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현숙/ 부산시 해운대구 중동
중학교 2학년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8년여 전, 여학교에서만 배우는 ‘가정’ 과목 시간의 일이다. 그때만 해도 남녀공학이 없었기에 ‘가정’이라 하면 곧 올바른 덕목과 교양을 갖춘 여자의 정석을 배우는 일이라 여겨져 엄숙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론보다 실습이 많아 어찌 보면 자유로울 듯하나 익숙지 않은 바느질과 요리는 필기하는 것보다 더 싫었다.
누구나 한 번쯤 만들어봤을 법한 복주머니. 제시간에 주어진 분량을 해내야 했으므로 서투른 바느질 솜씨보단 재깍재깍 돌아가는 시계가 더 버거웠다. 한올 두올 고사리 손으로 양반집 규수가 된 마냥 하면서 이게 좋은 집안의 훌륭한 배필을 만나기 위한 필수 과정인 줄 알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 짝이 없다.
분단별로 조를 짜 여러 개의 복주머니를 뒤섞은 뒤 우리가 직접 채점을 했다. 난 사립학교 교사들의 편애에 불만이 많아 교사의 채점에 불신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선입견을 깨주기라도 하듯 가정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평가의 기회를 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현명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채점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이 없었다. 쑥스럽게도 난 A+, 일등! 칭찬 일색이다. 그때의 가슴 벅찬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바느질이야 복주머니 천에 그려진 선대로만 수를 놓으면 되지만 거북이 등짝의 육각형은 직접 각을 잡아야 하는 고난도 작업이다. 지금 봐도 한 치의 오차가 없으니 이젠 하라고 해도 못할 것 같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뿌듯하고 대견스럽던지. 그때 그 작은 손가락 안에 세상이 춤추고 있었다.
그때부터 자신감을 가졌던 것 같다. 칭찬을 받는다는 것, 선생님께 주목받는다는 것, 학생들의 부러움을 받는다는 것, 이것들이 우월의식일 수 있고 열등감의 극복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 이런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해줬기에 의미가 있다. 그 뒤 내 삶의 지표가 되어주신 그 시절 가정 선생님. 꼭 한 번 만나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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