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여고 시절 선생님들을 향해 불태웠던 애타는 짝사랑들을 제껴두고,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나를 뿅가게 만든 첫사랑, 그리고 몇명의 남정네들을 지나 듬직한 동지가 되어준 지금의 남편에 이르기까지, 나의 왼손 약지는 항상 그들과의 사랑을 증명해주는 커플링을 끼고 다니느라 바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약지와 커플링 사이의 관계를 나와 내 사랑과의 관계라고 믿게 됐다.
내가 일에 빠져서 남자친구가 부담스럽다고 느꼈을 때 그와 맞춘 커플링은 이상하게도 잘 맞지 않아서 몇번이나 크기를 조절해야 했는데 얼마 뒤 난 그를 차버리면서 그 어울리지 않던 커플링에서 벗어났다. 또 다른 남자친구와의 커플링을 내 실수로 잃어버렸을 땐 신기하게도 그가 나를 떠나갔다. 그 시절 커플링이 사라진 내 약지와 내 마음은 얼마나 허전했던지….
임신하고 애를 낳고 산후조리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통제 못할 정도로 신경이 예민해졌을 때 나는 남편에게 정말 못되게 굴었다. 그때는 결혼반지가 부어 있는 내 약지를 얼마나 조여대던지 아픔을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나중에는 피부에 부작용까지 생겨서 끼고 다닐 수 없었다. 남편이 미운 만큼 반지도 미웠다. 그리고 애를 낳고 평정을 되찾았을 때, 내가 남편과의 정상 관계를 회복한 걸 아는 듯 나의 약지와 결혼반지는 다시 친해져 있었다.
참 억지 믿음일지도 모르겠다. 반지가게 주인의 실수로 크기가 계속 안 맞고, 내가 덜렁거리다가 잃어버릴 수도 있는 일이고, 끼던 반지가 빠지면 허전해지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고, 아이를 가지면 몸이 부으니 꽉 낀 반지 때문에 부작용 생기는 것도 흔한 일일 텐데 말이다.
하지만 나의 약지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너 진짜 그 사람 사랑하니?” “네 사랑이 떠나려고 해!” “너 남편이랑 요즘 냉랭하지?”
손가락 살이 빠져 비눗기라도 묻을라치면 내 약지에서 미끌미끌 도망쳐버려 한참을 찾아헤매야 하는 요즘, ‘화장실에선 반드시 반지를 빼놓을 것’이라고 생각만 하고 넘겨버릴 수 없다. ‘처가살이와 육아 문제로 인한 갈등과 다혈질인 내 성격 때문에 남편이 맘 상하지는 않을까? 반지처럼 미끄덩 정이 떨어져버리진 않을까? 마인드 컨트롤을 잘하자!’라고 생각해야만 한다. 나의 약지는 나의 오래된 ‘사랑 컨설턴트’다. 약지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최김재연/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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