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끝난 그해 9월, 우리 집은 3년여의 피난살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환도의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연말을 보내고, 이듬해 국민학교 2학년생으로 올라가기 직전인 3월 어느 날(당시는 새 학기가 4월부터 시작됐다) 이제 한글을 깨우쳐 한창 호기심이 많았던 나에게 “이건 네 책이니 읽어봐라” 하시면서 아버지께서 책 한권을 건네주셨다. 그 책이 바로 세계 위인전 <위인은 이렇게 가르쳤다>였다. 발행은 서울제일문화사, 인쇄는 자유민보사 인쇄부. 발행일은 단기 4287년 1월이고 분량은 총 152쪽으로 값은 80환이었다.
잡지가 무척 귀했던 어린 시절, 네살 터울인 누님의 <새벗>은 어깨 너머로 종종 봤지만, “내 책이다”라고 실감하면서 책을 펼쳐보긴 이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누님은 책 보는(읽기는 해도 결코 의미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을) 동생의 모습이 귀여웠던지, 책이 헐어버린다고 말하면서 제본선 위 아래 책 모서리에 은박지를 붙여주었다. 그 뒤에도 아버지는 유엔군 사령부에서 발간한 <자유의 벗>과 <학원> 등을 가져다주셨지만, 어찌 이 책만 하랴! 항상 애지중지 곁에 두고 보기를 50여년, 겉표지를 보호한다고 누런 서류 봉투를 오려 감쌌지만 이미 너무 낡아버려서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겨야 하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 돋보기 없이 읽기도 힘들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위쪽 은박지는 아직까지 조금이나마 붙어 있다.
은박지를 붙여준 누님은 미국으로 이민 간 지 오래고 책을 사다주신 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는다.
김재철/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매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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