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시절의 훈장들입니다. 제가 다닌 학교에서는 한 달에 두 명씩 선행상을 주어 네모 반듯한 노란색 아크릴 판에 ‘선행’이라고 적힌 배지를 별도 착용하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이걸 달고 읍내까지 돌아다녔죠. 대단한 감투라도 쓴 양. 그리고 6학년 1학기 반장 선거도 기억납니다. 반장, 부반장, 회장, 부회장을 뽑는데, 전 몇몇 친구들과 후보에 올랐습니다. 후보인 ㅍ군이 줄곧 반장을 해봤던 친구라 그가 반장이 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녀석은 ‘남자’가 아닙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왠지 반장은 남자가 하고 여자는 ‘내조하듯’ 거드는 부반장 역할을 해야 할 듯한 성역할이 머리에 박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반장을 뽑는 1차 투표. 전 투표용지를 들고 망설였습니다. 왠지 양심에 찔리지만 혹시 모를 일이니 내 이름을 적을까. 아니면 될 만한 친구의 이름을 쓰고 당당해질까. 투표할 때 자기 이름 한 번 안 적어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마는 6학년이나 된 전 어차피 반장은 내게 가당치도 않으니 그럴 바엔 친구를 밀어주자는 생각에 ㅍ군에게 떳떳한 한 표를 던졌습니다. 결과 ㅍ군과 한 표 차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제가 당당한 표정으로 친구의 당선을 축하해줬을까요? 글쎄, 그것까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반장 선거였습니다. 의외의 호응에 힙입어 전 ‘부반장쯤이야~’라고 자신하고 있었죠. 떳떳하게 ㅍ양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결과, 한 표 차이로 ㅍ양에게 부반장 자리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재미있다는 듯,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던 담임 선생님과 ‘어머 ,두 번이나 한 표 차네’ ‘웬일이니, 웬일이니’라는 표정으로 힐끔거리던 반 친구들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그날 전 회장이 되었고, 핑크색으로 꽃잎 무늬가 둘러진 배지를 받았습니다. 나름대로 디자인이 좋아 그나마 위안이 됐습니다.
그날의 교훈. 지나친 자만심도 경계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또 너무 자신 없어할 일도 아니라는 것. 언젠가 제게 아이가 생겨 반장 선거에 나간다면 이렇게 말해주려고 합니다. “선거는 정정당당하게. 하지만 투표할 때는 꼭 네 이름 써라! 알겠지?”
홍기운/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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