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하고 징한 비가 만리재를 적시던 지난 8월16일 저녁,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에서 22기 독자편집위원회 두 번째 회의가 열렸다. 개인 사정으로 불참한 류하경 위원을 제외한 7명의 위원들은 한 달여 만의 만남에 어색함 반 반가움 반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회의실에 도착했다. 내부고발자 문제를 다룬 869호부터 강제수용권 제도의 정당성을 짚은 873호까지 독편위원들은 기사의 내용과 문장부터 제목까지 때론 은근하게, 때론 직설적으로 기사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특히 부활한 기자소환제에 첫 번째로 소환된 고나무 기자는 독편위원들의 예리한 지적과 살가운 격려에 일희일비했다.
스타일보다 쉬운 문장이 더 중요
사회: 반갑다. 빗길에 오느라 고생했다. 이번 회의부터 기자소환제가 부활한다. 소환 기자를 묻는 질문에 무려 4분이 고나무 기자를 꼽았다. 고 기자가 쓴 기사들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뒤 출석할 고 기자와 나눴으면 한다. 가차 없는 질정을 부탁드린다. 먼저 869호 특집 ‘이러다간 오래 못 가는 노동의 새벽’부터 이야기를 나눠보자.
손웅래: 재밌었다. 아무래도 기자가 직접 뛰어들어서 잘 읽히는 것 같다. 야간노동은 일자리 창출 측면도 있는데 너무 안 좋게만 본 것은 아닌가 싶었다. 물론 야간노동자의 임금 부분은 더 높게 보전해줘야 하지만.
김종옥: 난 생각이 다르다.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24시간 휘황찬란한 나라가 없다. 야간노동에 너무 관대한 것이 문제가 아닌가. 정말 한국 사람들은 날을 새워가며 밖에서 논다. (웃음)
유미연: 우리나라가 치안이 좋아서 그런 거 아닌가. (웃음) 야간노동이 인간의 몸을 갉아먹는 게 사실이다. 인간은 햇빛을 받으며 일어나고 어두워지면 자도록 태어났는데, 그걸 앗아가는 거 아닌가.
정은진: 기사 내용과는 상관없는 건데, 마지막 문장의 ‘밤톨 같은 사례’라는 표현은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작은 사례라는 것인지. 스타일보다 이해하기 쉬운 기사가 더 중요하다.
박소영: vs에 실린 정동영 인터뷰가 시의적절했다. 날카로운 질문으로 정동영의 의도가 잘 드러났다.
유지향: 포토² ‘차마 잠들지 못하는 희망’이 좋았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사진에 잘 드러났다.
김아무개: 곽정수의 경제 뒤집어보기 ‘론스타 먹튀 배 아파할 필요 없다’가 의미 있었다. 외환은행 사태는 외환은행 노조 얘기만 받아쓴 기사가 대부분이다. ‘국부 유출’이라는 점에서 이슈가 커진 면도 있다. 기사에는 안 나와 있지만, 외환은행 사태의 뒤에는 고임금 금융노동자들의 잇속 챙기기도 있다.
사회: 기자소환제에 불려나온 고나무 기자가 표지 인물로 나온 870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김아무개: 오늘 살펴볼 다섯 권 중 제870호 표지가 가장 잘 나왔다고 생각한다. 메시지가 강렬하다. 같은 시기에 터진 두 이슈, ‘잡년 행진’과 ‘해병대 사고’를 한데 묶은 기획력도 돋보인다. 고착화된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해 성찰해온 매체가 아니면 생각하기 어려운 기발함이었다.
유미연: 슬럿시위 자체를 다룬 건 잘했다고 본다. 야한 옷이 성폭력을 낳는다는 논리는, 남성이 저지른 범죄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논리이지 않은가.
손웅래: 남자로서 부끄럽지만 동의한다. 특히 ‘성폭행 법정에 소환당한 청바지’ 기사는 남자들의 왜곡된 의식을 잘 보여줘서 좋았다.
비슷한 형식, 무리한 연결김종옥: 난 슬럿시위 기사가 뭔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제목이 지나치게 셌는데 기사 내용은 시위를 준비하는 내용이었고, 좀 억지라고 생각됐다. 슬럿시위를 말하려면 결국 성매매 관련 논점을 얘기해야 하는데, 그 부분은 빼고 넘어가니까 서론만 얘기한 느낌이었다.
