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은 독자편집위원을 사로잡은 ‘3분간의 짧은 연애’
비교의 강박이 없는 즐거운 춤판, 직장인·몸치 모두 환영합니다
▣ 위성은/ 10기 독자편집위원
벌써 일년하고도 절반이나 지났다. ‘스윙판’이라는 좁다란 바닥에 뛰어든 지가. 비정규직 근로자였다가, 백조였다가, 직장인이 되었다가 내 처지는 부침을 거듭했지만, 스윙은 한결같이 가장 큰 위안처가 되어주었다. 이제는 정말 춤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춤바람’ 난 어느 독자의 일상이 궁금하다면, 당신도 함 빠져~ 보시라.
거리 파티다! 신발 휙~ 옷핀 휙~
드디어 오늘(6월4일)이다. 서울 홍익대 앞 차 없는 거리에서 ‘스트릿 록큰롤 & 스윙댄스 파티’가 열린다. 최상의 컨디션을 위해 황금 같은 금요일에 춤도 안 추고 쉬었건만, 왜 이리 몸이 찌뿌듯한지. 몸살 기운인가. 얼굴이 부었다. 평소에는 거들떠도 안 보던 화장품들을 꺼내 바르니 좀 봐줄 만하다. 문제는 의상이다. 어깨가 살짝 드러나는 빨간색 슬리브리스를 집어들었다. 명색이 파틴데 이 정도야. 입어보니 생각보다 야하지 않다. 여기에 시원한 꽃무늬 통바지면 무사 통과. 요즘 무리한 탓에 허리 사이즈가 줄어 옷핀으로 바지를 고정했다. 땀냄새 방지를 위해 마지막으로 향수를. 보무도 당당하게, 홍대 앞 거리로 향했다. 동호회 신입회원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즉석 강습을 듣고 있고, 공연팀들은 무대에서 리허설 중이다.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며 무대를 점검. 무대가 좁은 것 외엔 그다지 나쁘지 않다.
언제나 그렇듯이 춤은 즐겁다. 긴장해서일까, 첫 춤의 파트너가 누구였는지 어느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카메라를 의식하며 나름대로 표정관리를 하며 춤을 추었다. 요즘은 스윙댄스의 대중화를 위해 이벤트나 공연이 늘고 있는 추세인데, 길거리 스윙의 묘미는 바로 호기심과 부러움이 어린 행인들의 시선을 받는데 있다. 그 순간만큼은 무대의 주인공이 되다는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라이브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것은 녹음된 음악을 틀어놓고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킹스톤루디스카, 오!브라더스, 락타이거스 등 밴드들의 신나는 연주에 맞춰 여러 동호회를 망라하는 수많은 스윙어들고 함께 마음껏 끼를 분출할 수 있다니! 결코 자주 오는 날이 아니다.
한창 춤을 추는데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내 파트너의 신발이 저만치 도망가버린 것이다. 잘 미끄러지는 스윙바의 마룻바닥에서 춤을 추다가 아스팔트 바닥에서 추다 보니 발이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사람들이 웃었지만 꿋꿋하게 신발을 다시 신고 계속 췄는데, 이번엔 내 바지의 옷핀이 격렬한(?) 움직임에 못이겨 이탈해버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흘러내리는 바지를 부여잡고 춤을 출 수는 없는 일. 우리는 민망스런 미소를 지으며 한 곡을 채우지 못하고 다음 기회를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파티 종반에 막춤을 즐기는 클러버들이 득세하는 분위기가 되면서 우리 스윙족들은 삼삼오오 이동하기 시작했다. 길거리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춤을 추고도 성이 안차 인근 스윙바 ‘해리&피터’에 ‘2차’를 하러 가는 길이다. 거기에 합류해 새벽까지 또 춤을 추었다. 그리고 결국, 다음날에 제대로 몸살이 나고야 말았다는 일화를 전한다.
