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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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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래된 물건] 할머니의 댕댕이 바구니

등록 2007-08-24 00:00 수정 2020-05-03 04:25

▣ 강인경 충남 천안시 북면

돌아가신 할머니는 말 그대로 ‘살림의 대가’였다. 열댓 식구의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쓸 것이 할머니의 손끝에서 비롯되었고 그것들은 하나같이 맛나고 달고 맵시 있고 튼튼했다. 댕댕이덩굴 바구니는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추억할 때 맨 앞자리에 두게 되는 물건이다.

어린 시절 나는 댕댕이덩굴 바구니를 엮는 할머니 곁에서 나일론 색실 자르는 일을 도왔다. 산에서 끊어왔다는 댕댕이덩굴이 정작 산에서는 어찌 생겼는지는 본 적이 없지만, 듬성듬성 푸른 이파리가 달린 가늘고 기다란 줄기 뭉치를 펌프 앞 대야에 담가둔 모습은 기억이 난다. 줄기 껍질을 다듬어 빨랫줄에 널어놓으면 댕댕이는 마르는 동안 표면이 꿉꿉해지고 탄력이 생긴다. 그렇게 잘 말린 줄기들을 칼로 매끄럽게 다듬은 뒤 할머니는 송곳과 대바늘만을 가지고 바구니를 엮으셨다. 해바라기의 얼굴처럼 방바닥에 펼쳐져 있던 바구니 밑바닥에 금세 높이와 깊이가 생겨나고 마침내 색실로 마무리되는 과정은 보고 또 봐도 신기했다.

그 시절 우리 집에는 댕댕이덩굴로 만든 물건들이 많았다. 장롱 위의 반짇고리, 부침개를 펼쳐놓는 채반, 손톱깎이나 귀이개처럼 자질구레한 것들을 담아놓는 화장대 위 수납그릇, 아직 쓰임이 정해지지 않아 방 안 귀퉁이에 놓아둔 것들까지, 모양과 크기가 각각인 바구니들은 요즘 감각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인테리어 소품이었다. 사진 속 바구니는 할머니가 거의 마지막으로 만드신 작품이다. 내가 중학교 다닐 즈음이니까 20년도 더 되었다. 시집가서 쓰라면서 만들어주신 것을 엄마가 고이 모셔두었다가 대학 졸업하고 독립하면서 내 손에 전해진 뒤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반짇고리로 쓰고 있는데, 엮음새가 짱짱하고 비틀어진 구석 하나 없으며 포인트로 들어간 색실의 색감도 여전하다.

지식이 지혜가 되는 순간, 그 지혜가 다시 삶이 되는 순간을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말 많고 생각 복잡한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책에서든 현실에서든 몸, 마음, 말, 삶이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면 ‘아름답구나!’ 하는 찬탄이 절로 나온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할머니는 그런 분이셨다. 할머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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