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을 하루 남겨둔 저녁이건만 휑한 바람이 속절없이 부는 날이었다. 3월19일 저녁 7시 바람을 뚫고 6명의 독자편집위원이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에 모였다. 위원들의 표정은 지난 1월 말 첫 모임 때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이곳 회의실만은 봄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훈훈한 정담과 칭찬이 오가는 사이에도 비판의 칼바람은 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굵직한 이슈가 담긴 7권에다, 설 특대호며 창간 18돌 기념 특대호 등으로 볼륨마저 큰 책들을 돌이켜 비평하자니 3시간을 꼬박 집중해서 달려야 했다.
그래픽, 설명할 것인가 단순화할 것인가
사회: 오랜만이다. 895호부터 이야기해보자. 설 특대호였다.
임성빈: 영화 포스터 같은 표지 이미지가 좋았다. 눈에 띄었다.
장슬기: ‘박근혜의 문제는 박근혜다’라는 표지이야기 제목도 좋았다. 은유적이면서도 기사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와닿았다.
조원영: 정치 ‘2012년 한국 정치, 4개의 단서를 붙잡다’와 같이 키워드를 잡아주는 기사가 좋다.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줘서 이해가 쉬웠다.
임성빈: 마곡사 소농 공동체 실험을 다룬 특집 ‘사람과 땅이 상생하는 우애의 마을’도 좋았다. 이런 공동체 마을을 소개하는 기사가 시리즈로 나와도 좋겠다.
조원영: 여담인데, 설 특집호 퀴즈가 너무 어렵더라. 풀다가 포기했다. (일동 동의)
임성빈: 896호 표지이야기에서 다룬 영화 은 다들 보셨나.
권채원: 영화 이전에 공판 기록을 봤는데, 김 교수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사법부가 나쁘게 보이더라. 기사에서는 법대 교수와 제자들이 영화를 보고 토론한 ‘사법부, 국민 위해 있는 거 맞나’라는 꼭지가 좋았다. 먼저 메인 기사에서 문제의식을 던지고, 뒤에 일반인들이 어떻게 느꼈는지, 그 안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어서 좋았다.
김자경: 그런데 구성상 이 기사가 뒷부분에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메인, 기고문, 법대생 토론’ 순으로 배치했다면 더 재미있게 읽혔을 듯하다.
임성빈: 특집 ‘삼각김밥 슈퍼갑들의 폭식’은 기사는 좋은데 표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더라. 그래픽에서 뺄 건 빼고 한눈에 딱 보이게 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매번 의 그래픽이나 도표에 아쉬움을 느낀다.
조원영: 표 내용이 세세하니 나는 오히려 친절히 설명해주는 듯해서 좋았다.
김자경: 대기업 관련 기사가 계속 쏟아지는데, 삼각김밥 기사는 그중에서도 서민의 생활과 직결돼서 더 와닿았다.
임성빈: 897호는 표지 제목이 압박이었다. ‘쌍용차 1000일의 고독 이것은 당신의 이야기.’ 상상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이정주: 쌍용차 문제는 심각성에 비해 너무 이슈화되지 않는 것 같다. 마힌드라로 넘어간 뒤 아예 외국 회사로 생각들 하는 건지.
장슬기: 해고자들의 얼굴 그림 위에 눈이 쌓인 것을 찍은 사진이 좋았다. 너무 슬펐다. 간절함이 전해졌다.
조원영: 기사를 읽으며 힘들고 슬프고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뒤에 이어진 희망텐트촌, 희망뚜벅이 얘기에 마음이 나아졌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겠다는.
‘문제적 인간’, 진중권 교수 공방
사회: 898호 표지이야기에서는 논객 진중권씨를 다뤘다.
장슬기: 진중권씨에 대해 너무 잘 써준 것 같다. ‘대중에 편승한 반지성을 비판하는 문제적 개인’이라는 표현에 동의할 수 없다.
임성빈: 그런데 그 말 그대로 아닌가.
이정주: 직설의 강도를 넘어 독설로 갈 때가 있다. 풍자는 강자한테 쓰는 거다. 아무나 잡아서 독설을 해선 안 된다.
임성빈: 내 생각에 그는 누구를 상대하든 똑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김자경: 한 인물을 다루는 기사의 전체적인 톤에는 동조한다. 그러나 ‘김수영 아들 진중권?’이라는 연결은 비약이었다.
장슬기: 특집 ‘위태로운 진보정치 1번지’를 인상 깊게 읽었다. 진보정당에 대해 보도하는 매체가 별로 없는데 자세히 알려줘서 좋았다.
