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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복합과 FTA의 아찔한 질주여

등록 2007-05-04 00:00 수정 2020-05-03 04:24

야스쿠니에 갇힌 억울한 과거부터 도둑맞은 미래까지 암담한 시간 여행

▣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 사진·정수산 기자 jss49@hani.co.kr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14기 독자편집위원회의 첫 회의가 있던 4월24일. 회의 시작 시간인 오후 7시가 다가올수록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설레고 반가운 마음은 14기 위원들도 마찬가지였을 터. 서로를 소개하고 앞으로의 각오를 말하는 회의실 안은 ‘시작’이라는 말이 안고 있는 에너지로 팽팽하게 차올랐다. 653~656호 을 꺼내드는 것으로 회의가 시작되자 ‘모니터링 회의’라는 낯선 대상에 대한 치열한 탐색전도 시작됐다.

독자도 궁금한 ‘왜 손학규·정운찬인가’

김휘관: 653호 표지이야기 ‘왜 손학규인가, 왜 정운찬인가’는 표지의 ‘두 발의 총알’이라는 제목 때문에 엄청 큰일이 있는 듯한 느낌을 줬다. 하지만 지지도가 미미한 상태인 두 사람을 인터뷰한 것치고는 제목이 거창해 거리감이 느껴졌다.

김수지: 의도적으로 두 사람을 정면에 내세웠다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기습(!)적인 인터뷰로 이루어진 대화를 바탕으로 한 기사치고는 밀도가 있었다. 류이근 기자의 글은 제나라의 선왕이 연나라를 취할 것이냐를 두고 고민하는 정황과 정운찬의 정황을 병치해 읽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두 ‘인물’ 중심으로 기사를 풀어나간 것은 명백한 한계를 낳았다. 구도 자체를 조망하는 가운데 손학규와 정운찬이라는 인물을 다루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유선의: 지난 대선 때도 이맘때는 노무현이 그만큼 클지 모르지 않았던가. 이들도 어느 순간 바람을 타고 어떻게 될지 모른다.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면에서 대선에 권태를 느끼고 있는 독자들에게 새로움을 던져주는 표지가 아니었나 싶다.

김휘관: 하지만 인터뷰 내용을 살펴보면 기존에 알려진 것과 별 차이가 없다. 인터뷰를 안 하는 사람이 했다는 사실뿐, 새로운 내용이 없었다.

황자인: 라이프 & 트렌드는 을 받으면 가장 먼저 읽는 부분이다. 653호 ‘와플이 없으면 커피는 심심해’는 사진과 기사가 잘 어울렸고, 와플 묘사가 당장 먹고 싶을 만큼 사실적이어서 좋았다.

김휘관: 예전에 비해 소프트한 기사들이 많아진 것 같다. 독자를 배려해서 그러는 건지 이 터닝포인트를 잡은 건지, 창간 독자로서 이 처음보다는 가벼워졌다는 느낌이 든다.

정선미: 나는 을 잡아들면 일단 소프트한 기사부터 읽은 뒤에 딱딱한 기사로 들어간다. 오히려 요즘 표지이야기로 무거운 주제가 많아서 읽기 힘들었다.

김수지: 문제는 가벼운 기사에도 의 색깔을 살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특히 패션 기사의 경우 패션지와 차별성이 없는 것이 문제다.

황자인: 그런 면에서 654호의 라이프 & 트렌드 ‘대선 주자여, 패션 전략을 세우라’는 패션과 정치를 연결한 시도가 신선하고 좋았다. 패션에 무관심한 대선 주자도 있지만, 나처럼 넥타이나 스카프에 민감한 유권자도 있다.

김수지: 653호 포토스토리 ‘산호초 섬, 코코넛 게 익는 소리’의 무인도에서 자급자족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신선했다. 이슈 중심의 기사들에서 이런 사진 기사는 활력소로 작용한다.

김휘관: 말이 필요 없고 글이 필요 없는 이런 사진 기사들이 정말 좋다. 포토스토리는 최고로 좋아하는 코너로서 감명 깊게 보고 있다.

김수지: 인터뷰 특강을 정리한 기사도 재밌었다. ‘자존심’이란 같은 주제를 두고 인문과학의 진중권과 자연과학의 정재승이 다른 시각과 다른 언어로 풀어나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타워팰리스 집들이, 절대 안 가리

황자인: 654호 표지에 ‘부자가 주상복합에 빠진 날’이란 제목이 위트 있게 다가와서 받아보자마자 웃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며 고층 아파트를 전원주택이라도 되는 양 푸르다고 부르짖는 아파트 광고들이 너무나 싫은 나로서는 타워팰리스에 관한 기사에 공감이 갔다. 기자의 체험기도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지인이 얼마 전 타워팰리스에 신혼집을 차렸는데, 집들이에 가면 저 꼴 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절대 안 가리라 다짐했다.

