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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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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향한 칼날도 갈아달라

시각장애인·교수·고등학생 등 스펙트럼 넓은 17기 독편위 첫 모니터링 회의
등록 2008-11-06 13:42 수정 2020-05-03 04:25

17기 독자편집위원회 첫 모임, 새로 뽑힌 일곱 명의 독편위원과 16기에서 이어 17기에도 참여한 홍경희 위원을 기다리는 시간. 회의실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독편위원들도 이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했다. 교수는 ‘휴강’하고 오고 학생은 ‘야자’ 빼먹고 왔다. 시각장애인인 이수택씨는 “일찍 왔는데 근처에서 헤매서 조금 늦었다”고 했다. 전종휘 기자와 이순혁 기자가 참석해 분위기는 한껏 고무됐다. 회의는 오후 6시30분부터 밤 10시까지 계속됐다. 새벽까지 이어진 뒤풀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앞으로의 6개월이 녹록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17기 독편위는 앞으로 6개월간 모니터링 회의 때마다 일정한 주제를 정해 토론을 벌이기로 했다. 이번달엔 729~732호를 들고 세 가지 주제로 토론을 했다.

한겨레2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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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9~732호 중 누가 누가 좋았나

최우리: 729호 ‘윤택남 기자의 가을’은 최근 들어 가장 좋았던 표지다. 기사를 보며 기자들이 왜 투쟁에 나서야 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또 이른바 ‘잘나간다’는 사람들도 싸우는 시대라는 것에 공감했다. 이 표지를 통해 따뜻하게 연대하는 느낌을 줬다. 732호 ‘다크 나이트의 판사들’도 친구들과 함께 보며 잘 만들었다고 얘기했다. 이런 식의 패러디가 정말 재밌다.

홍경희: YTN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볼 수 있는 ‘2003년-2008년 격세지감’ 기사는 한 페이지였지만 의미 있었다. YTN 투쟁을 ‘반MB’ 구도로만 보던 것에서 벗어나 역사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유재영: 732호 표지 디자인에서 기왕이면 배트맨 너머 창밖 야경을 한국에 맞게 살짝 바꿨어도 좋았겠다. 서울 광화문이나 테헤란로 야경으로 했으면 재밌었을 것이다. 몇몇 기업의 이름을 넣는다든가….

홍경희: ‘다크 나이트의 판사들’은 법과 인권이 왜 관련 있는지 짚어준 의미 있는 기획이었다. 하지만 기사에서 소신 있는 판사들을 ‘배트맨 세대’로 규정했는데, 의식 있는 개인의 행위를 세대의 맥락으로 끌어들이는 건 무리가 있다고 느껴졌다.

최고라: 나도 민주화운동 세대로 접근하는 방식이 불편하게 읽혔다. 민주화운동 세대라도 개개인의 차이가 있을 텐데, 개인별 접근이 아니라 세대로 뭉뚱그리는 건 위험할 수 있겠다.

이수택: 판사들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한 부분도 거슬린다. 인간미까지 강조하면서 영웅시할 필요는 없지 않나.

이현정: 731호 ‘소문은 영혼을 좀먹는다’의 살굿빛 표지가 확 튀고 좋았다. ‘쉿!’ 하는 모양새가 마치 나를 향하는 것 같아 움찔했다. 표지이야기의 내용은 예상했는데 표지는 예상치 못했다.

최고라: ‘소문’ 기획은 표지와 기사 모두 재밌었다. 하지만 정치·사회 분야의 ‘카더라’식 기사가 많아 심층적으로 보도하는 데 효과적이진 못했다.

홍경희: ‘소문’이란 키워드로 묶이긴 했는데 통일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기획은 아이디어가 뛰어났다. 한겨레 레드 첫 페이지에 귀 모양을 따라 물음표를 만든 것도 괜찮았다.

17기 독자편집위원회

17기 독자편집위원회

유재영: 신윤동욱 기자가 쓴 ‘소문의 취약자들’을 좀더 크게 썼으면 좋았겠다. 시의적절하고 건강한 의견이었다.

진보경: 730호 ‘만수 생각’의 표지 이미지를 처음 봤을 땐 무슨 뜻인지 몰랐다.

홍경희: 강만수 장관과 마주 본 것이 미국 월스트리트 앞에 서 있는 황소상이라고 하더라. 본문에 나와 있긴 한데 본문 사진은 황소상 뒤쪽만 보여줘서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았다.

이현정: 나도 바로 파악하진 못했다. 이번 기사에선 경제가 돌아가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심폐소생술, 심장마비 등 많은 비유를 동원했는데, 너무 잦은 비유는 전체 팩트를 해치지 않겠냐는 염려가 들었다.