임성빈: 도표 등 이해를 돕는 시각적 요소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듯하다. 사람이 많아지면 머리가 복잡해져서. (웃음)
장슬기: 2012 만인보 ‘책을 멀리하는 시대 그만큼 위험한 시대’에서 고전을 불온서적으로 여긴 검경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당한 서점 대표 이야기는 무섭고 황당했다. 이런 현실을 오히려 담담하게 그려 좋았다.
김자경: ‘신형철의 문학 사용법’을 평소 열심히 읽는다. 그런데 이번호에는 유독 시 인용이 길어서 읽는 데 불편했다.
임성빈: 이 칼럼은 두 페이지로 늘렸으면 좋겠다.
김자경: 899호 ‘재벌의 X맨, 6인방+α 명단 찾았다’는 어땠나. 개인적으로 민주통합당만큼 답답한 당이 없는 듯하다.
장슬기: 성역이 없는 기사였다.
권채원: 여전히 고액 등록금을 내고 있는 학생으로서 특집 ‘지상에 방 한 칸 없는 청춘들’을 열심히 읽었다. 등록금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장학금 문제를 다뤄봤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파이를 어떻게 나눠서 얼마큼 돌려주는지 궁금하다.
김자경: 레드 기획 ‘저 치밀한 농담과 장난을 처벌하라’가 재미있었다. 충격적인 사건이었는데, 기사에 잘 녹인 듯하다.
임성빈: 그런데 이 주제가 레드 기획에 굳이 들어가야 하나.
사회: 900호에서는 창간 18돌을 맞아 대대적인 개편을 했다. 어떻게들 보셨나.
조원영: 표지의 바뀐 글꼴이 좋다. 전반적으로도 많이 세련돼졌다. 레드 기획의 글꼴은 예전 것이 더 깔끔해서 좋더라.
장슬기: 좀더 젊어진 느낌이다. ‘크로스- 이주의 트윗’을 재미있게 읽었다.
권채원: 크로스 필자를 세대별로 나눈 점은 좋은데, 막상 글을 보면 그런 구분이 안 된다.
장슬기: 대구 지하철 참사를 다룬 표지이야기 ‘우리는 생존자가 아니다’를 읽고 잊고 있던 사건을 되새길 수 있었다.
김자경: 자신이 생존자인 것조차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조원영: 우리나라가 큰 사고를 겪은 게 대구 지하철만은 아닌데, 매번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는 건 심각한 일이다.
이정주: 나는 생각이 좀 다른데…. 900호 표지가 아니더라도 다룰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나.
장슬기: 칼럼 ‘이창근의 해고 일기’와 901호에 연재를 시작한 ‘황이라의 스머프 통신’은 내용은 좋으나 노동자 이슈가 주로 산업노동자와 관련된 얘기에 편중한 듯하다. 더 다양한 노동자의 이야기를 실어줬으면 한다. 예컨대 택시노동자, 시간강사, 프리랜서, 학원강사, 대학생 알바 등.
“누구나 끝까지 읽을 수 있는 기사를”
이정주: 좀 재기발랄하고 가벼운 얘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이 너무 무거운 독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김자경: 예를 들어 특집 ‘나는 비혼을 선택하지 않았다’도 좀더 유쾌하게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장슬기: 나는 오히려 이 기사에 와서 숨통이 트이던데. 대구 지하철 참사 등을 쭉 읽어오다가 말랑말랑해져서 좋았다. 여자친구가 이른바 보수 진영인데, 에서 이 기사를 유일하게 끝까지 읽었다.
임성빈: 정치 성향에 상관없이 누구나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전략적으로 이런 기사를 키울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정주: 901호에서는 민간인 불법사찰을 다뤘다.
임성빈: 표지 제목인 ‘불법사찰 해봐서 아는데?’와 달리 기사에 붙은 ‘청와대가 민간인 불법사찰 개입 해명할 차례다’ ’부실 수사 증언하는 재판 기록’ 등의 제목이 좀 딱딱해서 어려운 느낌을 받았다.
권채원: 특집 ‘이런 18, 우리 이야기 좀 들어볼래?’가 좋았다. 어른들이 보기에 청소년은 미숙한 인격체로 다 같은 것 같은데, 개개인의 얘기를 들어본 점이 좋았다.
조원영: 세대 차이를 느끼긴 했지만 흥미롭게 읽었다.
이정주: 고등학생들은 이 기사를 어떻게 볼까 생각해봤다. 대안학교·외고 학생의 멘트 비율이 일반고와 똑같이 나눠져 있던데, 실제 학교 구성에 비해 너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 않았나. 좀더 평범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면 좋았을 듯하다.
사회·정리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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