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최후통첩에도 자투리땅에 뿌린 볍씨는 푸르게 돋아나… 9월에 열릴 4차 평화대행진까지 대추리 마을은 남아 있을까
▣ 평택=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7월의 평택 황새울은 비에 젖어 있었다. 들에 나가지 못하는 대추리, 도두2리 농민들은 하루 종일 마을회관에 모여앉아 고스톱을 쳤다. 이따금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터져나왔고, 점수 계산을 놓고 거친 실랑이가 오가기도 했다. 김택균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사람들이 많이 지친 게 사실이지만, 끝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겠다”고 말했다. 고스톱판에서 ‘광’을 팔던 홍민의(49)씨가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고, 방효태(70) 아저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심한 표정으로 촛불집회장을 향했다.
“어르신들이 끔찍하게 가꾼 벼”
그러는 사이 정부는 평택 주민들에게 최후통첩을 했다. 그들은 7월25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기자들을 모아놓고 브리핑을 열었다.
김춘석 국무조정실 주한미군대책기획단 부단장은 “주민들이 대화를 계속 거부해 어쩔 수 없이 법원에 명도소송을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명도’란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을 밖으로 몰아내는 것을 뜻한다. 김 부단장은 “더 이상 대화를 이유로 주민들의 이주·생계 대책을 미룰 수 없는 상태”라며 “대화만으로는 해결이 힘들다는 판단에서 기지 이전 사업의 차질 없는 추진을 위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주민들과의 충돌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지만 이를 입 밖에 내진 않았다. 그들은 5월4일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충돌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도 않을 것이다. 주민들은 잡혀간 김지태 이장의 석방을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달고 있다.
사람보다 강한 것은 무심한 자연이다. 평택의 철조망이 미처 다 가리지 못한 자투리 땅에 뿌려진 볍씨들은 끝내 싹을 틔워 안성천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푸른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김 사무국장은 “모내기를 한 벼들이었으면 바로 말라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 힘으로 마른 땅을 뚫고 올라온 놈들의 질긴 생명력이 고마웠다.
5월4일 대추초등학교 철거로 실의에 빠진 농민들이 몸을 추슬러가며 가여운 싹을 가꿨다. “동네 어르신들이 정말 끔찍하게 가꾼 벼들이야.” 김 사무국장이 말했다. 보통 1500평 한 구간에 한 개에 1만1천원 하는 농약을 6~7개씩 뿌리지만, 이 논에는 갑절 이상의 공을 들인다. “여기에는 우리가 농약을 2~3번씩 쳤거든. 아무래도 보통 논보다 신경을 못 쓰니까.” 그 농약 값만 15만원이다. 평택의 논 한 구간에는 쌀 35가마가 나오는데, 농민들은 이 논에서는 그 절반 수준인 20가마 수확을 기대하고 있지만, 그들의 소망이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정부는 브리핑에서 농민들의 불법 영농을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살아난 생명을 다시 죽이는 것은 농민이 할 짓이 아니다”는 대추리 농민들의 양심은 “국유재산법 제56조의 규정에 따라 2년 이하나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것”이라는 공권력 앞에서 무기력해 보였다.
들에 나가지 못하는 노인들도 노인회관에서 파리를 잡으며 소일했다. 박언년(79)씨는 대청댐 수몰지역 이주민으로 1979년 도두2리로 이주했다. 그는 그때 51살이었다. “지금 정부 하는 꼴이 그때보다 훨씬 못해 보여.” 노인은 귀찮게 달려드는 파리를 향해 파리채를 휘두르며 말했다. “그때 나라에서 안중 쪽에 농사지을 땅을 마련해줘서 여남은 가구가 아직 그쪽에 산다고.” 박씨네는 그때 받은 보상금으로 도두2리에 12마지기와 9마지기짜리 땅 2곳을 샀다. 그 땅으로 지금까지 농사지어 먹었다. 그는 “힘들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내 평생 4번이나 쫓겨나며 살았지만 이 꼴이 나기는 평생 처음”이라고 말했다. 노인회관 벽에 붙은 사진을 가리키며 “언제 찍은 것이냐”고 물었더니,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때는 이렇게 쫓겨날 줄 알았나. 평생 여기서 살 줄 알았지. 찍고 싶은 사람들은 찍고 싫은 이들은 안 찍고.”
풀이 눕는다, 풀이 일어난다…
두어 달 만에 찾은 도두2리 마을회관 앞 논에도 푸른 물결이 넘실대고 있었다. 5월17일치 ‘원샷’ 코너에 그 들의 사진을 찍어 소개했는데, 그때 기자는 그 싹들이 얼마 못 가 말라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평택에서, 주민들은 다시 트랙터에 시동을 걸었다. 그들은 철조망이 미처 다 둘러싸지 못한 한 뼘 땅을 찾아 모내기 준비를 했다. 철조망 안에서 군인들의 포클레인은 사정없이 논을 작살내고 있었고, 그 너머에서 농민들의 트랙터는 다친 논을 어루만지며 앞으로 나아갔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어릴 때 읽었던 김수영의 시 한 구절이 떠올라 눈물겨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평택에 모인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농민들은 9월24일 평택에서 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위한 4차 평화대행진을 열기로 했다. 그 행사가 열릴 때까지 마을이 남아 있을지 그저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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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경(78)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69
김석경 할아버지가 ‘소 얘기 하러’ 간다며 급하게 차에 올라타셨다. 평택구치소에 갇혀 있는 아들 김지태 이장을 보고 돌아오신 할아버지는 5시가 되자 오늘도 어김없이 소밥 주러 가신다.
