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한국인? 언론인? 미술인? 태권인? 정체성을 둘러싼 혼란과 고민의 시대여
▣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어느새 그들은 ‘여유만만’이었다. 두 번째 회의에 참석한 14기 독자편집위원들은 지난 첫 회 때의 긴장감은 잊었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657~660호 4권을 뒤적였다. 5월22일 저녁 7시30분에 시작된 회의는 매주 해온 모니터링을 기반으로 두 시간 동안 부드럽게 진행됐다. 웃고 농담하다가도 급‘진지 모드’로 돌변하는 위원들의 모습에 내용을 정리하는 기자가 오히려 긴장해야 했다.
초라한 성적표 공개 후, 뭐가 달라?
김승현: 657호 밀어주고 띄워주는 ‘중립언론’은 우선 자신의 영역에 대해 비판하기는 불편한 법이라는 점에서 반가운 기획이었다.
황자인: 대선 후보 관련 언론사별 주요 보도 내용에 관한 그래프가 우리 언론이 정책이나 정치 쟁점에 대한 후보자의 의견보다는 단순히 후보의 동정을 보도하는 데 열을 쏟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
유선의: 초라한 성적표를 ‘고해성사’한 점에 박수를 보내지만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가 빠진 것 같다. 결국 의 표지이야기 안에서도 얼굴 사진이 크게 나온 건 이명박, 박근혜였다.
유진아: ‘의 성적표도 초라하다’는 형식적으로 보였다. 이후의 정치 기사에서도 지적했던 ‘잘못’이 반복됐다. 반성하고 바뀐 모습이 없었다.
김승현: 657호 캠페인 ‘야스쿠니의 원혼을 고국으로’에서 강만길 위원장의 인터뷰를 보니 야스쿠니신사의 문제점과 소송의 중요성에 대해 더욱 잘 알 수 있었다. 단순한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 미래의 문제임을 계속 강조했으면 한다.
김수지: 캠페인의 ‘노합사’ 사무국장 야마모토 나오요시와의 인터뷰도 인상적이었다. 성숙한 의식을 지닌 일본인들이 꾸준히 운동을 펼쳐왔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바로 뒷장에 펼쳐지는 ‘일본 헌법 9조 위험신호’ 기사와 완전히 대조를 이뤄 아이러니한 효과를 일으켰다.
유진아: 버지니아공대 총기사건에 관한 657호 특집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번 사건으로 한-미 관계를 우려하는 오버는 하지 말라는 글을 읽고 속이 시원했다.
김승현: 이슈추적 ‘전만규는 왜 폭력에 빠졌는가’는 사건 자체가 충격이고 주민 건강 조사나 연구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가정폭력의 시각에서 보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
황자인: 평화운동의 상징이던 그의 이면에 그런 폭력성이 있었다니. 그 원인이 미군의 폭격장 소음일 가능성이 큰데도 지금껏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니 답답하다.
김수지: 657호 인터뷰 ‘어머니가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는 이제는 갈 수 없는 어머니의 고향 이야기를 만화책으로 펴내기까지 과정을 재미나게 추적한 기사였다. 진정한 의미의 ‘새 책 소개’라고 할 수 있겠다.
나도 ‘민족’에 얽매여 있었구나
유진아: 658호 ‘내게 한국인이냐고 묻지 말라’는 “당신은 한국인인가”라는 첫 물음부터 따끔하게 다가왔다. 나 또한 ‘한국인·우리 민족’에 강하게 얽매여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수 참사’와 ‘버지니아공대 사건’을 대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김수지: ‘조승희 사건’에서 이런 논의를 끄집어낸 것이 좋았다.
유진아: ‘어디서 왔을까, 이 희한한 집단책임론’ 기사를 읽고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미국이 개인의 행동을 어디까지나 개인의 책임으로 인식한다지만 LA폭동 같은 사건이나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너무 단정할 순 없는 문제 아닌가.
김승현: 민족의 개념이 뭘까.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그 질문을 던졌었다. 당시 선생님도 대답하기 어렵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김휘관: 658호 특집 ‘통상권력’ 기사는 점점 우리 관심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를 한국과 미국의 시스템 비교를 통해 분석해 더욱 의미 있었다.
김승현: 658호 이슈추적 ‘시간강사, 보따리장사 울며 다니네’는 ‘진부한’ 소재였다. 어떤 사건에 대해 진부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방증이 아닐까? 진부한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하다.
정선미: 착취가 이뤄지는 구조에 접근했으면 더 좋았겠다.
유진아: 공공기관에서 청소하시는 분들이 이 기사를 보더니 “그래도 이 사람들은 학위나 있지”라고 하시더라. 공공부문 비정규직 보호법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다양한 직종을 다뤘으면 좋겠다.
