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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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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캠페인] 대추리의 질긴 벼가 익었다

등록 2006-09-28 00:00 수정 2020-05-03 04:24

철조망이 가리지 못한 논을 찾아 여름내 땀 흘린 주민들의 결실 …마른 땅을 뚫고 자란 7만5천 평의 벼가 본격적인 수확을 기다려

▣ 평택 대추리=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지난해 12월 처음 평택 대추리를 찾았을 때 주민들의 집회는 늘 “내년에도 농사짓자”로 끝나곤 했다. 그 무렵 추수가 끝난 평택 들판은 매서운 겨울 추위에 얼어붙어 있었다. 대추리 이주자 두시간은 “저 넓은 땅에서 다 익은 벼들이 누런 물결을 일으키는 광경은 말로 표현 못할 장관”이라고 말했다.

농민들의 몸부림에 벌금 선고한 법원

해가 지나자 주민들의 집회 구호는 “올해에도 농사짓자”로 바뀌어 있었다. 농민들은 1월3일 평화의 트랙터를 몰고 전국을 순례하며 다른 지역 농민들과 만나 평택과 평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때 도두2리에 사는 정만진(40)씨는 “논두렁을 달려야 하는 트랙터가 아스팔트를 달린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트랙터들의 굉음이 안타까워 그날 기사에 “트랙터는 아스팔트를 어루만지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고 썼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기자에게 (다른 평택의 농민들이 그랬듯) ‘정만진씨’에서 ‘만진이 형님’으로 바뀌어갔다.

평택의 농민들은 국방부의 농수로 차단에 대비해 마른 논에 바로 볍씨를 뿌리는 ‘건답직파’ 방식을 도입해 농사를 짓기로 했다. 그들은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새 농법을 택하는 데 불안함을 느꼈다. 신종원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조직국장은 “잘만 하면 모내기보다 수확이 더 좋을 수도 있다”며 주민들을 다독였고, 김택균 대책위 사무국장은 몰려든 기자들에게 “농사에 방해되니 논두렁 밖으로 물러나라”고 소리쳤다. 4월7일 국방부는 포클레인을 몰아 주민들의 농수로를 파괴했고, 5월4일에는 대추초등학교를 부수면서 대추리·도두리 285만 평 들판을 철조망으로 둘러쌌다. 기자는 “올해 농사는 이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그들은 철조망이 미처 다 가리지 못한 논을 찾아 농약을 뿌리고 피를 뽑았다. 컴퓨터를 두드려 글을 쓰는 기자는 땅에 대한 농민들의 애착을 이해할 수 없었다. 5월의 봄볕을 받아안고 기어이 싹을 틔워낸 볍씨들은 6월이 되자 제법 푸른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농민들은 들에 물을 제대로 대지 못했고, 머잖아 벼를 말려 죽이는 해충도 들끓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그 가난한 땅에 한 개에 1만1천원 하는 농약을 아낌없이 뿌려댔다. “보통 때는 땅 한 구간에 농약 6~7개면 충분했지만, 이 땅에는 농약이 그보다 2~3배는 많이 들어갔다고.” 김택균 사무국장이 말했다. 그는 “논 한 구간에 뿌려댄 농약값만 15만원꼴”이라며 “그나마 제대로 수확이나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람보다 강한 것은 결국 자연이었다. 농민들은 “모내기를 한 벼들이었으면 바로 말라죽었겠지만, 제 힘으로 땅을 뚫고 자라나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입을 모았다. 7월이 되자 살아남는 벼들은 안성천 너머 불어오는 바람에 제법 거대한 물결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김 사무국장은 “새로 수확한 쌀을 팔아 그동안 투쟁 과정에서 진 빚을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내 땅을 지키겠다”는 농민들의 몸부림을 사진으로 찍어 검찰에 제출했고, 검찰은 이를 모아 농민들을 기소했으며, 법원은 농민들에게 수십~수백만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그들은 머잖아 5월4일 이뤄진 평택의 야만을 저지르기 위해 들어간 비용을 농민들에게 청구할 것이다.

