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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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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캠페인] 아직은 포기할 수 없어요

등록 2006-10-21 00:00 수정 2020-05-03 04:24

기지 성토 공사가 시작되고 사회의 관심도 사그라든 겨울의 문턱…보신각에 모여든 문화예술인들이 다시 평화의 노래를 시작하다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평택 싸움은 이제 종착역을 향해 치닫고 있다. 국방부는 평택 대추리·도두리 땅 285만 평을 미군에 내주기 위한 기지 성토 공사를 한 달 전부터 시작했다. 평택 대추리 1반과 맞닿아 있는 캠프 험프리 쪽 펜스는 한 달 전부터 틔어 있고, 그곳을 통해 대형 트럭들이 바쁘게 오가며 모래를 실어나르는 중이다.

미군은 “안성천에 홍수가 나면 부대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이전 터 285만 평을 5~6m 높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에 드는 예산만 해도 5천억원이나 된다. 그나마 한 점 다행이랄까. 9월25일 국방부는 “미국에 얘기를 잘해 성토 비용을 절반 수준으로 줄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보도자료를 돌렸다. 국방부는 지난 9월 주민들을 상대로 건 명도 소송 결과가 나오면 주민들을 집에서 쫓아내고 건물을 부술 수 있다. 곧 겨울이 다가오는데, 국방부의 야만이 어디까지 계속될지 지켜볼 뿐이다.

땅바닥에 쳐박힌 문정현 신부>

사람들은 이미 평택을 기억에서 지운 것 같다. 지난 두어 달 동안 한국 사회는 작전통제권 환수에서 북핵 실험에 이르는 롤러코스터 안에서 미약한 현기증을 느끼고 있다. 지난 추석 마을을 찾은 자식들은 부모의 손을 잡고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을로 접어드는 원정3거리 앞에서는 경찰의 초법적인 불심검문이 일상화됐고, 마을로 들어서는 경찰을 막아서던 문정현 신부는 10월11일 땅바닥에 얼굴이 처박힌 채 손과 발이 뒤로 꺾이는 수모를 당했다. 신부는 심장 발작을 일으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고, 결국 평택 굿모닝병원으로 실려가고 말았다. 신부에 대한 폭력이 머쓱했는지, 경찰은 “신부를 놓아달라”고 애원하던 주민 2명을 연행했다가 다음날 석방했다. 5월4일, 한국 사회는 고령의 자국민들을 상대로 군대를 동원한 국방부를 용인했는데, 평택 싸움의 성패는 어쩌면 그날 결정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10월13일 저녁 7시 서울 종로 보신각에 모인 문화예술인들은 “평택을 아직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10월13일부터 11월11일까지 30일 동안 매일 보신각 앞에서 ‘평화를 원한다면 대추리를 지켜라’는 이름으로 거리 예술제를 진행하기로 했다. 행사에는 정태춘, 전인권, 김C, 윤도현밴드, 안치환, 노래를 찾는 사람들, 이지상 등 가수들과 마임이스트 유진규, 시인 손세실리아, 판화가 류연복 등이 함께한다. 문화예술인들은 ‘행동 선포문’에서 “우리는 비장한 마음으로 다시 바람찬 종로 네거리에 선다”며 “우리의 바람은 딱 하나, 평화”라고 밝혔다.
행사 첫날 노래를 부른 가수 정태춘씨의 고향은 평택 도두1리다. 지난 2월 그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그의 노래에는 해질 녘 황새울로 저무는 노을빛이 느껴지고, 너른 들판에서 전해오는 선선한 짚풀 냄새가 차오르고, 그 안에 깃들였던 서글픈 초가집의 풍경이 떠오른다”고 적었던 것 같다. 그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와 대추리·도두2리 주민 주거권 옹호를 위해 ‘들 사람들’이란 문예인 공동행동을 꾸렸다. 그들은 2004년 추수가 끝난 논에 모여 ‘들이 운다’는 이름의 평화 축전을 벌였고, 2005년 8월에는 광화문 앞에서 ‘평화 그 먼 길 간다’는 제목으로 석 달 동안 노래했다. 3월15일에는 대추리의 논을 작살내러 들어온 포클레인을 막다가 경찰에 연행돼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그의 노래에 나오는 ‘선말산’이나 ‘아리랑 고개’ 등의 지명의 고향은 이곳 평택이다.

10살 시은이의 편지가 도착하다

10월13일 기자의 책상으로 뒤늦은 편지가 한 통 배달돼왔다. 경남 진주에 사는 시은(10)이는 경찰과 군인 1만3천여 명이 평택 대추리를 둘러싸고 초등학교를 부순 5월4일 편지를 부쳤다. 편지는 다섯 달 동안 ‘독자란’을 담당했던 기자의 책상 속에서 잠자고 있었다. “저는 여태 평택이라는 곳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뉴스에 나와서 부모님께 여쭤보았더니 평택에 미국 군인들이 들어가려고 하면서 그곳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내쫓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까 시골에서 과수원을 하시는 외할머니 생각도 나고 기분이 무척 안 좋았습니다.” 또박또박 띄어쓰기와 철자법이 구사된 글씨가 보기 좋았다.
시은이는 5월4일 ‘평택의 야만’을 두고 볼 수 없었던지 어린이날 용돈으로 할머니가 주신 5천원을 다시 봉투에 넣어 편지를 보내왔다. 그는 이전에도 “해골 스티커를 사려고 모았던 용돈을 부모님과 함께 보냈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우리나라에는 저보다 나이도 많고 저보다 똑똑한 어른들이 분명히 많이 있을 텐데 왜 모두 평택에 이렇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데도 함께 말리지 않지요? 저는 정말 그것이 너무너무 궁금합니다.” 어떤 어른이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 여러 번 지웠다 쓴 흔적이 분명한 연필 글씨였다.



