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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파적으로 더 디테일하게!

851호부터 857호까지 정치와 경제 기사의 깊이와 내용 진단한 21기 독편위 네 번째 모임, “왼쪽에 기반둔 분석적 기사 더 필요”
등록 2011-05-03 17:53 수정 2020-05-03 04:26
<한겨레21> 851호 ~ 857호

<한겨레21> 851호 ~ 857호

21기 독자편집위원회 네 번째 모임이 봄바람 불던 지난 4월25일 저녁,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7주 만의 독편위 모임이었다. 그동안 에는 봄바람과 더불어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3년 넘게 지면을 책임져온 이른바 ‘철의 규율’ 박용현 편집장 체제가 끝나고 ‘인간의 얼굴을 한’ 이제훈 편집장 체제가 시작된 것이다(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몇몇 기자는 에 드디어 봄이 왔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새로운 편집장과 이들이 만들어갈 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을까. 대부분의 독편위원들이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먼저 회의실에 도착했다. 중간고사를 이유로 참석하지 못한 김대훈 위원과 개인 사정으로 불참한 안명휘 위원을 뺀 6명의 독편위원은 851~857호의 표지이야기를 중심으로 정치와 경제 기사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을 쏟아냈다. 정치 기사를 두고선 당파적 시각을 지지하는 신성호 위원과 정치공학적 기사가 문제라는 안재영 위원의 견해가 팽팽했고, 경제 기사에선 경제 현안을 알기 쉽게 정리해줘서 지지한다는 김혜림·염은비 위원과 새로운 시각이 없다는 김원진·김은숙 위원의 견해차가 분명했다. 최근 진행된 지면 개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함께 외부 칼럼들의 의미와 재미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던 독편위원들은 거의 3시간에 걸쳐 열띤 논의를 이어갔다.

제21기 독자편집위원회

제21기 독자편집위원회

너무 엄숙해진

사회: 오랜만이다. 그동안 은 일련의 변화가 있었다. 먼저 편집장과 여러 기자들의 이동이 있었고, 창간 17돌 기념호에 맞춰 지면 개편을 단행했다. 오늘은 851호부터 857호까지 무려 7주치의 을 해부해야 한다. 지면 개편에 대한 평가, 새롭게 선보인 칼럼들에 대한 느낌 등 다룰 것이 많다. 가는 길이 멀지만, 한 걸음부터. 먼저 MB 시대 개신교가 표지였던 851호, 여성의 현실을 다룬 852호를 묶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김혜림: 851호 표지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개신교가 종교 그 이상이 된 한국 사회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김원진: 동의한다. 안에 있는 메인 사진도 좋았다.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준 듯하다. 지나간 얘기지만 한겨레가 수쿠크법을 약하게 다룬 점은 조금 아쉬웠다.

김혜림: 포인트의 문제가 아닌가. 세고 약하고가 아니라. 851호 표지이야기는 개신교의 잘못을 전반적으로 짚어낸 것으로 이해한다. 역시 한국 종교는 성역이었다.

김은숙: 한국 사회를 보면 정말 종교가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개신교의 나라인 듯싶다. 그동안 ‘김진호의 신들의 사회’를 읽어본 독자라면 개신교의 문제를 잘 알 수 있지 않았을까.

김원진: 한국 사회에 특히 종교에 심취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여기에다 큰 교회 말고도 작은 교회도 모두 세속화돼 있다. 최근 조용기 목사가 예배 중에 무릎을 꿇었다고 하던데, 악어의 눈물 같더라. (웃음)

김혜림: 그런데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대놓고 비난하긴 어려워 보인다. 기댈 데는 종교밖에 없는 사람들이 믿는 것 아닌가.

염은비: 그런 것 같다. 주위를 보면 못사는 사람들이 개신교를 많이 믿는다.

안재영: 가난한 동네에 교회가 더 많은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군사독재정권은 정치의 자유를 철저히 억압하는 대신 종교의 자유는 한없이 허락하는 양면 전략을 썼다. 그게 지금 개신교 우위의 한국 사회를 낳은 한 이유일 것이다.

신성호: 동의한다. 한국의 종교만큼 정치적인 집단도 없을 것이다. 표지의 조찬기도회가 딱 그렇다.

염은비: 852호 표지이야기에 나온 장자연 사건은 여성 문제라기보다 연예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남자 연예인도 이런 경우가 많지 않나. 청소노동자와 너무 무리하게 엮은 게 아닌가 싶었다.

김혜림: 같은 여성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층위가 다른데 끼워맞춘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여성을 왜 그렇게 타자화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김원진: 알고 있었지만 복기할 수 있었던 느낌이었다. 여성이 최후의 식민지라는 시각에서 새로운 건 없지만,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에 돌아본 여성 인권 문제를 다룬 것으로 보인다.

