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그러니까 2000년 3월에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신발이라고는 교복용 구두와 운동화밖에 신어보지 못했던 나는 곧 면바지와 청바지에 두루 신을 만한 구두를 찾게 됐고, 그때 산 게 바로 이 신발이다.
일명 마틴 구두. 상표명을 말하게 되어 좀 뭣하지만, 마치 호치키스가 그렇듯, 그 상표명이 보통명사처럼 통용될 만큼 많은 대학생들이 이런 스타일의 신발을 신었다. 얄팍한 비주류 근성이 있는 나는 원래 남들이 다 갖고 있는 것, 남들도 다 입고 신는 것은 안 사고, 안 입고, 안 신고 본다는 주의지만 이 구두만큼은 사서 줄기차게 신고 다녔다. 내가 즐겨 입는 면바지에 이것만큼 어울리는 신발이 없었기 때문이다. 튼튼하고 편한 것은 물론이다.
덕분에 이 구두는 내 대학 생활 내내 좋은 벗이었다. 학교에서, 학교 밖에서 발에 땀 나도록 돌아다닐 때 나는 어김없이 이 구두를 신었다. 여기저기 여행을 다닐 때 신었던 것도 바로 이놈이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유럽, 인도까지 누비고 다녔으니, 이만하면 호강한 것 아닌가.
세월 앞에 장사 없기는 신발도 마찬가지. 구두의 앞코는 다 까지고, 뒤축은 다 해어지고, 굽은 다 닳아버렸다. 아버지는 내 신발을 보실 때마다, 버리고 하나 새로 사라고 하시지만 나는 선뜻 그렇게 되질 않는다. 뒤축과 굽만 갈면 아직 신을 만한데다, 내 20대 초반의 한 기억을 떼어버리는 것 같아서 영 서운하다. 그렇다고 그 기억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굽이 다 닳은 신발도 계속 신을 순 없는 노릇이니, 이젠 신발을 수선 가게에 맡겨야 할 것 같다. <채근담>에서도 이르지 않았던가. “먼 길을 가려는 사람은 신발을 고쳐 신는다”고. 신발을 고쳐 신고, 올봄에는 어디를 밟아볼까.
임소희/ 인천시 연수구 연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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