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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래된 물건] 필통에 붙은 내 사랑의 역사

등록 2007-03-09 00:00 수정 2020-05-03 04:24

▣ 김민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

내 필통. 쇠로 이루어진 재질 덕분에 만만찮은 무게를 자랑하고, 꽤 커 보이는 외관이 무색하게 넣을 수 있는 용량 또한 제한돼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쓰던 쇠필통을 아직도 들고 다닌다. 이 필통과의 첫 만남은 초등학교 5학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형이 생일 선물로 받았던 것을 ‘별로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나에게 던져주었고, 스무 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쓰고 있다. 시대에 동떨어지는 느낌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이 쇠필통에 대한 애착 때문인지 좀처럼 바꾸기가 쉽지 않다.

애착은 필통에 카드·스티커·판박이 등을 붙여나가며 장식을 하면서 생겨났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예쁘게 꾸며보려고 했으나 점점 귀찮아지면서 언제부터인지 무차별적으로 붙이게 되었다. 장식을 한 지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은 원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두껍고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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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통의 장식은 초등학교 때부터 지속적으로 변하던 내 관심의 총체다. 초등학교 때는 거의 목을 맸던 ‘구피’ ‘드루피’ 등의 디즈니 캐릭터로 장식을 했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는 각종 만화책의 명장면들을 복사해서 정성스레 필통에 붙였다. 고등학교 때 록음악에 심취하면서는 잡지에서 레드 제플린, 건스 앤 로지스 등의 사진들을 오려 붙였고, 군대 시절에는 수호이 등 각종 전투기 사진을, 그리고 유럽 축구에 열광하는 지금은 데이비드 베컴, 박지성을 비롯한 여러 축구 선수들이 내 필통을 장식하고 있다. 당시에 가장 좋아하는 것들로 장식을 해놓아서 그런지 바라볼 때마다 흐뭇하다.

앞으로도 나의 관심은 분명 바뀔 것이고 그에 따라 필통 장식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세월이 많이 지나 언젠가, 가장 윗부분의 장식부터 한 장씩 뜯어보면서 추억을 거슬러 올라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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