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미성 경기도 군포시 금정동
나는 외할아버지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다. 1996년 6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중환자실에 계신 모습을 병실 밖에서 잠시 봤을 뿐이다. 외할아버지는 북쪽이 고향인데 사범학교를 나와 교사로 일하셨고 남으로 오신 뒤 대령으로 제대하셨다. 교사로 일하던 시절 가난한 학생들의 월사금을 대주느라 봉급을 제대로 가져오신 적이 없었고, 소심한 외할아버지가 첩을 얻었다는 것은 엄마와 외할머니 그리고 삼촌에게 큰 충격이었다.
군인이었지만 난폭한 면도 없었고 아랫사람에게도 정중했던 그 외할아버지가 가장 큰 도덕적 죄를 범하신 것이다.
그 한 번의 실수로 가장 도덕적이지 못했던 외할아버지 때문에 엄마는 외할머니, 삼촌과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그렇게 외할아버지와 남남으로 살다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외할아버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때의 통화가 나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외할아버지라고 불러봐”라고 했던 할아버지의 쉰 목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나의 ~이야기’라는 동화책 회사에서 나온 책을 선물로 보내주셨는데 여기엔 물론 ‘미성’이란 이름을 삽입해서였다. 그때는 단순히 신기해서 읽었지만 요즘 볼 때면 자꾸만 눈물이 흐른다. ‘책은 읽는 것보다 그 뜻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편지에 쓰신 구절이 이제야 실감이 난다. 남들이 보기에는 흔한 것이겠지만 나에게는 외할아버지께서 주신 처음이자 마지막인 너무나 특별한 선물이었다. 내 이름으로 된 그 책은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증명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흥부놀부 이야기가 나에게는 읽을 때마다 외할아버지와 대화한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 책이 있었기에 한 번도 보지 못한 외할아버지를 이렇게 느끼고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외할아버지는 아주 큰 죄를 지으셨지만 난 결코 원망하지 않는다.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그동안 너무 미안했다고, 이제는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다고 하셨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실 나의 할아버지, 그렇게 보고 싶어하시던 손녀딸이 이제는 고등학생이 되었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할아버지처럼 좋은 교사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살아 있는 한 이 책은 소중히 간직할 거예요. 이 세상 누구보다도 할아버지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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