유선의: 당시 우리나라 전체가 집중하고 있던 것이 자유무역협정(FTA)이었는데 표지가 ‘주상복합, 한국 자본주의의 결정판’이라고 하니까 의아했다. 타결 여부가 불명확한 상태라면 두 경우의 득실을 비교해서라도 실었으면 어땠을까. 독자들의 맥을 좀 빠지게 하는 표지이야기가 아니었나.

정선미: ‘주상복합’이라는 정의조차 분명히 내려지지 않은 지금의 상황을 꼬집은 것은, 반가운 비판이었다. 현실에 기반한 사회현상을 인식하는 데 서툴고, 이미 존재하는 사안에 대한 의미 정립에 게으른 정부, 앞으로도 꾸준히 법의 미비에 대해 지적해줬으면 한다.

황자인: 654호 ‘자연수명의 20분의 1, 돼지의 한평생’은 인상적인 기사였다. 인간의 먹이가 되는 동물들은 그렇게 다 학대당해야만 하는지. 나라도 채식주의자인 게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김휘관: ‘동물 복지적 관점’에서 썼다고 했는데 이런 기사는 에서만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가장 감명 깊게 봤다.

김선영: 문화면을 좋아하는데 654호 ‘붓끝에 흩뿌려진 진달래 꽃잎이여’는 특히 가슴에 와 닿는 기사였다. 고생 끝에 길을 찾은 듯한 예술가의 이야기가 가슴에 남는다.

김휘관: 나도 같은 기사를 재미있게 읽었다. 문화면에서는 적어도 654호의 ‘방송한다면 효리처럼?’에서처럼 이효리, 에릭 등 대스타들을 다루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스타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넘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 ‘양심’은 평등한가

김선영: 기획연재 ‘양심을 따른 사람들’ 기사를 보며, 특히 654호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풀릴 문젠가’에 80년대에 학교를 다닌 세대로서 공감이 많이 갔다. 이런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다. 젊은 세대가 알고 지나갔으면 하는 문제를 다룬 기획이다.

황자인: 기획연재를 꾸준히 눈여겨보고 있다. 사회복지사로서 인권 문제를 다룬 기사들을 특히 관심을 갖고 읽는데, 병역거부자들이 이 정도로 시대를 초월해 인권을 유린당했음을 꿈에도 몰랐다. 군입대를 거부한다고 사람을 감옥에 보낸다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가? 국가의 폭력이 무서울 뿐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문제가 예비군 거부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은 평소 생각해보지 못한 내용이라 충격이었다.

유선의: 국가로부터 부당한 처우를 받았음에도 굴하지 않고 ‘양심의 자유’를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감명 깊다. 하지만 대다수 군복무를 해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상실감’에 대한 배려도 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군대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는 이들을 이해는 하겠는데 그럼 나는 ‘양심’이 없어서 왔나 하는 얘기를 한다. 그들을 인정하면 나머지 병사들의 사기가 저하된다는 측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정선미: ‘양심’이라는 단어가 논란의 여지를 주고, 물론 군필자들의 억울한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양쪽의 입장을 다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명백한 사실은 남는다. 다수와 소수의 문제에서 소수가 그동안 큰 고통을 받아왔고, 다수의 폭력이 훨씬 더 많이 드러나는 상황, 소수의 피해가 기사에서 본 것처럼 끔찍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로 여기지 못하므로 기획연재로 많은 사례를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유진아: 대체복무를 선택한 사람들이 ‘옳다’는 문제가 아니라 이들이 최소한 자신의 양심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마저 박탈당한 것에 관한 문제다. 그동안 ‘여호와의 증인’만 주목했는데 다른 사례들을 발굴함으로써 대체복무가 한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부각한 것이 좋았다.

김선영: 보도 그 뒤 ‘제2의 피우진은 막았으니 다행이오’ 기사에 제일 관심이 갔다. 사회생활을 하는 여자로서 앞으로도 자신의 영역에서 힘겹게 싸우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뤘으면 한다.

김수지: 몹시 반가운 기사였다. 이런 후속 보도는 장기간 을 읽어온 이들에게 큰 기쁨을 준다.

FTA 타결돼도 흔들림 없는 편안함

유선의: 655호 표지이야기 ‘국민투표, 국민 최후의 카드’는 한-미 FTA 타결 보도를 접한 이후 ‘이왕 된 거’라는 의식이 퍼지고 있는 때에 흔들리지 않고 반대 기조를 지키는 의 모습을 보여줬다.

김승현: 평소 조계완 기자의 기사를 좋아하는데 ‘소비자 여러분, 은혜 받으셨습니까’는 그의 장점이 드러난 의미 있는 기사였다. 상품이 싸지는 원인과 임금의 연결 고리를 잘 제시해 와 닿았다.

황자인: FTA에 관한 기사를 보면 찬성 쪽은 100% 행복한 세상으로 가는 지름길처럼 보도하고, 반대하는 쪽은 100% 불행의 늪으로 빠져들 것처럼 얘기해서 혼란스럽다. 그래서 자꾸 무관심 쪽으로 마음이 향하는 듯하다.

