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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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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오래된물건] 눈총받는 구닥다리 사진기

등록 2006-07-07 00:00 수정 2020-05-02 04:24

▣ 넝쿨맘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첫 직장에서 첫 월급을 타던 날, 생전 처음 내 노력으로 번 돈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퇴근하면서 회사 근처 용산 전자상가를 찾았다. 거기서 이것저것을 둘러보다 내 눈에 쏙 들어오는 물건을 발견했는데, 바로 지금의 내 가장 오랜 소장품이자 개인 재산 1호인 올림푸스 자동 카메라였다. 평소 사진 찍기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카메라를 구입하고 나선 어딜 가든 카메라를 갖고 나가 사진기사를 자처했다. 유적지라도 놀러갈 때면 작품 사진 같은 연출을 요구한답시고 돌담 돌아가는 작은 사찰에서 몇 번이나 위치를 바꿔가며 친구들을 이리저리로 옮기는 번거로움을 자초해 모델료로 톡톡히 바가지 밥도 사곤 했다.
이 추억의 카메라가 3년 전부터 병이 나기 시작했다. 셔터를 눌러도 촬영이 안 되거나 아주 늦게 셔터가 작동하는 등 노화 증상이 나타났다. 어렵게 부품을 구해 수명을 연장하고 그럭저럭 쓰고 있는데 결국 사건이 터졌다. 지난해 가족과 간 해외 여행에서 출발 전 체크할 때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아니 이게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의 수려한 풍광을 배경으로 하자 그만 동작을 멈춘 것이다. 아무리 셔터를 눌러도 반응이 없다. 그런 우리가 딱했던지, 일행 중 한 분이 디지털 카메라로 몇 장을 찍어주었다. 그때 난감해하던 나와 내 고물딱지 카메라를 지켜보던 그분의 표정이란. 결국 그곳에서 찍은 사진은 석 장밖에 되진 않지만, 덕분에 가슴에 풍경을 담고자 열심히 이곳저곳을 누볐던 기억이 있다. 귀국 뒤 수리점으로 가서 알게 된 고장의 원인은 다름 아닌 배터리. 이번엔 정말 바꾸리라 마음먹었는데. 배터리만 교체하자 또 쌩쌩하게 찍힌다. 여전히 셔터 작동 시간이 많이 걸려 피사체들로부터 농담 섞인 항의를 받지만.
디카 대중화 시대에 사진작가도 아닌 내가 아직도 이런 구닥다리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것에 지인들과 친지로부터 가벼운 눈총과 놀림을 받는다. 하지만 난 세월이 갈수록 더 정이 가고 좋다. 비록 연속 촬영시엔 길게 몇 분을 기다려야 하는 수고로움은 있지만 이 아날로그 기기는 삶의 많은 부분을 담아 앨범을 장식한 그 많은 사진들을 잉태한 엄마 같고 고향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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