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민주 대전시 중구 산성동
이사를 한 번도 가지 않아서인지 우리 집 다락방은 보물창고같이 신기한 물건들이 많다. 아버지께서 총각 때 참새를 잡는 데 쓰셨다는 낡은 총과 총알들부터, 없는 신혼살림에 두 분께서 사모으신 복권 뭉치까지. 곰팡내를 풍기는 그것들을 어렸을 때 하나씩 가지고 내려오면 부모님께서는 그 물건에 담긴 옛날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셨다. “아빠가 총각 때 참새를 얼마나 잘 잡았는지 참새집에 참새를 대주기로 약속하고 하루에도 수십 마리씩 잡아다 팔았단다. 할아버지가 엄하셔서 감히 용돈 달란 말을 못 꺼냈거든.” “아이고, 저 복권들이 아직도 거기 있었네. 호호호.”
삼남매가 커가면서 부모님의 추억여행 횟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우리는 냄새나는 좁은 다락방에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고 이미 여러 번 반복해서 들은 이야기들이 조금씩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어머니와 안 쓰는 물건들을 보자기에 싸서 다락으로 올리는데 어렸을 적 생각이 났다. 다락방 천장이 이렇게 낮았던가. 어머니는 짐을 구석에 내려놓으시곤 앉아 한 물건을 집어드시고 한참 정성스레 먼지를 닦으셨다. “민주야, 이것 좀 봐라.”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일까 이리저리 살펴봐도 알 수 없는 나무로 만든 그것. “너희 아버지가 중학교 때 수학여행 가서 사온 다식판이란다.” 그제야 예전에 백과사전에서 사진으로 보았던 다식판에 대한 지식들이 끄집어져 나왔다. “머리 희끗희끗한 아버지가 중학생 때라니 참 오래되기도 했다 이놈.” 홀어머니와 살던 아버지와 결혼하신 어머니는 셋이 알콩달콩 아버지 학창 시절 이야기를 나누며 다식을 만들어 먹던 신혼 때 이야기를 하시며 행복해하셨다. “여기에 반죽을 채우고 꼭꼭 누른 다음에 이 나무조각을 탁 세우면 다식이 톡 튀어나와” 하시며 삐걱거리는 다식판의 사용법도 알려주셨다.
어렸을 때는 아빠 최고라며 퇴근하시는 아빠 팔뚝에 주렁주렁 매달리던 삼남매가 사춘기가 지나면서 말이 안 통한다며 외면하고 타지에 나가 살면서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천진난만하게 다식판을 홀어머니의 수학여행 선물로 들고 오셨을 아버지의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을 생각하며 나는 그것을 다락방에 내려놓지 않았다. 아버지가 들어오시면 보여드리고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해달라 조르겠다 다짐하며 가지고 내려와 정성스레 먼지를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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