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지원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쓸 때 제일 골치 아픈 부분이 성장 과정란이다. ‘엄격하신 아버지와 자상하신 어머니 슬하에서…’류의 식상한 도입은 안 하더라도 결국은 잘 자랐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자기소개서 내용은 오십보백보다. 이런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 내가 내세운 전략은 부모님도, 출신지도 아닌 내 어릴 적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36권의 일기장이다. 86년 6살 때부터 93년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쓴 일기장인데 몇 차례의 이사를 겪고도 운 좋게 내 방 한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때의 일기를 읽으면 어릴 때의 내 모습이 마치 코스모스와도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머리는 크고 줄기는 가늘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코스모스. 알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그 무거운 머리를 지탱하기에 현실은 그렇지 못해 여기저기 부딪히고 기우뚱거렸다.
가끔 기분이 울적할 때나 술 한잔 걸치고 돌아오는 날이면 일기장을 꺼내본다. 그럴 때마다 매사에 자신감도 넘치고 적극적이었던 여덟 혹은 열두살의 소녀가 지금의 무기력한 어른이 보기엔 그저 신기루 같기만 하다.
하지만 좋은 기억들만 담겨 있지는 않다. 재미있는 사건, 유치하기만 한 장난은 물론이고 잊을 수 없는 상처도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이 소중한 36권의 일기장은 훗날 내가 혹시 극심한 스트레스로 정신적 질환을 일으킬 때 나의 정신분석 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다른 데 쓸 계획도 갖고 있다. 훗날 내 운명의 사람에게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100% 이해하기란 불가능하지만 겉으로 표현을 잘 못하는 나로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표현하는 데 일기장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다는 판단에서다. 발가벗은 내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그대로를 사랑해달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이경미/ 부산시 연제구 거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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