소 얘기 하러 갔다온 겨. 얼마 전에 송아지 뗀 게 있는데 그게 발정났거든. 새끼 낳으라고 수정시킨 건지 아닌지 물어보러 간 겨. 근데 안 시켰대. 그래서 바로 수의사한테 전화해서 3만원 주고 수정시켰어. 지난번 경찰 때문에 불났을 때 송아지 8마리 중 2마리 죽었잖아. 연기가 차서 골병 들어 죽었다고. 소가 놀라서 뺑뺑 돌면서 송아지를 차고 그러니께 골병 들어 죽은 겨. 그저께 지킴이들이 똥 치웠어. 소똥. 깨끗하게 치웠어. 송아지가 똥이 무르팍까지 빠지니 얼마나 불쌍해여. 아이구.
여태 두 달 동안 면회 두 번 갔어. 오지 말랜다고 며느리가 저 혼자 가. 걱정한다고 그러는 거지. 이장 잡혀가고 침울해가지고 숨을 못 쉬었어. 콱 막혀가지고. 울화병 생긴 겨. 약 먹고 괜찮아졌어. 밥 먹을라고 하면 숨이 맥혀서 그런 겨. 신경써서 그런 거래. 의사가 나서지 말래는데 어떻게 안 나서. 아휴. 늙은이가 앞장서야지 젊은 사람들은 다 붙잡아가는데. 늙은이가 앞장서야지.
농사질 때보다 더 하얘졌어. 농사질 때는 새까맣더니. 야, 너 집으로 나오고 봐야 돼. 재판할 적에 판사 이기려고 자꾸 따지면 안 돼. 그냥 집으로 나오고 보자, 얘. 그랬더니 그냥 웃더라고. 판사 이기려고 혀, 재판하는 데 가보면. 지가 옳대. 그러니 그거 내보내겄어? 내보낼 것도 안 보내지.
저 철조망 안에 살았지. 왜정 때는 신발도 없어서 지푸라기로 짚신 삼아가지고 살았어. 짚신 봤어? 그거 내가 삼아가지고 다녔어. 다른 애들은 지 아버지 할아버지가 삼아줬지만 난 내가 했지. 아버지가 12살 때 돌아가셨지. 왜정 때 일본놈들 전쟁하느라고 물자가 아무것도 없잖아. 놋 식기도 총알 맨든다고 다 걷어갔어. 비행장 쌓는다고 해서 산도 들어가고 논도 들어갔지. 45년 그놈들 쫓겨나고 몇 년 동안 내버려두더라고. 그래서 농사 지어먹고 그랬는데. 52년에 미국놈들 들어와서 쓱싹쓱싹하더니 비행장 금방 다 해. 그때 쫓겨왔잖아. 전쟁해야 한다는데 어떡혀. 그냥 무데뽀로 쫓겨나왔지. 천막 하나씩에 두 집이 살았어. 울타리 다 부수고 화장실도 부수고 그 지랄했지. 그 이튿날 다 싸가지고 나왔지. 아휴 지겨워.
천막에서 소하고 사람하고 같이 살았어. 하얀 광목으로 맨든 천막 한쪽에 소 매어놓고. 천막 안에 두 집이 소랑 같이 살았어. 어떤 사람들은 그것도 다 못 차지했어. 그 사람들은 땅 파고 막대기로 세워서 지푸라기로 덮어놓고 살았지. 땅속에 들어가면 훈훈해. 덜 추워. 추워서 집은 못 짓고.
노무현이 날강도 같은 놈이여. 그 옛날에 다 민주화하자고 데모하던 놈들이야. 이해찬이 한명숙이 다. 아 그것들이 정권 잡더니 더해. 뭐 군사독재보다 덜한 게 뭐 있어. 정권만 잡으려고 하는 거지. 진짜 민주화 생각하는 게 저러겄어? 말로만 그래. 가만히 보니께 야비한 놈들이여. 진짜 민주화하자고 하는 놈들이 아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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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41,031원
7월28일 현재 1억114만1031원
6개월 만에 여러분의 정성이 1억원을 넘었습니다. 사정은 나쁘지만 평택 주민들은 잘 버티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8월 초가 되면 사람들이 버리고 떠난 빈 집을 철거하기 위해 용역들이 들어올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에는 국방부가 이를 위한 용역업체 선정을 끝냈다는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국방부는 ‘여명의 황새울’ 2막을 준비 중입니다. 은 평택에서, 더 이상의 야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분노와 두려움으로 몸부림치는 주민들의 모습을 더 이상 지면에 소개할 자신이 없습니다.
계좌이체 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주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문의 평택 범대위(031-657-8111), 홈페이지 www.antigizi.or.kr,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59-2 마을회관 2층 (우편번호 451-802)
이재규(3만원) 박붕규(2만원) 민주노총 대구(25만7천원) 박세환(3만원) 하금철(39만9천원) 유수호(5만원) 모로파리(10만원) 문병모(7만원) 문미령(2만원) 박세영(2만원) 김선영(3만원) 장은정(4만5천원) 김세헌 송철호(5천원) 권혁 봉문수 늦봄학교(45만8350원) 강경식(2만원) 문준혁(3만원) 최애리(3만원) 유현숙(11만원) 임종섭(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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