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넘버3의 반란’·‘아시아 기자 100인 설문’은 종합선물세트가 아니었나… 서술의 신중함 돋보인 ‘강금실 단독 인터뷰’…‘남자 말하기’는 계속 돼야</font>
▣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3월28일 11기 독자편집위원회의 여섯 번째 모임이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한겨레21> 회의실에서 열렸다. 가장 최근에 발행된 602호 ‘넘버3의 반란’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며 회의를 진행했다. 야구 선수들의 엉뚱한 표정이 내용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는데, 위원들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관련 기사들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스포츠 내셔널리즘 좀더 경계해야
염인선: 스포츠 가운데 제일 잘 알고 직접 즐기는 종목이 야구다. 프로야구를 지켜본 지가 어언 20여 년이어서 해설가 수준을 자부한다. 표지이야기 기사들은 재미있었지만 4강에 진출한 드라마를 전체적으로 짚지 않아 의아했다. 이승엽의 상징성을 인정하나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승엽아, 무심타법을 지켜라’라는 기사까지 붙여서. 박찬호, 이종범, 박진만, 구대성 등의 활약도 놀라운 것이었다. 그리고 인지도가 낮은 WBC에 대한 설명과 미국이 보여준 오만함에 대한 지적도 부족했다. 스포츠 내셔널리즘의 심각성도 그 정도에 비해 비판이 못 미쳤다.
[%%IMAGE1%%]
한윤기: 가판대에서 사며 ‘<한겨레21>도 또 야구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주의를 비판한 기사가 하나 있긴 했지만 나머지는 스포츠 신문 기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남들이 다 그 길로 가도 <한겨레21>은 달랐는데. 스포츠 분석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니나 종합선물 세트처럼 이것저것 담는 건 옳지 않다. 정동영 관련 특집 기사를 보며 왜 스포츠는 이렇게 분석해 쓰지 않나 싶었다. 심도 있는 스포츠 기사가 부족한 현실이니 시도해볼 만하다. 이런 상황이라 ‘신윤동욱의 스포츠 일러스트’도 빛나는 거 아닌가.
김민정: 야구 룰을 모르는 난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프랑스나 포르투갈이 아닌 미국, 일본에 이겨 사람들이 더 기뻐했다. 치고 달린다는 룰 외에는 모르는 내 어머니도 ‘야구 안 보고 뭐하냐’고 말씀하시더라. 국민들이 몰입했다. 독일 학생들은 ‘나는 나라에 자부심을 가진다’는 표현을 어색해한다고 한다. 한국에선 국가주의가 더 확산되는 듯하다.
김지혜: 원체 야구에 관심이 없는 나 같은 이까지 고려한다면 병역특례 같은 시사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기술해보는 건 어떨까.
이만석: <한겨레21>은 사실관계에 기반한 충실한 기사로 국가주의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다루고 있다. 일반인과 전문가의 의견이 더 보태지면 좋겠다. <한겨레21> 독자들이야 주장에 동의하나 일반인들은 여전히 의아해한다. 예전에 한 교사가 쓴 국기 맹세에 대한 통찰력 있는 글처럼 다른 이들의 의견이 고루 실리면 좋겠다.
김민정: 특집 ‘정동영의 도박!’은 단일 인물론의 한계를 보여줬다. 여러 정황들이 정동영으로 인해 움직인 듯이 해석된 면이 일부 있다. <한겨레> 정치 기사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준다.
김지혜: 601호 아시아 기자 100인 설문조사 ‘최고 간디 최악 폴포트’에선 방대한 영역에 걸쳐 아시아의 의견을 구했다는 점에서 찬사를 보내고 싶다.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일본, 베트남, 중국 세 나라 기자들이 대담을 시도한 것도 흥미로웠다. 다만 중요성과 민감도에 비해 논의가 심도 있게 이뤄지지 않아 아쉬웠다.
한윤기: 급하게 정리한 건 아닌지. 사회연구방법론의 일종인 계량적 연구가 지닌 위험성을 수업시간 내내 듣고 나와서 마침 이 표지이야기를 읽었다. 인물의 영향력이나 사건의 중대성에 순위를 매겨 한 줄로 세우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과연 줄세우기가 가능한가. 나라별로 다른 가치를 지니지 않나. 차라리 기자에게 자국의 톱 이슈와 ‘20005년의 인물’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당면한 각국의 과제와 사건이 배제돼 ‘아시아의 현재’가 누락됐다. 표지 디자인도 다른 호보다 불만스러웠고 3쪽 분량의 대담은 여러 주제를 다루려다 수박 겉기로 끝났다. 민감한 사안에선 목소리가 사그라들었다.
이직의 매너, 평판조회 중요성 잘 짚어
염인선: 아시아는 유럽과 달리 대륙이 방대하고 문화적으로 이질적이다. 하나의 정체성을 찾기 어렵다는 전제가 이미 있었다. 폴포트와 간디 관련 기사는 내게 다른 진실을 보여준 좋은 기사다.
