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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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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래된 물건] 아내와 변진섭

등록 2007-08-17 00:00 수정 2020-05-03 04:25

▣ 이상범 경남 진해시 인의동

내 아내의 보석상자를 꺼내볼까요? 아내의 오래된 보석상자엔 그와의 추억이 가장 많습니다. 그 보석상자엔 그의 LP판과 카세트테이프, 지금까지 발매된 CD와 뮤직비디오 VHS, 그리고 ‘못 잊어’라는 상표가 붙은 아마 80년대 후반에 나온 듯한 오래된 앨범과 ‘사랑, 존경’이라는 직접 쓴 제목이 붙은 작은 포켓식 앨범이 있습니다. 그 앨범 속에는 그의 예전 모습도 있고 당시 고등학생이던 아내의 앳된 모습도 있지요. 내 아내의 첫사랑이자 오래된 사랑과의 추억이 들어 있습니다.

아내는 가끔 그 오래된 물건들을 들여다보며 추억에 젖어들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의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뛰어와서는 눈물 가득한 눈으로 내 뺨에 귀여운 뽀뽀를 살짝 해주며 고맙다는 말을 하여 나를 당황스럽게도 합니다. 아직도 아내는 그의 얘기를 할 때나 그와 함께하는 시간에는 수줍은 여고생 같습니다.

가끔 아내와 술을 마실 때도 그의 얘기를 나누곤 할 만큼 그에 대한 아내의 사랑에서 질투를 느끼지 않습니다. 아내의 오래된 사랑을 바라보고, 아니 이제는 그가 새 음반을 발표하면 대박이길 함께 기원하고 싶습니다. 아내로 인해 이제는 나도 변진섭씨의 음반을 모두 듣고 그의 노래가 18번이 되었고 그의 노래를 사랑하는 골수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아내의 보석상자가 더 채워지고 영롱하게 빛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집에는 세 아이가 좋아하는 신세대 가수들의 노래보다 변진섭씨의 노래가 더 많이 들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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