[들이운다] 유치장 밥은 처음 먹어 봤어

특수공무집행방해래여, 뭐 법이 그렇다니 그런가 부다 하는 거지.

▣ 이태헌(61)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65

대문 앞까지 방패를 든 경찰들이 줄지어 다니는 것에 항의하던 주민들이 다치고 경찰서에 끌려갔다. 이태헌 아저씨는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연행돼 하루 동안 유치장에 갇혀 있었다.




경찰들이 집 앞으로, 대문 바로 앞까지 그렇게 다니니까 항의한 거지. 1반뜸에서는 집 안에 있어도 길 옆으로 군홧발 소리가 들린다잖아. 문 신부님이 호통을 치니까 경찰들이 신부님을 뺑 둘러싸서 연행하려고 하잖아. 그걸 보고 죽기 살기로 달려드니까 잡아가잖아. 경찰서 문턱에 처음 한번 간 건데 뭐. 그런 데 갈 거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지. 콩밥, 콩밥 말만 들었지 꽁보리밥은 처음 먹어본 거지. 뭐 맛있게 먹었어. 처음 먹어본 거니까. 내가 잘못한 게 있어야지. 특수공무집행방해래여. 뭐 법이 그렇다니 위법이라니께 그런가 부다 하는 거지. 다 위법이고 불법이라는데 어쩔겨.
나는 저 헌 대추리에서 쫓겨났어. 그때 대여섯 살 됐을 때니께 아무것도 모를 때 쫓겨났지. 부모님하고 동생들하고. 막내동생이 태어났을라나, 갓난쟁이 땐가. 난 빨개벗고 돌아다녀서 기억 하나도 안 하지. 그냥 뛰어놀 줄만 알았지. 뭘 알어. 열여덟, 열아홉 살 때만 해도 철조망이 하나도 없었어. 헌 대추리 들어가면 패랭이꽃, 백합, 딸기 그런 것들이 지천이었어. 그때는 열다섯만 돼도 소 먹이면서 돌아다녔지. 소먹이는 것이 장가갈 밑천이고, 시집갈 밑천이고 애들 학교 갈 밑천이니께 소 한두 마리씩 다 있었어. 소 풀 뜯어다가 말리고 하느라고 소 풀 베러 비행장 안에 헤매고 돌아다녔당께. 그러다가 미군 헌병들한테 걸리면 잡혀가는겨. 나도 몇 번 잡혔지. 풀도둑질했다고. 헌병대에서 평택경찰서로 넘기면 거기서는 금방 풀어주고 그랬지. 노상 잡으러 다니기 귀찮으니께 패스를 내줬어. 미군사령부에서 허가를 내주는 거여. 직인 찍어서. 귀찮으니께.
패스 있는 사람들은 그거 가지고 풀 베러 다녔지. 그때 소 기르는 게 유행이었어. 송아지 새끼 나서 길 좀 들이면 파는 거지. 코 뚫어서 길들이고 1년 먹이다가 파는 거야. 밭에서 소가 새끼 뒤에 달고 일하면 에미가 지치는 게 아니라 송아지가 지쳐. 송아지가 계속 따라다닌 거 아녀. 무논에서 같이 따라다니면 송아지가 지쳐.
이장이 걱정이여. 오늘도 재판을 그딴 식으로 하는 놈들이 어딨어. 다들 부아가 나서 못 살잖아. 최후진술 지난번에 안 했으니께 한번 더 할 거냐고 물어보고 안 한다고 했더니 11월3일에 재판한다고 그냥 끝내는겨. 이장 엄마는 밖에 나가서 울고 그랬지 뭐. 주민 대표를 얼른 내보내고 대화를 하든가 해야 할 거 아니여. 우리가 물러나든 지들이 물러나든. 주민대표가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그러는 거여. 무서우니께 격리시켜놓고서 그러는 거 아니여. 무슨 죄가 있다고 죄 없는 사람 볼모로 잡아놓고 뭐하는 짓이여.
글·사진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진재연






[평팩 평화의 땅 1평 지키기] 스크럼에 갇힌 평화영화제

108,351,766
10월13일 현재 1억835만1766원

10월12일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시민단체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활동가들은 1시간 동안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위 진압을 잘한다는 ‘선봉 1기동’이 쳐놓은 스크럼 속에 갇혀야 했습니다. 평통사는 10월26일부터 4일 동안 이제는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이름이 바뀐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평화영화제 ‘백 더하기 백’을 개최하기로 하고 경찰청으로부터 장소 사용 승인을 받았습니다. 평통사는 영화제에서 평택의 투쟁을 그린 다룬 기록영화 을 상영하려 했습니다. 경찰청은 뒤늦게 “장소 사용을 허가할 수 없다”고 말을 바꿨고, 항의 기자회견을 봉쇄하기 위해 평통사 활동가들을 인의 장막으로 가두었습니다. 스크럼 안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인권’과 경찰이 생각하는 ‘인권’ 사이에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해야 했습니다.

계좌이체 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주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문의 평택 범대위(031-657-8111), 홈페이지 www.antigizi.or.kr,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59-2 마을회관 2층 (우편번호 451-802)

권혁 이동성(12만원) 이재인(2만원) 최영숙(3만원) 김지현(2만원) 최창덕(10만원) 전남대청사(5만4050원) 선안나(5만원) 이현숙(5만원) 신임재(6천원) 진이정이아빠(4만원) 은혜와석진(2만원) 차보경힘내세(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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