최신 힙합댄스도 시들해졌을 때
춤을 추러 간다고 하면, ‘그렇게 안 보이는데’ 하는 반응이 돌아온다. 춤의 정의는 ‘장단에 맞추거나 흥에 겨워 팔다리와 몸을 율동적으로 움직여 뛰노는 동작’이고, 우린 매년 운동회철이면 매스게임의 일원이 되었건만, 머리가 굵어지면서 춤은 단청치 못한 아이들이 즐기는 경박한 놀음, 혹은 나이트나 캬바레에서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고 이성을 유혹하는 수단 따위로 치부되어 온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춤’이란 게 그리 대단치 않다. 춤은 몸을 움직이는 즐겁고 자연스러운 ‘일상’일 뿐이다.
난 어린 시절부터 춤이 즐거웠고, 다행스럽게도 ‘리듬감각’이 없는 편이 아니라 칭찬을 듣다 보니 더 재미있어졌다. 대학 시절 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부터는 공부보다 춤을 더 열심히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신 가요 댄스’같은 일반적인 춤이 아니라 CCD(Christian Contemporary Dance·교회에서 추는 워십댄스의 최신 힙합 버전)라는 생경한 장르였는데, 안무도 직접 해야했다. 춤이란 게 팔다리의 기본기만 터득하면 노력에 따라 한없이 응용동작이 만들어지고 쾌감이 비례하는 정직한 놀이라, 한번 맛을 들이니 헤어날 수 없었다. 오죽하면 뮤지컬 배우의 꿈을 품고서 가방 하나만 들고 서울로 상경하는 사고를 치기까지 했을까. 숙식을 해결해준다는 말에 무명 댄스그룹의 백댄서로 들어가기도 했고, 재즈댄스 배운 지 고작 3개월이 되었을 때 내로라 하는 뮤지컬 배우들이 다 모인 오디션에도 갔는데, 다른 이들의 춤에서 충격을 받고 한동안 꿈을 접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춤을 출수록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춤이 즐거움을 주기보다는 끊임없이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자기 만족을 얻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무리 중에서 돋보여야만 한다는 강박은 스스로 춤을 즐기지 못하게 만들었고 내 몸을 굳어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춤에 대한 열정이 시들해질 즈음 ‘스윙’을 만나게 되었다.
파트너와 맞잡은 손의 비밀
영화 <바람의 전설>에서처럼 첫 스텝을 내딛는 순간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온다던가 하는 일은 없었다. 적어도 현실에서는. 친구의 소개로 찾아간 어느 스윙 스튜디오는 한산했고, 정작 친구는 오지 않아 모든 게 낯설기만 했다. 강사의 구호에 따라 ‘원, 투, 스리…’ 스텝을 따라하니 내가 난생 처음 춤을 추는 듯한 생경함에 맞닥뜨려야 했다. 그 곳에서 난 스윙의 초보일 뿐, 이전까지 배웠던 춤동작은 별 쓸모가 없었다. 한달 이상을 자신과 싸우면서 기본 동작을 익힌 뒤에야 파트너의 손을 잡고 겨우 한 곡 춤출 수 있다. 스윙은 이전까지 췄던 ‘나 홀로’ 춤이 아니라 서로를 배려하며 상대를 돋보이도록 해야 하는 춤이기 때문이다.
리더(Leader·춤을 리드하는 사람. 주로 남성)의 리드에 따라 팔로워(Follower·대체로 여성)가 신호를 감지하고 춤을 맞춰 추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스윙은 절대적으로 연습량에 비례하는 참으로 민주적인 춤이다. 또한 아무리 춤을 잘 추는 사람이라도 리딩-팔뤄잉의 원리를 모르면 뻣뻣한 나무인형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떤 여성들은 여성이 무조건 리드에 따라 춤을 추는 수동적인 역할만을 맡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리더-남성/팔로워-여성’이라는 이분법에 반기를 든 용감한 여성들도 있는데, ‘스윙시스터즈’라는 한 국내 동호회에선 여성들이 리더와 팔로워의 역할을 나누어 맡는다고 한다. 내가 가는 스윙바에서도 연습 삼아 혹은 재미로 동성끼리 춤을 추는 광경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파트너를 바람개비마냥 팔랑팔랑 들어 넘기는 장면이 <스윙키즈> 같은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그게 바로 스윙댄스에서 말하는 ‘에어’(Air)란 동작이다. 그런데 정작 파트너를 가볍게 들어올리는 남성들의 체격은 천차만별이니, 단지 힘만으로 하는 ‘묘기’가 아니란 얘기다. 그 비밀은 맞잡은 손에 있다. 서로의 힘과 체중을 적절히 이용하는 스윙은 참으로 과학적인 춤이다. 상대방의 신체를 지렛대로 이용하는 에어 동작들은 처음 보았을 때는 입이 딱 벌어지지만, 그 원리만 제대로 익힌다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선보일 수 있다.
