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옥희
시어머니께서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큰 상자를 내미셨다. 겉으로 보기에도 몇십 년이나 나이를 먹은 듯 세월의 때가 누렇게 앉아 있는 상자였다. 조심스럽게 열어보니 그 안에는 남편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썼던 몇 권의 일기장과 통지표, 상장 등이 가득 들어 있었다.

상자를 건네시며 시어머니께선 “이젠 이것들을 네가 관리해라”라고 하셨다. 뭔가 책임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 상자를 열어 남편이 어린 시절,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꾹꾹 눌러쓴 일기장을 꺼내 꼼꼼하게 읽어내려갔다. 어린아이가 쓴 일기지만 어머니가 쌀을 한 되 사오라고 해서 쌀을 사러 시장에 다녀온 얘기를 읽을 땐 누구나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이 고스란히 느껴져 가슴이 저려왔다. 열한 살 무렵에는 갓 태어난 동생을 맞이한 형으로서의 신기함과 흥분된 감정이 흠뻑 담겨져 있었다. 귀여웠다.
일기장 안에는 과묵한 남편의 성격 탓에 시시콜콜 알지 못했던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소설책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런 일기들을 다 보고 나니 남편이 훨씬 더 가깝게 내 곁으로 다가선 느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일기장의 한 쪽도 소홀히 하지 않고 꼬박꼬박 보관해온 시어머니. 그러한 어머님의 자식 사랑이 곧 자식들에게 인생의 길을 제시하는 이정표가 되지 않았나 싶다. 나도 아이들의 일기장과 여러 가지의 추억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가 나중에 내 며느리에게 고이 전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삶의 무게를 스스로 견디며 이겨나갈 수 있도록 나침반을 만들어주신 어머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따뜻한 마음과 사랑이 듬뿍 담긴 선물 앞에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른다. 어머님, 정말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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