대추리의 마지막 추수인가

9월15일, “오늘 대추리에서 첫 추수가 있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대추리 4반에서 철조망에 갇힌 평택 285만 평을 굽어보는 문무인상 쪽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이정오(70)씨네 1500평이었다. 국방부와 경찰이 몰려들어 대추리·도두리의 빈집 74채를 부수고 떠난 지 이틀 만에 이뤄진 추수에 마을은 흥겨운 잔치 마당이 됐다. 이날 추수한 벼는 흑향미로, 다른 백미나 흑미보다 빨리 자라는 급조생종이다. 대책위에서는 이날 벤 1500평 한 구간에서 많으면 25가마의 소출을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쌀은 4kg 한 봉지에 1만원 정도로, 다음주 월요일 정도면 일반 백미와 함께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다. 대책위에서는 전체 285만 평에서 추수를 기대할 수 있는 땅은 7만5천 평 정도라고 밝혔다. 보통 1500평짜리 땅 한 구간에서는 쌀 35~40가마가 나지만, 대책위에서는 20가마 정도 소출을 기대하고 있다.

9월22일 찾은 평택 대추리는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주민들은 9월24일 4차 평화대행진이 끝나면 본격적인 추수에 나설 예정이다. 연합뉴스는 “대추리의 마지막 추수”라는 제목으로 그보다 사흘 뒤에 이뤄진 도두리 쪽 추수 장면을 사진으로 담았다. “내년에도 농사짓자”는 농민들의 외침은 그렇게 현실이 됐다. 대추리에게도, 대추리를 허물었던 국방부의 포클레인에게도 추석은 코앞에 다가와 있다. 안성천 너머 해가 저물었고, 주민들은 다시 촛불을 들고 집회가 열리는 농협 창고로 향했다.


[들이운다] 대추리의 질긴 벼가 익었다

철조망이 가리지 못한 논을 찾아 여름내 땀 흘린 주민들의 결실… 마른 땅을 뚫고 자란 7만5천 평의 벼가 본격적인 수확을 기다려

▣ 평택 대추리=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지난해 12월 처음 평택 대추리를 찾았을 때 주민들의 집회는 늘 “내년에도 농사짓자”로 끝나곤 했다. 그 무렵 추수가 끝난 평택 들판은 매서운 겨울 추위에 얼어붙어 있었다. 대추리 이주자 두시간은 “저 넓은 땅에서 다 익은 벼들이 누런 물결을 일으키는 광경은 말로 표현 못할 장관”이라고 말했다.

농민들의 몸부림에 벌금 선고한 법원

해가 지나자 주민들의 집회 구호는 “올해에도 농사짓자”로 바뀌어 있었다. 농민들은 1월3일 평화의 트랙터를 몰고 전국을 순례하며 다른 지역 농민들과 만나 평택과 평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때 도두2리에 사는 정만진(40)씨는 “논두렁을 달려야 하는 트랙터가 아스팔트를 달린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트랙터들의 굉음이 안타까워 그날 기사에 “트랙터는 아스팔트를 어루만지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고 썼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기자에게 (다른 평택의 농민들이 그랬듯) ‘정만진씨’에서 ‘만진이 형님’으로 바뀌어갔다.