정선미: 우리 시대의 고민이 담긴 논쟁의 현장을 찾아간다는 ‘시대상상’의 취지가 마음에 든다. 매주 새로운 내용으로 논쟁을 유도하는데, 중요한 것은 논쟁 대상에 대한 개괄이 조금 빈약해서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한정된 정보만을 얻거나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우려가 생긴다. 비중을 조금 늘려서 몇 주에 걸쳐서 한다거나 지면을 늘리는 쪽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특히 655호 장하준 교수에 대한 소개는 상당한 분량이었음에도 제대로 그를 소개했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유선의: 656호 ‘내 이름을 야스쿠니에서 빼오라’는 일반인으로서 알기 힘든 부분에 접근해 심층 취재하는 모습에서 다움을 느꼈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분노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좀 과장된 면도 있어 보였다.

김수지: 표지를 보고서는 그분들이 매우 분노한 것 같았는데 기사를 보니 그 분노의 수위가 별로 대단하지 않아 기자가 문제의식을 갖고 기사를 이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의도적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유진아: 야스쿠니신사의 의미를 다시 되짚어줘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게 진짜 의도가 아닐까.

유선의: 모금운동의 범위가 처음엔 우리 내부에서 점점 아시아 전체로 넓어지고 있는데 괜찮은 생각인 것 같다.

유선의: 우토로와 대추리의 후속 보도가 좋았다.



[14기 독자편집위원회를 시작하며]


긴장하시라, 빈틈을 파고들지어다

첫 모니터링 회의 후 더 큰 열정에 사로잡힌 14기 위원들
김선영: 정말로 하고 싶어서 14기 독자편집위원회 모집 공고가 나기 전부터 이메일을 보내 신청을 했는데 벌써부터 일 때문에 늦는다거나 빠지게 되어 민폐를 끼치게 되진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각오하고 시작한 만큼 열심히 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매달 치열한 토론 기대한다.

김수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즐거운 법인데, 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주하게 되어 더욱 즐겁다. 이제까지 과 나 사이에 은밀하게, 흔적 없이 이루어지던 대화를 말과 글의 옷을 입혀 끄집어낼 수 있게 되었다. 다른 독자편집위원들이 지닌 에 대한 애정과 내가 가진 애정이 다른 언어의 옷을 입고는 매섭게 부닥치기도 하고 끈끈하게 얽히기도 할 자리에 대한 기대가 크다.

김승현: 독자편집위원회에 함께하게 된 이 설렘을 그대로 안고 열정적으로 비판과 지지를 해나가려고 한다. ‘천 개의 눈으로 사물을 보라’고 했듯이, ‘그런 시각도 있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고 말해주는 이 고맙다. 이제부터는 세상에 처음 나온 어린아이의 눈으로, 섬세하고 날카로운 눈으로 을 봐야겠다. 더욱더 알토란 같은 기사로 채워지는 이 될 수 있도록.

김휘관: 20년 전, 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뒤로하고 지금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는 내 삶의 길라잡이로 남아 있다. 독자편집위원회에 참여하고 싶었으나 부산에 거주해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던 중 대전으로 근무지가 바뀌면서 도전을 하게 됐다. 그동안의 방관자 입장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참여자, 철저한 독자 입장에서 20년 전 못다 한 꿈을 위해 독자편집위원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이다.

유선의: 엄청난 부(교통비)와 명예(에 사진 나가기)가 보장된 독자편집위원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태연히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싶었으나 어찌나 기쁜지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만 연발하고 있었드랬다. 한겨레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으니 나도 한겨레에게로 가서 꽃이 되고 싶다. 독선과 아집에 빠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잔인한 비판과 가혹한 칭찬을 퍼부을 계획이다.

유진아: ‘세상엔 만만한 것이 없다’는 불변의 진리를 14기 독자편집위원회 첫 모니터링을 통해 다시금 가슴에 새겼다. 여덟 명의 다양한 생각과 의견들 속에서 제 색깔을 가지고 을 논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제 6개월 동안 제대로 의 빈틈을 착착 파고들고자 한다. 긴장하시라 !

정선미: 공덕역에서 내려 가쁜 걸음으로도 10분이 넘게 걸렸다. 처음 가보는 한겨레신문사는 과 내 마음의 거리가 조금은 멀었구나를 느끼게 했다. 칭찬은 많이 들을 테니 난 비판적인 시선을 갖자라고 생각했지만 먼 발치에서 기자들을 본 순간 마음이 흔들린다. 어렴풋하지만 비판 그 이상의 뭔가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6개월 동안 내 스스로도 좀더 명확해졌으면 한다.

황자인: 바라던 독자편집위원에 선정돼 기쁘다. 혼자서 읽고 생각하는 도 좋지만, 독자편집위원회 여러분과 같이 생각을 공유하고 논쟁도 하며 읽는 은 더 재미있을 것 같아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매달 모여서 기사 모니터링을 하다 보면 위원들 간에 의견 충돌도 많이 있겠지만 그러면서 생각의 폭도 깊어질 거라고 믿는다. 전보다 꼼꼼히, 열심히 챙겨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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