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경준
얼마 전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와 서로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위해 기차를 이용하는 새해 해돋이 여행을 다녀왔다. 2006년 마지막 날 밤, 서울역에서 동해시 묵호역으로 향하는 특별열차를 이용하기 위해 오랜만에 경의선 금촌역을 찾았다. 그곳에 도착하니 기차로 통학했던 학창시절이 생각났다. 파주에서 서울로 가는 교통편이 그리 많지 않던 시절, 경의선 기차는 서울로 통학하는 많은 학생과 직장인들이 애용하는 교통수단이었다. 그 속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새벽 별이 채 지기도 전에 역으로 달려가 열차를 타고 등교하고, 저녁 해가 지고 나서야 열차에서 내려 집에 돌아오는 ‘고난의 행군’을 금촌역은 묵묵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기차에 오르면 마치 주말 여행이라도 떠나는 사람과 같이 들뜬 기분에 빠지곤 했다. 신촌역에서 열차를 타고 내려오다가 서울 시내를 막 벗어난 지점인 화전역쯤에 이르면 맑은 공기와 깨끗한 하늘, 그리고 철로 양편으로 펼쳐진 풍성한 들판에 절로 마음이 설레었다. 이런 기분이 바로 열차 통학생들만이 누릴 수 있었던 호사가 아니었을까.
오랜만에 딸과 함께 떠난 여행에 불쑥 끼어든 학창시절 소중한 추억은 내 마음을 더없이 즐겁게 해주었다. 집에 와서 나의 오래된 ‘승차권’을 꺼내본 까닭이기도 하다. 버리기도 아까워 모아둔 승차권에는 학교와 학년, 내 이름까지 또박또박 기록돼 있다. 당시 학생들은 1개월짜리 정기승차권을 사용했는데, 일부 못된(?) 녀석들은 스탬프로 날인된 유효기간을 교묘하게 위조(아세톤으로 유효기간을 지우고, 지우개에 날짜를 새겨 다시 날인)해 당시로선 거금인 4450원(1978년도 1개월 승차권 요금)을 비자금으로 조성하는 수단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 자리를 빌려 열차 통학생을 대표해 당시 금촌역 관계자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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