 지금까지 내 서랍에 곱게 남겨져 있다. 가끔씩 집안에서 쓰지 않는 살림살이를 버리시는 엄마의 손에서 지켜내고자 내 책상 서랍에 넣어뒀던 것을 어머니께 보여드리니 감회가 새로우신 듯 웃으셨다. 지금도 가끔 도시락의 향수를 느끼고 싶은 때는 막 지은 고슬고슬한 밥을 이 도시락에 담아 먹는다. 그 느낌이란! 다시 두 눈을 꼭 감고 손을 모아 점심시간 감사의 노래를 불러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먼 훗날 내 아이에게도 이 도시락에 담긴 밥을 맛보일 생각에 다시 서랍 안에 도시락을 곱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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