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산(ktjmms)
6월항쟁의 승리로 들뜬 1987년 신촌의 거리, 당시 서울 신촌로타리에서 이화여대 입구 쪽으로 가다 보면 ‘이화예술극장’이라는 소극장이 있었다. 오늘날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처럼 당시는 적은 좌석 수로 빌딩 한 층에 조그맣게 자리잡은 소극장이 유행이었다. 그때 누구랑 같이 갔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아마도 여학생이었을까?) 그곳에서 황신혜·안성기가 주연한 배창호 감독의 영화 을 보았다. 여주인공 황신혜는 정말 예뻤다(지금도 여전히 예쁘지만).
당시에는 영화관에서 명함같이 생긴 영화홍보 인쇄물을 주곤 했는데, 한쪽에는 영화 주인공이나 영화 장면이 나와 있고 다른 쪽에는 달력이 인쇄돼 있어 한동안 지갑에 넣고 다니면 유용했다. 그 영화를 보고 나오다가 홍보물을 집어 지갑에 넣었는데, 거기에 박혀 있는 황신혜의 사진이 너무 아름다워 도저히 버릴 수 없었다. 날카로우면서 지적인 얼굴에다 야릇한 노려봄이라니…. 그렇게 지갑에 넣고 다니며서 가끔 한 번씩 꺼내본 지 어느덧 20년이 지났다.
지갑 뒷면 달력에 1987년 7월부터 10월까지 나와 있는 걸 보니 아마 그 영화를 본 게 1987년 7월쯤인 것 같다. 달력 중간에는 당시 가요계에 혜성같이 나타난 ‘섹시한 댄싱 퀸’ 김완선의 스티커 사진도 붙어 있다.
이제는 40대 중반의 중늙은이가 되었지만, 지금도 지갑에서 너덜너덜해진 이 ‘오래된 물건’을 한 번씩 꺼내서 보면 황신혜의 환상에 젖고, 김완선의 자태에 넋을 잃던 그 피 끓던 20대로 다시 돌아간 듯하다. 아, 그런데 왜 황신혜와 김완선은 늙지도 않고 아직도 이렇게 중년의 가슴을 태운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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