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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래된 물건] 안녕, 내 차 ‘은하수’

등록 2006-12-29 00:00 수정 2020-05-03 04:24

▣ 김동돈

“여보, 불안해. 이제 바꾸자!”
겨울이 되니 아내의 애원 반, 푸념 반 섞인 사설이 다시 나온다. 지난번 출근길에 우리 애마인 ‘은하수’가 대포 소리 내며 주저앉은 다음부터 부쩍 더 그런다. 사설 끝에 한마디를 덧붙인다.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게 진짜 아름다운 거야.” 그래, 아내의 말도 일리가 있어. 이젠 진짜 ‘은하수’의 은퇴를 생각해봐야겠구나.

너를 만난 지도 벌써 13년이구나. 살인 면허(최단기간에 딴 면허를 지칭)를 얻자마자 너를 데려왔지. 하지만 겁나서 너를 데리고 다니지 못한 것 기억하니? 액셀과 브레이크, 클러치를 번갈아 밟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였지. 처음 너를 몰고 길에 나왔던 날 주차를 못해 결국은 지나가는 차를 세워 부탁했지. 너, 그날 속으로 많이 웃었지?

네가 처음 상처를 입은 게 어디였더라? 맞아, 집이었지. 세차한다고 후진하다 문설주에 ‘부우욱’ 하고 긁혔지. 네 옆구리에 난 생채기를 보며 얼마나 속상했는지…. 내 몸 다친 것보다 더 괴로웠어!

아프신 어머니를 모시고 지리산 요양원을 찾아가던 날, 간이 쉼터에서 먼 산을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허허로운 모습 생각나? 아마 너도 나처럼 속울음을 삼켰을 거야.

네가 없었으면 아내와의 연애가 가능했을까? 남의 이목을 피해 한밤의 바닷가를 찾을 때 네가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주었지. 바닷가 한쪽에서 무심히 서 있는 동안 넌 무슨 생각을 했니?

그렇게 결혼을 하고 태어난 아이들이 너를 타면서부터 네가 부쩍 나이 먹은 티를 내게 된 것 같아. 그래도 우리 귀여운 두 아이, 솔과 결을 원망하진 않겠지? ‘은하수’란 애칭을 붙여준 게 그 애들이잖아.

은하수야, 돌이켜보니 너는 내 삶의 말없는 동반자였구나!

며칠 전 드디어 나는 아내에게 백기를 들고 새 차를 계약했다.

은하수! 아니, 프라이드! 그동안 참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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