이만석: 박정희와 김일성에 대해 기자들마다 의견이 엇갈려 흥미로웠다. 추후에 기회가 되면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헤쳐도 재미있을 듯하다.
최영선: 왜 기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지 취지를 짧게나마 설명해줬더라면 친절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번 기획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좋은 기획이었다. 억압이 가장 심한 나라가 북쪽이고 자유가 가장 잘 구현된 나라가 한국이라는 사실은 한반도에 둥지를 튼 내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염인선: 599호 ‘강금실 전 장관 단독 인터뷰’에선 이성적인 접근과 감성적인 접근의 균형이 보였다. 그러나 마지막 기사에선 ‘강금실이 쿨하니까 지지한다’는 식으로 감성적 접근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
이만석: 많은 이들이 궁금하던 차에 인터뷰가 나왔다. 좀더 분량을 늘렸더라면 어떨까. 그가 한국 정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라는 궁금함에 꼼꼼히 읽었다. 기사의 서술에서도, 인터뷰에 응하는 강금실의 말에서도 신중함이 엿보였다.
최영선: 지방선거를 앞두고 많은 이들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관련 기사를 발굴해주기 바란다. 유권자의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사들이 필요하다. 또 정치 기사에선 지나치게 감성적인 부분을 강조하지 않길 바란다.
이만석: 2월의 기사 중 599호 특집 ‘나는 고발한다 현대중공업 노조를’이 가장 인상적이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비리가 탄로나는 과정을 읽으며 경악했다. 노조가 또 다른 권력체라면 감시가 따르는 건 당연하다.
최영선: 600호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여성으로서 맺힌 게 많다 보니 반가운 기사였지만 한편으론 한숨이 나온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기로 한 아들이나 아버지 같은 사람과 결혼하지 않으려는 딸은 발에 치일 정도로 많을 것이다. 그런데 마치 시민단체가 힘이 세졌다며 엄살을 떠는 기득권층처럼 이런 종류의 논의 앞에서 남자들이 엄살을 떨게 되는 건 아닌지. 맺힌 게 많은 이의 기우인가. 예전과 현실이 달라졌지만 그들에게 “그럼 여자로 살겠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고개를 흔들 만큼 아직은 남성중심적인 사회다. 직업상의 변화도 중요하나 생활 안에서 진정 가부장 관념을 털어버린 아버지들의 이야기가 드러나는 것도 중요하다. 엄마에 의해 훈련되고 여선생이 득실거리는 유치원과 고등학교를 나와도 남자는 어느새 과도한 남성성을 부여받는다. 어디부터 다듬어야 할지. <한겨레21>이 풀어주기 바란다.
[%%IMAGE2%%]
한윤기: 메인 기사는 무난했다. 다만 직업적 성역할 변화를 다룬 ‘남자가면이 부담스럽다’는 조금 식상했다. 차라리 여성성이 사회적으로 부각되는 분위기를 다루고 이를 장려했더라면 어떨까. 엄마 리더십 등. ‘개과천선 <한겨레21>’을 보며 ‘한겨레도 이랬단 말인가’라고 놀라며 읽었다. 편협했던 과거를 고백한 기사는 반갑다. 통계자료들은 꼭 필요한 것들만 잘 배치해주길 바란다. 가끔 과하다는 느낌을 준다.
염인선: 이직의 매너를 다룬 특집이 흥미로웠다. 평판조회의 중요성을 잘 짚었다. 생활과 밀착된 얘기라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이직의 매너 10계명 같은 작은 상자기사들이 돋보인다.
성공 강박증이 없는 잡지라 좋다
한윤기: 601호 ‘바이오 에탄올이여, 구원하소서’는 새로운 내용이라 시선을 끈다. 석유 보유량이 많은 국가들도 이런 실험을 활발히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과학 기사는 생활에 밀접하고 수년 내 실현 가능성이 높을수록 이해도가 높아지는 듯하다. 김선주의 종이비행기47 ‘그만하면 대한민국 평균’도 좋았다. <한겨레21>은 성공을 강박적으로 말하는 잡지가 아니라 좋다.
염인선: 강준만의 세상읽기 ‘디자인, 그것은 종교다’는 엔지니어로서도 크게 공감되는 내용이었다.
김지혜: 라이프 & 트렌드는 동떨어진 삶을 사는 이들의 세계를 먼 발치에서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기사가 가끔 있는데 이런 기사는 싣지 않길 바란다. 독자 눈높이에 맞춰달라.
이만석: 사람과 사회 ‘이규태의 지하실에 들어가다’를 재미있게 읽었다. 라이프 & 트렌드 ‘장비병 마니아’도 웃으며 읽었다.