김수지: 659호 표지이야기 ‘따지지 말고 깎지 말고 현찰 박치기’는 ‘미술’과 ‘시장’이 어떤 방식으로 결합될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줬다. 경매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귀해진 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그 작품에 붙여진 수십억대의 낙찰가는 작품 주위를 헛도는 ‘가치’로 여겨진다.
황자인: 돈은 없고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씁쓸하더라. 어떤 식으로 미술품 시장이 돈밭이 되는지 몰랐는데 좋은 정보였다.
정선미: 최근 비리로 얼룩진 미술대전까지 미술계의 어두운 면을 더 파헤쳤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들지만, 어쨌거나 요즘 탐탁지 않은 미술계에 대한 쓴소리가 반가웠다.
김수지: 659호 초점 ‘황홀한 FTA 효과, 수상한 CGE 모형’에서 의심스러웠던 부분을 충실하게 짚어줬다. FTA 효과로 거론하는 희망찬 수치들이 어떠한 프로세스를 통해 나왔는지 알 길이 없다. 의도적 왜곡 혹은 조작이 가해질 수 있는 과정을 통해 나온, 객관성을 천연덕스럽게 가장한 전망이 힘을 쓸 수 없게, 정당한 태클을 계속 걸어주었으면 한다.
정선미: ‘확실히 불확실한 2007 대선’은 오랜만에 재밌게 읽은 정치 기사였다. 현재의 대선 판도에 대한 불확실성을 그대로 그려주었다.
유선의: 2002·2007년 대선 캘린더가 이해를 도왔다. 세계 면의 ‘벌써부터 확실한 미국 대선 경쟁’ 기사와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줬다.
핏빛 세계 기사에 가슴 아파
황자인: 세계 면의 ‘핏빛 다이아몬드, 진실이 우는 땅’은 영화 의 모든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사였다. 지금도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지역에서는 노예노동을 통해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생산되고 있다니 비극은 끝이 없는 걸까?
정선미: 전경련판 경제교과서에 대해 다룬 659호 특집은 무엇보다 ‘노동 교육’의 문제를 짚어줘 의미 있었다. 경제교과서가 지배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실도 극명하게 보여줬다.
김수지: 노동자 권리를 도외시한 현행 교과서의 문제점 지적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직장생활을 할 때 이에 대한 지식과 철학이 전무해서 생긴 무력감과 당혹감이 날 가장 힘들게 했다.
정선미: 659호 사람과 사회 ‘법은 멀고 불은 가까웠네’는 계속 발생하는 일인데다 다른 매체에 기사화도 안 되는 것이 안타깝다.
유진아: 659호 ‘시대상상’에서 장하준의 반론을 볼 수 있었다. 논쟁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소통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좋다.
황자인: 고발성 기사는 확 관심이 간다. 660호 표지이야기 ‘못 참겠다 당신들의 태권도’도 그랬다.
정선미: 스포츠 역시 권력과 돈의 정치학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구나. 태권도에 얽힌 국수주의적 태도나 민족주의 문제를 한 번 더 다뤄줬으면 한다.
김휘관: 국기원의 조직 구성, 직원 선발 절차, 국기원의 예산 사용 내역 등이 덧붙여졌다면 좋았겠다. 유도의 발상지인 일본의 경우는 어떠한 과정을 겪었는지도 궁금했다.
김승현: 660호 경제 ‘은행 마감 3시 반, 짜증나십니까’는 은행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현재 노동 강도는 얼마나 되는지 등 구체적인 문제들까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정선미: 660호 문화 면이 알찼다. 비로자나 부처에 대한 친절한 설명과 사진이 좋았다. 또한 ‘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 ‘춤의 경계에 과격한 똥침을!’도 유쾌했다.
정선미: 캠페인에서 다룬 슬퍼하지 않는 대만의 현실은 무서울 정도였다. 우리나라에만 그치지 않고, 동아시아를 향해 내딛는 발걸음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정서상 반일이 아닌 야스쿠니신사의 진정한 의미, 군국주의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해달라는 당부는 우리에게 따끔한 충고처럼 느껴졌다.
정선미: 660호 ‘노 땡큐!’는 한국인에게 상징적인 음식인 ‘김치’를 이주노동자들의 시선으로 바라봐 새로웠다. 가해자의 시선이 아닌 피해자, 소수자의 시선을 계속 담아주기 바란다.
황자인: 새로 연재를 시작한 ‘정재승의 사랑학 실험실’은 생물학적 관점에서 사랑을 이야기해 흥미롭고 유익하다.
김승현: 비호감이 증폭될 수도 있지만, 조언대로 꼭 한 번 자이로드롭을 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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