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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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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래된 물건] 옆구리가 터진 소쿠리

등록 2007-03-30 00:00 수정 2020-05-03 04:24

▣ 윤정자 전남 순천시 서면 죽평리

한의사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온갖 귀여움을 받고 자란 철없는 남편과 결혼한 나. 결혼하고 얼마 안 있어 많은 지원이 되어주신 시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남편과 함께 유산으로 받은 논 두 마지기를 일구면서 살림을 꾸려가기 시작했다.

못 입고 못 먹는 생활을 하면서도 남의 집 일까지 하고 밤을 낮 삼아 열심히 일하며 슬하의 오남매만은 훌륭히 키워보려고 애썼다. 가난을 벗어나려면 가르치는 것 이상은 없었기에. ‘구리무’(화장품) 한 통 살 돈이면 책을 한 권 더 사서 교육에 힘썼다. 회초리 한 번 들지 않고 나름대로 좋은 본보기로 가르침을 주어서 오남매는 이제 사회에서 어엿한 일자리를 갖게 되었다.

사진에 나오는 소쿠리는 시집올 적부터 나와 부엌에서 동고동락해온 물건이다. 떡을 만들 때 쌀을 일어서 받쳐놓고, 동지팥죽을 만들려고 팥물을 내릴 때, 생선을 말릴 때 등 안 쓰이는 데 없이 고루 쓰였다. 이제는 새집을 짓고 며느리도 보았지만 이 소쿠리는 버리지 않는다. 어느 날은 며느리와 딸이 이제 좀 버리라고도 했지만 이 소쿠리는 나에게 추억 어린 물건이고 아이들에게 어렵게 살았던 시절의 본보기를 보여주려고 그대로 놔두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들이 순간 뜨끔한 듯했다. 어릴 적, 힘들었던 기억은 잊고 뭐가 좋은 것이 나왔다고 하면 헌것은 생각 없이 버리고 새것만 좋아하는 요즘 아이들. 소쿠리를 보며 다시금 물건의 소중함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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