유지향: 중산층 중심의 페미니즘과는 다른 새로운 운동의 출현이라는 의미부여는, 기존 페미니즘 운동을 너무 중산층 운동으로 규정한 게 아닌가 싶다.
박소영: 개인적으로 산재를 다룬 기획 기사가 표지이야기로 갔으면 어땠을까 싶다. 산재를 다룬 기사도 죽어 있는 느낌이었다. ‘죽어라 일했더니 죽으라니요’라는 제목이 확 와닿았다.
손웅래: 2011 만인보 ‘있는 힘껏 내달리는 청춘의 터치다운’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다른 호에 비해 엇나간 느낌이다. 그냥 럭비 선수를 인터뷰한 것 같다. 비인기 종목의 서러움은 많이 접한 얘기 아닌가.
정은진: 솔직히 대학교 학보사 기자가 아는 사람에 대해 그냥 쓴 거 같은 느낌도 들었다.
사회: 걷고 싶은 길과 세계인의 휴가를 다룬 871호는 어땠나.
유지향: 세계 각국을 하나씩 다루는 포맷은 이제 조금 식상하다. 자주 쓰는 거 같다. 다만 문화적인 부분이랑 노동시간을 같이 얘기해줘서 정보성은 도드라졌다.
정은진: 세계인의 휴가에 나온 싱글 직장인의 경우는 우리나라도 비슷할 듯싶다. 하지만 등록금 기사처럼 읽고 배아픈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유미연: 표지이야기 내용이 너무 많지 않았나. 거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그다음에 나온 기획 ‘고쳐 쓴 우산, 태풍도 두렵지 않다’는 좀 뜬금없었다.
정은진: 우산을 다룬 기획은 물자 절약의 의미를 다시금 알게 했다. 이세영 기자의 표지이야기 ‘걷고 싶은 길’ 프롤로그는 너무 어려웠다. 시리즈의 시작인데 너무 어려운 거 아닌가. 또 지도 옆에 몇 시간짜리 코스인지 설명해주면 더 좋을 것 같다. 중간 제목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걸어라’라는 표현은 진부했다.
손웅래: 세계의 물가부터 등록금까지 포맷이 반복되는데 힘을 잃지 않게끔 보완했으면 한다. 영국이나 독일은 상황이 거의 비슷하다. 나라를 좀더 다양하게 할 순 없나.
김아무개: 특집 ‘한국형 복지국가의 길을 묻다’는 보수·진보 양쪽의 전문가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다는 의미는 있지만, 설문지 내용을 읽어주는 거랑 차이가 없어서 아쉬웠다. 공통점과 차이점은 뭔지 설명하지 않고 나열한 느낌이었다. 삼성 후세대에게 책임을 물은 곽정수의 경제 뒤집어보기 칼럼은 새로운 시각이었다.
사회: 872호에는 두 번째 피죤 기사가 실렸다. 의 연이은 보도로 피죤 이윤재 회장 일가의 막장 경영이 세상에 드러났는데 어떻게 봤나.
촌스런 논조와 불편한 띄워주기김종옥: 피죤 직원들이 한겨레신문사 앞에서 항의시위를 했다는 얘길 듣고 슬펐다. 회장이 안 나가면 칼로 찌른다고 했나. (웃음) 회장님이 연세도 많은데 그만 칼을 내려놓으셔야 한다. (웃음)
정은진: 아직도 이런 회사가 있다는 사실에 황당했다.
김아무개: 사회적 감시를 덜 받는 중견기업 가운데 이런 곳이 많을 것이다.
손웅래: 특집 ‘문재인, 정치의 복판에 서다’는 문재인이 정치의 복판에 섰다는 얘길 하기 위해 너무 많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다 들었던 말이다. 인터뷰도 새로운 게 없었다. 짧은 시기에 세 번이나 다뤘는데 새로운 얘기가 없어서 실망했다.
박소영: 문재인이 매력적 인물인 건 맞지만, 신드롬이라며 기사로 띄워주려는 거 아닌가라는 혐의를 지울 수 없었다.
유지향: 내가 예민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다문화 가정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꼬집은 ‘김성윤의 18 세상’과 국가를 강조한 ‘어머니, 당신께 태극기를 바친다’는 S라인은 논조가 서로 상충하는 것 같다.
정은진: 어머니가 한국 사람임을 강조하는 촌스러운 느낌의 기사였다.
