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강림
대학 1학년 신입생 때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한국을 벗어나 어학연수라는 이유로 오스트레일리아에 갔다. 설레는 마음으로 가본 나라, 뜻대로 말은 안 되도 그래도 재밌고 여러 가지 좋은 추억이 많았던 곳을 이번 겨울 또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양말 한 짝 덕분.
내 기억으로 이 양말은 20달러였다. 어학연수생에게 그 돈은 엄청난 부담이었다. 게다가 거의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길이에 요란한 색깔이란! 모든 이유에서 이 양말은 내가 선택하기 어려운 대상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이 양말을 처음 볼 때부터 너무 탐이 났다. 몇 번을 망설이다 결국 덜컥 이 양말을 샀다. 그러나 이 양말은 아무도 없는 방에서만 신어볼 뿐 한 번도 외출할 때 함께했던 적이 없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올겨울. 잡지나 주위를 둘러보니 ‘오버니스 삭스’라고 불리는 긴 양말이 유행이란다. 얼마 전 토요일, 외출할 때 갑자기 이 양말을 신고 나갔다. 드디어, 어쨌든, 결국 신고 만 것이다. 10년 만의 외출에 아마도 양말 또한 무척이나 흥분했을 터. 모든 사람이 내 다리만 보는 것 같고, 나 또한 다리에 금테라도 두르고 걷는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
지금 옷장을 열어보면 사기만 하고 한 번도 둘러보지 못한 아이템이 어딘가에는 숨어 있을 것이다. 그런 ‘오래된 물건’이 있다면 나처럼 한번 세상 구경을 시켜주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 하루가 아주 특별할 만큼 재미있어질 것이다. 이제 양말을 처음으로 한번 빨아서 널어볼까? 외출도 신기한 경험이었겠지만 깨끗이 세탁되어 빨랫줄에서 쉬어보는 것도 내 양말에겐 무척 재밌는 경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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