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좀더 발랄해질 수 없겠니?

895~901호 독자 모니터링, 새 옷 입고 찾아온 개편호에 대한 반가움과 가슴을 누르는 무거운 주제들에 대한 아쉬움
등록 2012-03-30 17:21 수정 2020-05-03 04:26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을 하루 남겨둔 저녁이건만 휑한 바람이 속절없이 부는 날이었다. 3월19일 저녁 7시 바람을 뚫고 6명의 독자편집위원이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에 모였다. 위원들의 표정은 지난 1월 말 첫 모임 때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이곳 회의실만은 봄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훈훈한 정담과 칭찬이 오가는 사이에도 비판의 칼바람은 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굵직한 이슈가 담긴 7권에다, 설 특대호며 창간 18돌 기념 특대호 등으로 볼륨마저 큰 책들을 돌이켜 비평하자니 3시간을 꼬박 집중해서 달려야 했다.

그래픽, 설명할 것인가 단순화할 것인가

사회: 오랜만이다. 895호부터 이야기해보자. 설 특대호였다.

임성빈: 영화 포스터 같은 표지 이미지가 좋았다. 눈에 띄었다.

장슬기: ‘박근혜의 문제는 박근혜다’라는 표지이야기 제목도 좋았다. 은유적이면서도 기사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와닿았다.

조원영: 정치 ‘2012년 한국 정치, 4개의 단서를 붙잡다’와 같이 키워드를 잡아주는 기사가 좋다.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줘서 이해가 쉬웠다.

임성빈: 마곡사 소농 공동체 실험을 다룬 특집 ‘사람과 땅이 상생하는 우애의 마을’도 좋았다. 이런 공동체 마을을 소개하는 기사가 시리즈로 나와도 좋겠다.

조원영: 여담인데, 설 특집호 퀴즈가 너무 어렵더라. 풀다가 포기했다. (일동 동의)

임성빈: 896호 표지이야기에서 다룬 영화 은 다들 보셨나.

권채원: 영화 이전에 공판 기록을 봤는데, 김 교수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사법부가 나쁘게 보이더라. 기사에서는 법대 교수와 제자들이 영화를 보고 토론한 ‘사법부, 국민 위해 있는 거 맞나’라는 꼭지가 좋았다. 먼저 메인 기사에서 문제의식을 던지고, 뒤에 일반인들이 어떻게 느꼈는지, 그 안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어서 좋았다.

김자경: 그런데 구성상 이 기사가 뒷부분에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메인, 기고문, 법대생 토론’ 순으로 배치했다면 더 재미있게 읽혔을 듯하다.

임성빈: 특집 ‘삼각김밥 슈퍼갑들의 폭식’은 기사는 좋은데 표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더라. 그래픽에서 뺄 건 빼고 한눈에 딱 보이게 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매번 의 그래픽이나 도표에 아쉬움을 느낀다.

조원영: 표 내용이 세세하니 나는 오히려 친절히 설명해주는 듯해서 좋았다.

김자경: 대기업 관련 기사가 계속 쏟아지는데, 삼각김밥 기사는 그중에서도 서민의 생활과 직결돼서 더 와닿았다.

임성빈: 897호는 표지 제목이 압박이었다. ‘쌍용차 1000일의 고독 이것은 당신의 이야기.’ 상상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이정주: 쌍용차 문제는 심각성에 비해 너무 이슈화되지 않는 것 같다. 마힌드라로 넘어간 뒤 아예 외국 회사로 생각들 하는 건지.

장슬기: 해고자들의 얼굴 그림 위에 눈이 쌓인 것을 찍은 사진이 좋았다. 너무 슬펐다. 간절함이 전해졌다.

조원영: 기사를 읽으며 힘들고 슬프고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뒤에 이어진 희망텐트촌, 희망뚜벅이 얘기에 마음이 나아졌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겠다는.

‘문제적 인간’, 진중권 교수 공방

사회: 898호 표지이야기에서는 논객 진중권씨를 다뤘다.

장슬기: 진중권씨에 대해 너무 잘 써준 것 같다. ‘대중에 편승한 반지성을 비판하는 문제적 개인’이라는 표현에 동의할 수 없다.

임성빈: 그런데 그 말 그대로 아닌가.

이정주: 직설의 강도를 넘어 독설로 갈 때가 있다. 풍자는 강자한테 쓰는 거다. 아무나 잡아서 독설을 해선 안 된다.

임성빈: 내 생각에 그는 누구를 상대하든 똑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김자경: 한 인물을 다루는 기사의 전체적인 톤에는 동조한다. 그러나 ‘김수영 아들 진중권?’이라는 연결은 비약이었다.

