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계는 내 방에서 산 지 25년이 넘었다. 주민등록등본에 새 줄을 추가하며 여기저기 이사를 다닐 때에도 끈질기게 달라붙어선 오늘도 내 방에 앉아 바쁘게 팔을 돌리고 있다.
어릴 때 심심하면 색연필을 꺼내놓고 시계에 그려진 스누피를 따라 그리면서 놀았다. 아침 일찍 기상해야 할 땐 말 없는 스누피가 상상할 수 없는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의지해서 잠을 깼다. 책상은 바뀌어도 시계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특별히 애착을 가지고 소중히 다룬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지금껏 내 방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 꽤 높은 곳에서 여러 번 떨어져서 시침과 분침이 어긋나버렸기에 5시, 7시 정각에 분침이 12를 제대로 가리키지 못하건만 시계도 나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시침과 분침이 두루뭉술하게 생겨서 정확한 시각을 가리키기란 태생적으로 한계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별로 불편하지 않다. 이게 아날로그의 미덕일까? 그렇다. 적당함도 미덕이다. 조금 빗겨 있는 여유를 자랑하지 않는가. 하지만 고백해야겠다. 늑장 부리는 성격 탓에 어쩔 수 없이 이 스누피는 남들보다 10분 빨리 팔을 휘두르고 있다. 사실, 시계는 나를 재촉하는 수단이다.
그래도 가끔은 애써 심오한 단상에 젖어보기도 한다. ‘오래된 것이 주는 낡은 느낌이 아름답다’는 말이 ‘새로운 게 좋다’는 말만큼이나 강박처럼 느껴지는 요즘,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이 시계의 한결같음이 좋다. 아마 이놈은 25년 뒤에도 “50년 된 시계예요”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평범할 것이다. 그런 무심한 생김새가 좋다. 적당히 생겨먹은 시계에서 위로를 구하는 내 모습만이 25년을 증명하고 있다.
김경미/ 서울시 성동구 행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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