김은숙: 난 좋게 봤다. 여성이라는 존재라서 아픈 점을 다룬 것 아닌가.

김원진: 좀 다른 얘기인데 장자연, 신정아 등 이 최근에는 성에 너무 엄숙해진 것 같기도 하다. 성을 건강하게 밝혀야(?) 한다. (웃음) ‘오마이섹스’도 그렇고 예전에는 발랄하게 다뤘는데.


당파성이냐, 정보 전달이냐

사회: 창간 기념호인 853호과 854호를 바탕으로 의 정치와 경제 기사를 분석해달라.

안재영: 854호 아동노동 기사는 직접 현지에 가서 취재해서 현장감 있고 좋았다. 국제적 기준을 지적해서 아동노동의 현주소를 일깨워준 점이 맘에 들었다.

김은숙: 동감이다. 특히 아동노동과 한국 기업을 연결해서 새로웠다. 우리 기업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김혜림: 매번 을 보며 아는 얘기라고 넘겨짚다가 읽고 나서 새롭게 느낀 기사가 많다. 일본의 미래를 다룬 기사나 아동노동과 우리의 책임을 연결한 기사 모두 신선한 접근이 돋보인 기획이었다.

신성호: 은 신문보다 더 자주 진보 정당을 다루는 듯해 미덥다. 는 때로 기계적 형평성으로 진보 정당을 다룬다는 느낌이 드는데, 은 좀더 당파적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진보 정당이 잘돼서, 목적의식적인 기사 작성이 아닌 화제의 중심이 되길 바란다.

김원진: 사실 기자에 따라 정당에 대한 호불호가 보인다. 누구는 친개혁, 누구는 친진보 등. 854호 석패율제 기사는 전반적인 취지는 이해되지만, 기존 보수 정당 위주의 지역구도 해법을 소개한 것이었다. 지역주의를 해소하려면 전면적인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시행으로 가야 한다. 정도를 놔두고 다른 길을 가는 형국이다. 그 점을 지적해야 했다.

안재영: 난 다른 점을 짚고자 한다. 사실 재보선은 지역의 일꾼을 뽑는 투표다. 지역에 연고가 없는 거물 정치인들이 출마해서 대결을 하고 이것이 언론에 크게 실리는 현상이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인물이 아닌 정책 위주의 선거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매력 없는 명제지만 여전히 중요하다. 최근의 재보선 관련해서도 정치적 해석도 좋지만 또 필요한 것은 투표율을 높이는 정보 전달 기사들 아닌가. 정치공학적으로만 사안에 접근하는 언론의 시각에서 은 얼마나 자유롭나.

김원진: 정치 기사는 당 대 당, 인물 대 인물 구조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다고 본다. 정책 대 정책으로 가지 못하는 현실이 있잖나. 그런 현실에서 불가피하게 이런 기사가 필요하다고 본다. 현실정치의 큰 흐름을 짚어주는 느낌이랄까.

김혜림: 인물이나 이미지를 지우고 공약만으로 후보를 뽑는 선거는 현실에선 존재할 수 없다. 이상론에 불과할지도.

신성호: 근데 공약으로 보려 해도 다 비슷하더라. 경기 분당을의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보면.

김은숙: 전라도에선 민주당이 한나라당이랑 같다.

염은비: 우리나라는 공약을 내걸고 안 지키는 게 많아서 정책선거를 해도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다.

김원진: 재·보궐 선거니까 아무래도 더 인물 위주로 가는 것 같다.

사회: 이번에는 경제 기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어떻게들 보고 있나.

김혜림: 851호 곽정수의 경제 뒤집어보기 ‘동반성장 법제화 두고 갈등하는 당청’ 기사가 좋았다. 실제 독자가 잘 모르는데 꼭 알아야 하는 경제 현안이었다.

김원진: 나는 조금 반대다. 기사가 평이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장점이 있지만 특별히 새로울 건 없다. 칼럼은 다른 논리, 새로운 분석이 필요한 것 아닌가. 너무 당연한 얘기만 하는 느낌이다. 디테일한 기사가 필요하다.


알기 쉽다 vs 새롭지 않다

김은숙: 반드시 새로워야 한다는 것도 강박이지만, 비슷한 기사를 보는 것도 재미있지는 않다.

김혜림: 난 지금 온도가 좋다. 판단은 독자가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염은비: 고등학생이 봐도 쉬워서 좋다. 그리고 정리가 돼서 더 좋다.

김원진: 다만 를 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이라 아쉽다. 유한킴벌리 기사들도 인상적이었다. 좋은 기업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런 갈등이 있었는지 몰랐다.

김혜림: 난 좀 다르게 생각한다. 독자가 유한킴벌리의 내부 사정까지 알아야 하나 싶었다. 내가 제대로 안 읽어서 그런 느낌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김은숙: 그건 아닌 것 같다. 삼성을 다루는 기사와 같은 맥락 아닌가. 한 회사의 일이지만 한 회사의 일일 수만은 없는.

