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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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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래된 물건] 도서관 비밀함의 추억

등록 2007-05-11 00:00 수정 2020-05-03 04:24

▣ 박현숙 광주시 북구 중흥1동

“선생님, 이게 뭐예요?” 초등학교 1학년 꼬맹이들이 뭉퉁한 나무 서랍을 슬쩍 열어보면서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묻는다. “그건, 지금은 직접 PC로 검색해 서가에서 책을 찾아보지만 예전에는 서랍 속에서 분류기호로 책을 찾아 종이에 써서 주면 사서 선생님이 책을 골라서 어쩌고 저쩌고….” 아이들은 도통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이다. 마치 한약방에서 본 한약장을 연상하는 듯 한 아이가 “어, 이거 한약방에서 봤는데”라고 외칠 뿐.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 어머니는 글자도 모르는 나를 도서관에 데려가는 걸 좋아하셨다. 도서관의 시커먼 층계를 어른들의 발걸음에 맞춰 두어 칸씩 힘들게 올라가면 모퉁이에서 커다란 나무함을 만나곤 했다. 어머니는 네모난 비밀함에서 무엇인가를 찾아 종이에 적어주고, 종이 한 장을 창구에 내밀면 안에 있던 직원이 뭐라뭐라 하며 책을 두어 권 넘겨주었던 기억이 또렷하다. 마치 삼류 영화관 매표소처럼 동그란 틈 사이로만 보이는 대출창구 안쪽 서가를 보기 위해 나는 직원의 눈치를 살피며 깨금발을 얼마나 들었는지 모른다. 어머니 덕분에 나는 또래 아이들보다 글을 일찍 깨우쳤고, 책을 빌려 돌아오는 길에 먹었던 소라 과자의 맛도 잊지 못한다.

지금 나는 어린이 도서관에서 일을 하고 있다. 처음 도서관에 들어왔을 때 서가 한쪽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족히 30년이 넘은 도서 대출함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한때 도서관 리모델링을 하며 치워버리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난 천덕꾸러기 같은 이 녀석을 그냥 두자고 했다.

얼마 전, 오랜만에 먼지가 뽀얗게 올라온 서랍 손잡이를 손등으로 슬쩍 쓸어내고 대출함을 열어보니 볼펜으로 꾹꾹 눌러 적은 글씨들이 어릴 적 호기심 많았던 비밀함의 기억을 되살려준다. 디지털 도서관에 익숙해진 요즘 아이들은 이런 경험을 할 수 없겠지만, 어릴 적 엄마와 보았던 도서관 비밀함에 대한 추억은 아직도 날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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