장슬기: 특집 ‘위태로운 진보정치 1번지’를 인상 깊게 읽었다. 진보정당에 대해 보도하는 매체가 별로 없는데 자세히 알려줘서 좋았다.

임성빈: 도표 등 이해를 돕는 시각적 요소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듯하다. 사람이 많아지면 머리가 복잡해져서. (웃음)

장슬기: 2012 만인보 ‘책을 멀리하는 시대 그만큼 위험한 시대’에서 고전을 불온서적으로 여긴 검경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당한 서점 대표 이야기는 무섭고 황당했다. 이런 현실을 오히려 담담하게 그려 좋았다.

김자경: ‘신형철의 문학 사용법’을 평소 열심히 읽는다. 그런데 이번호에는 유독 시 인용이 길어서 읽는 데 불편했다.

임성빈: 이 칼럼은 두 페이지로 늘렸으면 좋겠다.

김자경: 899호 ‘재벌의 X맨, 6인방+α 명단 찾았다’는 어땠나. 개인적으로 민주통합당만큼 답답한 당이 없는 듯하다.

장슬기: 성역이 없는 기사였다.

권채원: 여전히 고액 등록금을 내고 있는 학생으로서 특집 ‘지상에 방 한 칸 없는 청춘들’을 열심히 읽었다. 등록금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장학금 문제를 다뤄봤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파이를 어떻게 나눠서 얼마큼 돌려주는지 궁금하다.

김자경: 레드 기획 ‘저 치밀한 농담과 장난을 처벌하라’가 재미있었다. 충격적인 사건이었는데, 기사에 잘 녹인 듯하다.

임성빈: 그런데 이 주제가 레드 기획에 굳이 들어가야 하나.

사회: 900호에서는 창간 18돌을 맞아 대대적인 개편을 했다. 어떻게들 보셨나.

조원영: 표지의 바뀐 글꼴이 좋다. 전반적으로도 많이 세련돼졌다. 레드 기획의 글꼴은 예전 것이 더 깔끔해서 좋더라.

장슬기: 좀더 젊어진 느낌이다. ‘크로스- 이주의 트윗’을 재미있게 읽었다.

권채원: 크로스 필자를 세대별로 나눈 점은 좋은데, 막상 글을 보면 그런 구분이 안 된다.

장슬기: 대구 지하철 참사를 다룬 표지이야기 ‘우리는 생존자가 아니다’를 읽고 잊고 있던 사건을 되새길 수 있었다.

김자경: 자신이 생존자인 것조차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조원영: 우리나라가 큰 사고를 겪은 게 대구 지하철만은 아닌데, 매번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는 건 심각한 일이다.

이정주: 나는 생각이 좀 다른데…. 900호 표지가 아니더라도 다룰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나.

장슬기: 칼럼 ‘이창근의 해고 일기’와 901호에 연재를 시작한 ‘황이라의 스머프 통신’은 내용은 좋으나 노동자 이슈가 주로 산업노동자와 관련된 얘기에 편중한 듯하다. 더 다양한 노동자의 이야기를 실어줬으면 한다. 예컨대 택시노동자, 시간강사, 프리랜서, 학원강사, 대학생 알바 등.

“누구나 끝까지 읽을 수 있는 기사를”

이정주: 좀 재기발랄하고 가벼운 얘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이 너무 무거운 독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김자경: 예를 들어 특집 ‘나는 비혼을 선택하지 않았다’도 좀더 유쾌하게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장슬기: 나는 오히려 이 기사에 와서 숨통이 트이던데. 대구 지하철 참사 등을 쭉 읽어오다가 말랑말랑해져서 좋았다. 여자친구가 이른바 보수 진영인데, 에서 이 기사를 유일하게 끝까지 읽었다.

임성빈: 정치 성향에 상관없이 누구나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전략적으로 이런 기사를 키울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정주: 901호에서는 민간인 불법사찰을 다뤘다.

임성빈: 표지 제목인 ‘불법사찰 해봐서 아는데?’와 달리 기사에 붙은 ‘청와대가 민간인 불법사찰 개입 해명할 차례다’ ’부실 수사 증언하는 재판 기록’ 등의 제목이 좀 딱딱해서 어려운 느낌을 받았다.

권채원: 특집 ‘이런 18, 우리 이야기 좀 들어볼래?’가 좋았다. 어른들이 보기에 청소년은 미숙한 인격체로 다 같은 것 같은데, 개개인의 얘기를 들어본 점이 좋았다.

조원영: 세대 차이를 느끼긴 했지만 흥미롭게 읽었다.

이정주: 고등학생들은 이 기사를 어떻게 볼까 생각해봤다. 대안학교·외고 학생의 멘트 비율이 일반고와 똑같이 나눠져 있던데, 실제 학교 구성에 비해 너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 않았나. 좀더 평범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면 좋았을 듯하다.

