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당시 나는 고2였고, 형은 대학교 2학년이었다. 형이 과제물 작성에 필요하다며 힘들게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286 컴퓨터와 도트프린터를 집에 들여놓았다. 지금이야 흔하디 흔한 것이 PC지만, 그때는 컴퓨터가 있으면 부자 소리 들을 정도였으니 당시의 기쁨과 감개무량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고등학교 때 숙제를 워드 파일로 출력해서 제출하면 아이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아이들이 너도나도 컴퓨터 출력을 부탁하는 바람에 밤에 삑삑 소리내는 프린터의 기계음 때문에 잠을 못 자겠다는 부모님한테 혼도 나고, 이 컴퓨터가 네 것이냐는 형의 꾸지람을 듣던 기억이 생생하다. 대학교에 입학한 뒤, 마음에 드는 여학생의 환심을 사기 위해 리포트를 대신 작성해주느라 특유의 독수리 타법으로 밤을 새웠던 기억도 잊혀지지 않는다.
십수년이 세월이 흐른 지금 참으로 성능 좋고 인쇄도 잘되는 레이저프린터들이 출시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 도트프린터를 고집한다. 사진 출력도 안 되고 시간도 세월아 네월아 여드레 팔십리지만, 잔고장 없이 묵묵하게 특유의 삑삑 소리를 울려대며 제 할 일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프린터 표면의 얼룩과 흠집이 마치 내 인생의 굴곡과 역정처럼 보여서 더더욱 애착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이 프린터만큼이나 큰 도움이 되는 동반자가 생긴다면, 그것은 내 인생의 후덕이요 덕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재범/ 대전시 중구 문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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