사회: 마지막으로 넘어가자. 토지 강제수용권 문제를 다룬 873호는 어땠나.
유지향: 국내 사례에 더해 외국의 경우와 전문가 외고까지 붙여 기사의 취지를 잘 살린 표지이야기였다. 공익성으로 포장된 사익 추구 행위를 막을 사회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은진: 이슈추적 ‘디자인 광풍이 낳은 촌스런 서울’을 보며 철학 없이 하는 행정이 얼마나 촌스럽고 우스울 수 있는지 알게 됐다.
김종옥: 세빛둥둥섬 등 지금 진행되는 사업을 막을 수 있는 대안도 다뤘으면 좋았을 것이다.
김아무개: 미국 신용등급 하락을 다룬 초점 ‘미국발 잽 피하다 유럽발 카운터펀치 맞을라’를 좀더 키웠어야 하지 않나. 이때도 이미 주요한 사건이었다. 최근 워런 버핏이 감세 문제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제 우리도 증세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뤄야 할 때다.
정은진: 세계 ‘그러나 떠날 수 없는 두 번째 나라’를 보고 최근 노르웨이 사태의 이면을 알게 됐다. ‘지상 천국’이라고 생각한 이 나라에도 양극화 문제가 있다는. 물론 그마저도 우리 사회에 비하면 너무도 작은 문제이겠지만.
사회·정리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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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에서 팬미팅까지. 869호 표지이야기의 표가 불친절하다는 지적으로 시작된 고나무 기자 소환제는 ‘입만 살아가지고’ 팬이라는 고백으로 마무리됐다. 때론 어르고 때론 달래는 독편위원들의 노련함에 고나무 기자는 허허실실 작전으로 일관했다. 실제 소환제를 마무리하고 진행된 고나무 기자 팬미팅은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박소영: 869호 표지이야기 ‘정의의 인간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딸린 표가 너무 많아서 불친절하다.
고나무: 다음번에는 잘하겠다. (웃음) 원래 표가 친절한 형식은 아니지 않나. 재미없으나 해야 해서 한 거다. 인터넷으로 키워서 보면 조금 더 잘 보일 텐데. 돋보기 어플을 까시면. (웃음)
박소영: 기사 내용에 표를 더 자세히 설명해줬으면 좋았겠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김종옥: 870호 표지이야기 ‘강한 남자의 약한 본질’도 분석이 부족하다. 그리고 기자가 기사를 쓰고 노출이 심했다. 한 달 사이에 870호 표지에도 나오고 871호 표지이야기 ‘신발코를 보며 옛길을 걷다’에도 사진이 나오고. (웃음)
정은진: 871호 마지막 사진은 정말 마초적인 포즈다. (웃음)
고나무: 분석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달게 받겠다. 하지만 표지 사진은 솔직히 찍기 싫었다.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871호도 다른 사람이 없어서 억지로 찍었다.
유지향: 표지이야기 ‘묻지마 군기가 불행을 낳았다’는 뭔가 얘기를 하려다 만 느낌이다.
고나무: 군대심리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없다는 걸 기사를 취재하면서 알게 됐다. 심리학 관련해서 이쪽의 전문가가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깊이 있게 다루지 못했다.
정은진: 872호 표지이야기 ‘외로운 평화의 깃발, 강정’은 신문과 다르게 써서 좋았다.
김종옥: 맞다. 공을 많이 들였다. (얼굴을 보며) 근데 사진발이 좋은 거 같다. (모두 웃음)
고나무: 이런 긍정적인 자세 반갑다. (웃음)
손웅래: 872호 기사 중간에 삼성 광고가 있어서 눈에 거슬렸다. 한 꼭지만 지나고 실려도 됐을 텐데.
고나무: 아무래도 기사 중간에 넣으면 노출도가 더 높아지니까 싣지 않았겠나.
유지향: ‘입만 살아가지고’ 팬이다. 근데 옆의 칼럼 ‘X기자 부부의 주객전도’가 너무 웃기지 않나. ‘입만 살아가지고’는 서정적으로 가도 좋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어떤 주제들에 관심이 있나.
고나무: 격 떨어지는 ‘X기자 부부의 주객전도’와 비교할 수 있을까. (웃음) 음식 칼럼과 정보공개, 사법 시스템 문제에 관심이 있다. 탐사 보도로 이름을 남기고 싶은 욕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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