염은비: 최근에 정정보도문이 실렸더라.

신성호: 모범기업 경영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기사가 나간 듯싶다. 정치나 사회 면에 비해 경제 면은 약간 오른쪽에 있는 듯하다. 왼쪽에 기반을 둔 분석적인 기사가 더 필요하다.

김혜림: 삼성 얘기가 나와서 하는 여담인데 맨 뒷장의 삼성 광고는 삼성 광고가 아니라 현빈 광고였다. (웃음)

사회: 현빈은 삼성이 보낸 트로이 목마인 셈인가? (웃음) 경제 기사와 더불어 노동의 고립을 다룬 856호와 징벌사회를 돌아본 857호에 대해 얘기해보자.

신성호: 노동의 현실을 일관되게 다뤄줘서 믿음직스럽다. 그러나 지면에서 만나는 현실은 가슴을 무겁게 한다. 내가 무엇을 해야하나 한참 고민했다.

김은숙: 부끄럽게도 나는 이런 처지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고는 이들을 위해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다. 결론은 나지 않았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돕고 싶었다.

염은비: 내가 철이 없어서 그런지 비정규직 노동자 기사를 계속 접하면서 ‘공부 열심히 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신성호: 중요한 건 공부를 못해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일을 염 위원이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김혜림: 동의하지만 사회에 체념의 정서가 있는 듯하다. 최근 불거진 현대차노조 ‘세습 문제’는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를 극명히 보여주지 않았나.

김은숙: 내 이익이 걸렸을 때 첨예해지는 상황을 도덕주의적으로 비난만 하긴 어렵다. 사회임금이 보장되지 않는 한국 사회의 현실도 아울러 지적해야 한다.

안재영: 카이스트 사건은 학내에서 서남표를 지지하는 여론도 있다고 들었다. 왜 지지하는지 심층 취재를 했으면 어땠을까. 좀더 다양하게 접근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김혜림: 신자유주의와 기계적으로 엮기보단 새로운 시각의 접근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너무 흔해서 주목받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징벌사회라는 개념어는 와닿았다.

사회·정리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독편위들의 지면개편 중간평가
10점 만점에 8점

창간 17돌을 맞아 단행한 지면 개편에 대해서도 독편위원들은 송곳 같은 지적을 내놓았다. 대부분의 독편위원들은 새로운 칼럼과 필자들의 등장을 반기면서도 더 새로운 기획과 재미는 없느냐고 물어 지면 개편을 총괄한 기획편집팀의 진땀을 뺐다. 점수를 묻자 10점 만점에 8점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특히 시즌2로 돌아온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는 이름에 걸맞게 페이지를 뒤에서부터 거꾸로 하는 등 전복적인 시도를 선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김은숙 위원)도 나와 독편위원들이 에 갖는 기대치를 가늠케 했다.
853호부터 연재에 들어간 KIN ‘X기자 부부의 주객전도’에 대해 김원진·염은비·신성호·김혜림 위원은 “너무 재미있다”며 “X기자가 누구냐”고 거듭 물어 X기자의 신변보호를 위태롭게 했고, 김은숙·김원진 위원은 ‘오건호의 복지부동’이 복지의 필요성을 새삼 깨닫게 하는 유익한 칼럼이라며 “앞으로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에 대해 김원진 위원이 “역사학자와 경제학자 등 다른 필자로 크로스를 진행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지적하자, 김혜림 위원은 “진중권, 정재승 두 사람의 시각이 비슷해서 교각이 크로스라기보다는 30도 정도인 트라이앵글 같다”고 뼈 있는 농담으로 화답했다.
‘김성윤의 18 세상’에 대해 염은비 위원은 하이틴의 눈으로 신랄한 비판을 던지기도 했다. 특히 노스페이스 열풍을 다룬 854호와 856호 ‘빵셔틀’ 칼럼에 대해 “이미 끝물인 유행을 억지로 분석하려 한 혐의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장년 세대인 김은숙 위원은 “그런 분석이 갖는 유효한 면도 있다”며 “외부에서 볼 때 오히려 잘 보일 수도 있다”고 말해 청소년 세대를 이해하고 싶은 기성세대의 관심을 방증했다.
‘권혁태의 또 하나의 일본’은 유익한 칼럼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던 반면, ‘5선녀의 무릎탁’과 ‘허풍선 의원의 정책개발실’은 생각만큼 재미있지 않아 실망이라는 의견도 일부 있었다. 한편 854호에 실린 박용현 전 편집장의 마지막 ‘만리재에서’에 대해선 인상적이고 멋있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데 비해, 이제훈 새 편집장의 ‘만리재에서’는 너무 어렵다는 평이 다수를 차지해 구체제에 대한 향수(?)를 엿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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