최고라: 전문가 예측이 의미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전문가들이 환율 고점으로 꼽은 1300원, 당시 ‘바닥’이라던 코스피 1300 선이 730호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무너졌다. ‘전문가’라지만 결국 이렇게 혼란한 와중에 전쟁터의 병사나 마찬가지인 사람들에게 ‘어떻게 돼가냐’고 묻는 건 혼란만 가중시키는, 시각이 묻어나지 못하는 기사다.

이수택: 강만수 장관을 다룬 기사가 비아냥거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판을 할 땐 좀더 깔끔하게 했으면 좋겠다. 나도 강 장관을 싫어하지만 ‘욕하려고 작정한 거 아니야’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직불금과 토크바의 존재감

최고라: 사실 732호 표지이야기가 직불금 관련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데 직불금은 두 쪽 분량으로 다뤘다. 이 농민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져왔던 것에 비해 분량이 적었다.

이수택: 난 오히려 직불금 문제가 표지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주간지 표지가 뻔한 경우가 있다. 키코겠지, YTN이겠지 했는데 그대로 나오면 재미가 반감된다. 그런데 이번엔 직불금 문제가 아니어서 더 참신했다.

최고라: 은 같은 주제여도 다른 얘기로, 센스를 발휘하길 기대했었다.

홍경희: 레드 기획에서 ‘인간관계는 미분하고 경쟁은 적분하는 세상’이란 문장은 혼자 읽기 아깝더라. 위로산업 이야기는 뜬금없다고 생각했는데, 팔·무릎쿠션 등에 대한 소개가 재밌었다.

최고라: ‘토크바’ 이야기를 할 때는 사회면과 문화면의 경계에 서 있는 듯했다. 유사 성매매 업소로 이용된다면 문제 아닌가. 좀 갈팡질팡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성완: 가짜 양주, 토크바 등의 기사는 을 읽다가 한번 숨을 돌리게 해준다. 나이가 들수록 대화 상대가 적어지고, 요즘 아파트 앞에 토크바가 많이 생긴다. YTN이나 굵직한 사회 이슈는 읽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만 ‘나와 관계 있는 문제’를 다뤄주면 관심이 증폭되기 마련이다.

최우리: 주변에 쿠션, 인형 등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다. 20대 중반인 ‘우리 세대’도 뭔가에 허전함을 느껴서인지 포근한 느낌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몸은 성인이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은 상태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토크바까진 생각지 못했다.

이수택: ‘토크바’란 걸 기사를 통해 처음 알아서 일부의 얘기가 아닐까 의심했다. 우리 사회가 ‘토크바가 필요한 사회’가 돼간다는 게 슬프다.

17기 독자편집위원회

17기 독자편집위원회

전교조와 현대차노조 대처법

전보경: 교원평가제가 인사에 활용되는 건 아직 이르지만 학생 입장에서 교원평가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구시대적 사고를 하는 선생님들이 현장에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그런 분들은 평가를 통해 따로 모아서 재교육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수택: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당선 이후 전교조가 더 위축되는 듯해 가슴 아프다. 하지만 이 상대적으로 진보적 단체에는 비판의 칼날이 무딘 듯하다. 교원평가제 도입 문제에서 전교조도 너무 관성화돼 있지 않나. 전교조 대변인이 교원평가제 도입에 찬성한다는 발언을 했다가 내부 반발에 사표를 내는 모습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지도부의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런 모습도 균형 있게 다뤄줬으면 한다.

최우리: 전교조에 속한 친구와 교원평가제 문제로 한참 입씨름을 했다. 만약 ‘평가’라는 말이 잘못 규정돼 있어 반발을 산다면 그걸 소통하면서 풀어야 할 것이다. 무엇을 평가할 것인지 그 개념이 논의되는 장을 만들어주는 일을 해야 한다.

진성호: 대학에서도 교수를 평가한다. 하지만 고등학교는 다르다. 학생들이 낮에는 학교에서, 밤에는 학원에서 배운다. 교사를 평가하는 기준이 교수 평가와 다르다. 학원에서 훨씬 잘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학교 교사의 평가가 제대로 되겠나. 평가의 주체가 돼야 할 학생들 입장에서 써나가면 좋겠다.

이수택: 이런 카테고리에서 생각을 한다면 현대자동차 노조 문제도 얘기할 수 있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껴안자는 세 번째 논의였는데 부결시키지 않았나. 이럴 때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욕을 먹어도 싸다고 생각한다. 근데 그에 대해서도 칼날이 너무 무디다. 보수를 욕하는 만큼 진보에 칼날을 들이대야 논의가 더 확장된다.

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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