김민정: 600호 김보협의 도전인터뷰에서 고속철도(KTX) 여승무원의 생생한 인터뷰로 파업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었다. 부당한 임금을 받는 상황을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확인해줬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 599호 특집 ‘기업범죄는 신의 범죄다’는 법을 교묘히 피해 범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는 기업들의 현실을 잘 밝혔다. 600호 ‘칼로스가 밥상을 진군하다’는 외국 쌀의 밥상 점령을 현실감 있게 부각시켰다. 여기에 식품 안전성 문제만 추가됐더라면. 602호 경제 ‘이 무시무시한 자산불평등’에서 통계수치를 잘 활용했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font class="f9black">
“쇼킹한 날들이었다”</font>
<11기 활동을 마치며>
이만석: 1년간 활동을 했다. 11기 기장을 맡아 회의를 주재하기도 했다. 전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며 힘들었지만 12달 개근하며 지방인들의 의견을 대변해 보람을 느낀다. 사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새 직업도 갖게 됐다. <한겨레21>을 공통분모로 하는 이들을 만나게 됐고 진보적 월간지 <열린전북>의 기자가 됐다. 첫달부터 독편위원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김지혜: 후련하다. 부산과 전주에서 서울을 오가는 게 힘들었는데 한 번도 안빠진 게 자랑스럽다. <한겨레21> 독편위에 참여하다니 운이 좋았다. 서울 지리를 하나도 몰랐는데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찾아가는 법은 누구에게나 설명해줄 수 있게 됐다. 기자마다 문체가 느껴지다니 많이 컸다. 늘 독편위는 쇼킹했다. 사람들 얘기를 들으며 많이 배웠다. 교사가 된 뒤 아이들에게 이 모임을 권유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염인선: 이공계 출신이라 친구들을 만나서도 업무와 관련된 대화로 한정됐는데,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니 즐거웠다. 기사를 되풀이해 읽으면서 생각도 깊어지고. 얼마 뒤 회사에서 영어 말하기 시험을 봐야 하는데 어떤 주제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영어는 둘째 치고 여기서 평소 사고·말하기 훈련을 해놨기 때문에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2008년까지 구독신청을 해놨지만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다. 정신수양에 도움이 된다.
김민정: 시원섭섭하다. <한겨레21>을 충실히 읽어 좋았다. 사람들에게 기사를 권유해줄 수 있었고. 강제성 아닌 강제성 덕분에 주말이 되면 <한겨레21>을 봐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시달렸다. 고맙다. 사회 전공자이다 보니 다른 이들보다 기자들의 사상이나 관점에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면서 모니터링에 혼란을 겪기도 했다. 자유주의나 기술에 대한 태도, 정치적 견해 등에. 아무튼 6개월의 경험은 알찼다.
한윤기: 두 번 떨어지고 붙었던 독편위. 친구들이 내 사진이 뚱하게 나왔다며 구박을 했더랬다. 지면에 내 의견이 실리는 게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 <한겨레21>을 줄 치며 읽겠는가. 쓰다 만 모니터링도 컴퓨터에 많이 저장돼 있다. 난 <한겨레>와 <한겨레21>과 함께 컸다. 선생님이자 친구였다. 신문사를 들락날락하고 남종영 기자, 구둘래 기자 얼굴도 보니 신기하고. 사랑해요, <한겨레21>! 너무 느끼한가.
최영선: 잡지로도 인적 네트워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동안 이렇게 저렇게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돼버렸다. 안부가 궁금할 만큼 사적인 사이가 된 듯하다. 시사 문제에 대해 분석적이고 합리적인 시각을 가지게 됐다는 말은 새삼 하지 않아도 알 터. 진지한 고민을 함께 나눈 자리였다. 추억은 길게 갈 것 같다. 막판에 ‘독자가 뛰어든 세상’을 남기고 마칠 수 있어 천만다행이다. 모두 행복하길.
최수근: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게 엊그제인데 벌써 활동을 접는다니 아쉽다. 나름대로 모니터링에 대한 이해와 사안에 대한 접근법을 배웠다. <한겨레21>을 집중 탐독할 수 있어 즐거움이 더 컸다. 12여 년 전의 첫 마음 그대로 언제까지나 <한겨레21>을 아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이 인연이 계속 이어질 듯하다. 시원한 맥주 한잔하며 즐거웠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윤 정권 퇴진 집회’ 경찰·시민 충돌…“연행자 석방하라” [영상]
숭례문 일대 메운 시민들 “윤석열 퇴진하라” [포토]
“자존심 무너져, 나라 망해가”…야당 ‘김건희 특검’ 집회도 [영상]
이시영, 아들 업고 해발 4천미터 히말라야 등반
“잘못 딱 집으시면 사과 드린다”…윤, 운명은 어디로 [논썰]
“비혼·비연애·비섹스·비출산”…한국 ‘4비 운동’ 배우는 반트럼프 여성들
“대통령이 김건희인지 명태균인지 묻는다”…세종대로 메운 시민들
불과 반세기 만에…장대한 북극 빙하 사라지고 맨땅 드러났다
지구 어디에나 있지만 발견 어려워…신종 4종 한국서 확인
명태균 변호인, 반말로 “조용히 해”…학생들 항의에 거친 반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