또 스윙은 살사만큼은 아니지만 화려한 턴을 자랑하는데, 그 비밀도 힘의 역학에 있다. 전문적으로 춤을 배운 사람이라면 모를까, 혼자 도는 것은 두 바퀴도 힘들다. 그런데 파트너와 함께 추면 서너 바퀴쯤은 가볍게 돌 수 있다. 리더의 추진력을 그대로 받아서 도는 것이 스윙에서 말하는 ‘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각나는 영화 장면이 또 하나 있다. <댄서의 순정>에서 박건형이 문근영에게 “춤출 때만큼은 날 사랑해”라고 말한다. 일반 관객들은 ‘오버’라고 여겼을지 모르지만 춤추는 사람들은 대체로 동감한다. 춤추는 그 순간만큼은 최대한 상대를 존중하고 서로에게 집중해야만 멋들어진 춤사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웃는 표정도 상대에 대한 예의다. 서로의 신체조건이나 외모를 막론하고, 호흡이 짝짝 들어맞게 춘 춤이 주는 쾌감은 섹스의 그것 못지않다는 것이 춤바람 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춤판에서 만나 연애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성친구가 없는 사람이 훨씬 많다. 춤추느라 연애할 시간이 제대로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스윙댄스가 주는 적절한 스킨십과 쾌감이 충분히 애인의 ‘대체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나도 그런 영향이 농후하다). 그러면 같이 춤추는 사람끼리 사귀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춤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은 실연 이후에 춤판을 떠나는 사태가 벌어질까봐 두려워 경솔한 연애를 쉽게 못한다.
스윙 폐인, 백조 스윙 모두 모여라
땀 흘린 뒤의 맥주 한잔도 빼먹을 수 없는 일과다.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려 노느라 결혼 적령기를 놓친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말은 경고로 꼭 하고 넘어가야겠다. 그래도 스윙판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 우울증에 스윙이 최고의 특효약이라는 것은 이미 증명된 이야기다. 신나게 춤추다 보면 직장 스트레스쯤이야 어느새 저만치 날아간다. ‘춤’과 ‘일’이 뒤바뀌어 춤을 출 재력을 마련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도 있는 지경이니 두말하면 잔소리. 오죽하면 ‘스윙 폐인’이라 해서 밤새 춤추고 바로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고, ‘백조 스윙’이라 해서 낮이 무료한 백조들끼리 모여 춤추는 모임까지 등장했을까?
춤에 미친 사람, 그것이 현재 내 모습이다. 하지만 일말의 후회도 없다. 그저 즐겁고 행복할 뿐. 이 즐거움을 함께 나눌 사람이 아직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 스윙족들의 주 활동 무대는 ‘스윙바’이며, 프로댄서나 전문학원이 별로 없어, 인터넷 카페의 동호회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춤이 당기는 사람은 다음카페에서 ‘스윙’을 검색해보시라. 특히 남성들은 스윙판의 여초현상 덕분에 어딜 가든 대접받을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이 얌전히 앉아 간택되기만을 기다리느냐? 그건 절대 아니다. 자고로 남자든 여자든 먼저 춤을 신청하는 자가 멋진 파트너를 쟁취하는 법이다.
나에게 꿈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극작가 겸 배우로서 ‘스윙댄스로 뮤지컬을 만드는 것’이라 답하겠다. 실은 하나 더 있다. 샐리 포터 감독의 <탱고 레슨>처럼, 제대로 된 춤 영화 하나 만드는 것. 그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춤은 계속돼야 한다, 반드시.
* 10기 독자편집위원 위성은씨는 현재 (주)성우애드컴에서 사보 취재 및 카피라이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다음(Daum) 동호회 ‘박쥐 스윙’에서 애칭 ‘가락’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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