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인경 충남 천안시 북면
돌아가신 할머니는 말 그대로 ‘살림의 대가’였다. 열댓 식구의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쓸 것이 할머니의 손끝에서 비롯되었고 그것들은 하나같이 맛나고 달고 맵시 있고 튼튼했다. 댕댕이덩굴 바구니는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추억할 때 맨 앞자리에 두게 되는 물건이다.
어린 시절 나는 댕댕이덩굴 바구니를 엮는 할머니 곁에서 나일론 색실 자르는 일을 도왔다. 산에서 끊어왔다는 댕댕이덩굴이 정작 산에서는 어찌 생겼는지는 본 적이 없지만, 듬성듬성 푸른 이파리가 달린 가늘고 기다란 줄기 뭉치를 펌프 앞 대야에 담가둔 모습은 기억이 난다. 줄기 껍질을 다듬어 빨랫줄에 널어놓으면 댕댕이는 마르는 동안 표면이 꿉꿉해지고 탄력이 생긴다. 그렇게 잘 말린 줄기들을 칼로 매끄럽게 다듬은 뒤 할머니는 송곳과 대바늘만을 가지고 바구니를 엮으셨다. 해바라기의 얼굴처럼 방바닥에 펼쳐져 있던 바구니 밑바닥에 금세 높이와 깊이가 생겨나고 마침내 색실로 마무리되는 과정은 보고 또 봐도 신기했다.
그 시절 우리 집에는 댕댕이덩굴로 만든 물건들이 많았다. 장롱 위의 반짇고리, 부침개를 펼쳐놓는 채반, 손톱깎이나 귀이개처럼 자질구레한 것들을 담아놓는 화장대 위 수납그릇, 아직 쓰임이 정해지지 않아 방 안 귀퉁이에 놓아둔 것들까지, 모양과 크기가 각각인 바구니들은 요즘 감각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인테리어 소품이었다. 사진 속 바구니는 할머니가 거의 마지막으로 만드신 작품이다. 내가 중학교 다닐 즈음이니까 20년도 더 되었다. 시집가서 쓰라면서 만들어주신 것을 엄마가 고이 모셔두었다가 대학 졸업하고 독립하면서 내 손에 전해진 뒤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반짇고리로 쓰고 있는데, 엮음새가 짱짱하고 비틀어진 구석 하나 없으며 포인트로 들어간 색실의 색감도 여전하다.
지식이 지혜가 되는 순간, 그 지혜가 다시 삶이 되는 순간을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말 많고 생각 복잡한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책에서든 현실에서든 몸, 마음, 말, 삶이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면 ‘아름답구나!’ 하는 찬탄이 절로 나온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할머니는 그런 분이셨다. 할머니가 그립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노인단체 시국선언 “윤석열 지킨다는 노인들, 더는 추태 부리지 마라”
방첩사, 이재명 체포조 5명 꾸려 가장 먼저 국회 출동시켰다
공수처, 최상목 권한대행에 경호처 협조 지휘 재차 요청
‘김용현 공소장’ 가득 채운 윤석열 범행…“율사 출신? 그냥 비정상”
‘검은 리본’ 단 광화문 응원봉·깃발들 “법대로 윤석열 체포하라” [영상]
제주항공 참사 애도 기간 계열사 경품뽑기 행사…애경그룹 사과
경찰 특수단, ‘윤석열 체포방해’ 박종준 경호처장 2차 출석요구
60대 은퇴 부부, 유럽 자유여행으로 인생 2막 출발
공수처, 대통령 관저 진입…윤석열 체포영장 집행 시작
윤석열 무조건 보호가 사명? ‘내란수비대’ 경호처 폐지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