평택의 농민들은 국방부의 농수로 차단에 대비해 마른 논에 바로 볍씨를 뿌리는 ‘건답직파’ 방식을 도입해 농사를 짓기로 했다. 그들은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새 농법을 택하는 데 불안함을 느꼈다. 신종원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조직국장은 “잘만 하면 모내기보다 수확이 더 좋을 수도 있다”며 주민들을 다독였고, 김택균 대책위 사무국장은 몰려든 기자들에게 “농사에 방해되니 논두렁 밖으로 물러나라”고 소리쳤다. 4월7일 국방부는 포클레인을 몰아 주민들의 농수로를 파괴했고, 5월4일에는 대추초등학교를 부수면서 대추리·도두리 285만 평 들판을 철조망으로 둘러쌌다. 기자는 “올해 농사는 이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그들은 철조망이 미처 다 가리지 못한 논을 찾아 농약을 뿌리고 피를 뽑았다. 컴퓨터를 두드려 글을 쓰는 기자는 땅에 대한 농민들의 애착을 이해할 수 없었다. 5월의 봄볕을 받아안고 기어이 싹을 틔워낸 볍씨들은 6월이 되자 제법 푸른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농민들은 들에 물을 제대로 대지 못했고, 머잖아 벼를 말려 죽이는 해충도 들끓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그 가난한 땅에 한 개에 1만1천원 하는 농약을 아낌없이 뿌려댔다. “보통 때는 땅 한 구간에 농약 6~7개면 충분했지만, 이 땅에는 농약이 그보다 2~3배는 많이 들어갔다고.” 김택균 사무국장이 말했다. 그는 “논 한 구간에 뿌려댄 농약값만 15만원꼴”이라며 “그나마 제대로 수확이나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람보다 강한 것은 결국 자연이었다. 농민들은 “모내기를 한 벼들이었으면 바로 말라죽었겠지만, 제 힘으로 땅을 뚫고 자라나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입을 모았다. 7월이 되자 살아남는 벼들은 안성천 너머 불어오는 바람에 제법 거대한 물결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김 사무국장은 “새로 수확한 쌀을 팔아 그동안 투쟁 과정에서 진 빚을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내 땅을 지키겠다”는 농민들의 몸부림을 사진으로 찍어 검찰에 제출했고, 검찰은 이를 모아 농민들을 기소했으며, 법원은 농민들에게 수십~수백만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그들은 머잖아 5월4일 이뤄진 평택의 야만을 저지르기 위해 들어간 비용을 농민들에게 청구할 것이다.

대추리의 마지막 추수인가

9월15일, “오늘 대추리에서 첫 추수가 있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대추리 4반에서 철조망에 갇힌 평택 285만 평을 굽어보는 문무인상 쪽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이정오(70)씨네 1500평이었다. 국방부와 경찰이 몰려들어 대추리·도두리의 빈집 74채를 부수고 떠난 지 이틀 만에 이뤄진 추수에 마을은 흥겨운 잔치 마당이 됐다. 이날 추수한 벼는 흑향미로, 다른 백미나 흑미보다 빨리 자라는 급조생종이다. 대책위에서는 이날 벤 1500평 한 구간에서 많으면 25가마의 소출을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쌀은 4kg 한 봉지에 1만원 정도로, 다음주 월요일 정도면 일반 백미와 함께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다. 대책위에서는 전체 285만 평에서 추수를 기대할 수 있는 땅은 7만5천 평 정도라고 밝혔다. 보통 1500평짜리 땅 한 구간에서는 쌀 35~40가마가 나지만, 대책위에서는 20가마 정도 소출을 기대하고 있다.

9월22일 찾은 평택 대추리는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주민들은 9월24일 4차 평화대행진이 끝나면 본격적인 추수에 나설 예정이다. 연합뉴스는 “대추리의 마지막 추수”라는 제목으로 그보다 사흘 뒤에 이뤄진 도두리 쪽 추수 장면을 사진으로 담았다. “내년에도 농사짓자”는 농민들의 외침은 그렇게 현실이 됐다. 대추리에게도, 대추리를 허물었던 국방부의 포클레인에게도 추석은 코앞에 다가와 있다. 안성천 너머 해가 저물었고, 주민들은 다시 촛불을 들고 집회가 열리는 농협 창고로 향했다.




[평화의 땅 지키기] 한가위를 위하여

107,617,191원
9월25일 1억761만7191원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에서 추수가 시작됐습니다. 한가위도 성큼 다가왔습니다. ‘대추리’(大秋里)는 가을마다 풍년이 드는 풍요로운 고장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한가위 때 친척들과 만나 평택 대추리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요. 올해도 기어코 농사를 지어낸 농민들은 지금 이 땅에서 내년에도, 그리고 그 다음해에도 계속 농사를 짓고 싶다고 말합니다. 봄은 누구에게나 봄이어야 하고, 한가위는 누구에게나 한가위여야 합니다.


계좌이체 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주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문의 평택 범대위(031-657-8111), 홈페이지 www.antigizi.or.kr,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59-2 마을회관 2층 (우편번호 451-802)

봉문수 김한수(4천원) 이시진 정수용(10만원) 지영(5만원) 강혜원(10만원) 장은미(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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