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대현

20여 년 전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연필깎이’는 좀 사는(?) 집 아이들이나 가지고 있을 정도로 흔한 물건은 아니었다. 그래서 언제나 내 필통 속에는 서툰 칼질로 대강 깎은 앞이 뭉툭한 연필만 들어 있었다. 하지만 좀 사는 집 아들인, 내 짝의 필통에는 매끈하게 깎인 연필들이 들어 있었다. 그 친구는 아버지가 외국에서 사다주신 미제 연필깎이로 깎았다고 자랑스런 얼굴로 나를 쳐다보곤 했다.
그 말에 자극을 받았던지 나는, 집에 가자마자 엄마 옆에 앉아서 심통 난 표정으로 무작정 연필깎이를 사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쉽게 말을 들어주실 엄마가 아니었다. 그냥 손으로 깎으면 되지 무슨 연필깎이가 필요하냐는, 기계가 다 좋은 것이 아니라는, 너는 엄마를 닮아서 손재주가 좋으니 손으로 깎아도 잘 깎지 않느냐는 등 다양한 이유를 들어 설명하시는 엄마의 논리를 이길 수 없었다. 그 뒤로도 여러 번 졸랐지만 그때마다 점점 업그레이드되는 엄마의 대응을 이길 수 없었다. 덕분에 내 연필 깎는 실력은 갈수록 향상됐고, 같은 반 친구들의 연필을 깎아주는 것이 내 즐거움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연필깎이를 갖고 싶다는 내 소원도 점점 희미해져갔다.
그러다 엄마가 5월5일 어린이날 선물로 연필깎이를 사주셨다. 진작 내가 조를 때 사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별로 갖고 싶지도 않은 지금 연필깎이를 왜 사주냐고 묻자 엄마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가 연필깎이를 갖고 싶다고 했을 때, 바로 사줬더라면 아마 연필 하나도 제대로 깎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 거야. 그런데 지금은 잘 깎잖아. 연필을 직접 깎는 기쁨, 기계로 편리하게 깎아보는 기쁨 둘 다 느껴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잖니.”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히 맴도는 것을 보면 어린 마음에도 무척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결혼을 한 지금까지도 난 책상 한쪽에 그 연필깎이를 두고 있다. 이제 연필 깎을 일은 별로 없지만, 아마도 연필깎이는 평생토록 내 책상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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