사회·정리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독자편집위원이 본 창간 18돌맞이 개편
확 바뀐 ‘한겨레21’, 제 점수는요~

임성빈 ★★★★☆
900호의 음울한 표지 때문에 새 단장이 산뜻하게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표지를 들춰보니 확연히 달라진 걸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새로 시작하는 경제·법 칼럼들은 지난번보다 쉬운 이야기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어 기대된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두 필자가 얘기하는 크로스도 전보다 긴장이 생겼다. 연관된 트위터 내용을 눈에 띄게 편집한다면 훨씬 더 효과적이겠다. ‘전우용의 서울탐史’는 가까운 역사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해주는데, 지명을 언급할 때 간단하게 지도상에서 위치를 보여준다면 더 좋겠다.


조원영 ★★★★
한결 세련된 폰트와 깔끔한 편집에 눈이 흐뭇(+별1). 독자의 가독성을 고려했다니 마음도 흐뭇(+별1). 특히 목차가 왜 이렇게 예뻐졌죠?(+별1) 늘어난 경제 칼럼이 카드값 내역 차마 못 보는 나를 계도할 것이야, 두근두근(+별1). 어머, 카툰이 2개나! 거는 기대가 무척 큽니다(+별1). 레드 기획 폰트는 왜 혼자 복고풍으로 갔지? 폰트 외엔 큰 차이를 모르겠다는 점도 좀 아쉽고, 허풍선 의원님 그리울 거예요, 흑흑(-별1). 그리하여 토털 별점 4점. 남은 별 하나는 앞으로 더 풍성한 콘텐츠로 채워주시길!

김자경 ★★★★☆
첫 페이지 ‘만리재에서’부터 시원하고 깔끔한 글씨가 눈에 띈다. 알록달록 만화까지 넣고 보니 한층 산뜻하고 발랄해진 듯한 . 다양해진 칼럼도 기대된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경제 칼럼이 주제별로 풍성해져 독자들을 똑똑이로 만들어줄 것 같다. 궁금한 지금의 이야기를 여러 필자의 촌철살인으로 풀어가는 ‘크로스- 이주의 트윗’은 벌써부터 애독 중이다. 독자와 가까워지려는 편집진의 노력이 오롯이 느껴지는 개편이다.


권채원 ★★★★☆
발랄해지고 환해졌다. 경제 칼럼과 노동 칼럼이 대폭 늘어났다기에 ‘공부 모드’ 돌입해야겠다 싶더니, 금세 말랑말랑한 ‘레드 樂’과 연애 칼럼 등이 긴장을 풀어준다. 특히 기대 중인 연재는 ‘크로스-이주의 트윗’이다. 한 가지 이슈에 대한 세대 간 담론을 번갈아가며 지켜볼 수 있어 흥미롭다. 새 만화 ‘아스트랄 보이즈’는 귀여운 그림체가 좋다. 앞으로 ‘빵 터질’지는 좀더 두고 봐야겠다. 전반적으로 독자 처지에서 고민한 흔적이 보여 고마운 개편안이다. 글자가 커져서 눈이 덜 피곤하다는 엄마의 말씀도 전한다.


이정주 ★★★
전반적으로 개편을 한 듯 안 한 듯 ‘같기도’의 인상을 주었다. 시사 만화가 생겨 시사 잡지에 대한 부담을 덜어준 것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개인적으로 경제를 쉽게 설명해주는 선대인씨의 칼럼이 기대된다. 그러나 여전히 시사 잡지의 우등생(?) 은 모범생 콤플렉스를 버리지 못한 것 같다. 대중의 일상적 욕망을 자극하는 스포츠·문화 등의 보강이 아쉽다. 이른바 개편이라면 대대적인 일탈도 필요할 듯. 하긴 모범생에게 어느 날 갑자기 ‘가출’을 권유할 순 없는 법. 서서히 변화하길 기대한다.


장슬기 ★★★★☆
크로스다운 크로스가 나타났다. 짧아지고 쉬워져서 맘에 든다. 금태섭·선대인·홍기빈씨 등 유명인들의 칼럼도 보인다. 대중성 있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레드 기획의 폰트가 화려해졌다. 딱딱함을 없애려는 노력으로 보이는데, ‘레드’가 주는 묘한 장벽(?)을 없애진 못했다. 다음 개편 때는 레드 기획 타이틀 자체를 바꿔보는 걸 제안해본다. 사실 개편보다 중요한 것은 900호가 넘도록 언제나 우리 사회의 소외된 곳을 밝혀주었다는 사실이다. 언제나 응원한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