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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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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캠페인] “넌 왜 걷니?” “평화 때문이에요”

등록 2006-07-14 00:00 수정 2020-05-03 04:24

시민들의 관심에서 사라진 평택을 위한 평화 행진 첫날의 여정… 주민·시민단체 활동가·초등 대안학교 학생들의 합창을 들어보라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행사는 서울경찰청 소속 박창호 경사의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시작됐다. “삐~익, 삑! 도로 불법 점거하지 말고 빨리 인도로 올라가세요.” 흥분한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박 경사를 둘러싸고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왜 정당한 행사를 방해합니까. 법대로 하세요.” 7월5일 오전 10시30분, 행진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서울 경복궁 영추문 맞은편 정부종합청사 별관 앞마당의 공기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터질 것 같다.

임순례 감독 “영화인과 농민의 같은 마음”

김정아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김지태 대추리 이장의 구속과 7월에 예정돼 있는 대추리 빈집 철거를 앞두고 뭔가 국민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평택은 6월 대한민국을 휩쓴 월드컵 열풍 이후 시민들의 관심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그사이 대추리 너른 285만 평 땅에는 군인들의 철조망이 설치됐고, 그 안팎에는 깊이 2m 남짓의 참호가 파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방부는 철거 용역을 동원해 주민들이 버리고 떠난 집을 강제로 부술 것이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평택 사태가 이렇게 마무리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군과 경찰이 평택 대추초등학교를 허물어버린 5월4일부터 광화문 촛불집회를 이끌고 있는 서울 대책위 쪽에서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 쪽에 행사를 제안했고, 범대위와 평택 주민들은 이에 기꺼이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평택의 야만에 책임 있는 정부·외교부·미군·경찰·검찰·법원 등을 차례로 찾아다니며, 평화의 염원을 담은 호루라기를 불기로 한 거죠.” 김정아 상임활동가가 말했다. 행진단은 행진 첫날인 7월5일에는 청와대 앞을 출발해 국방부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고 용산 미군기지 옆을 지나 동작대교를 건너 사당역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7월9일까지 90.9km를 꼬박 걸은 뒤 평택 대추리에서 행진을 마쳤다.

걷기란 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김완 문화연대 활동가는 “우리가 아직 평택을 포기한 게 아니라는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침 서울에서 열리는 자유무역협정(FTA) 2차 본협상도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오종렬 범대위 공동대표는 “평택 기지는 미국이 한반도를 군사적으로 종속화하는 것이고, FTA는 이를 경제적으로 관철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행진으로 이에 저항하려 한다”고 말했다. 영화 를 만든 임순례 감독도 “내 땅에서 농사짓고 싶은 농민의 마음과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영화인의 마음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행진단은 정부종합청사와 외교부 청사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평화를 염원하는 호루라기를 불었고, 국방부에서는 군이 시위대를 막으려고 정문 앞에 설치한 바리케이드 위에 “평화를 택하라”고 쓰인 스티커를 붙였다. 서울 종로서·남대문서·용산서·남부서 관계자들이 함께 걸으며 경계 지역을 지날 때마다 다음 경찰서에 행진단을 인계했다. 그들은 행진단에게 “마지막 날 대추리에만 들어가지 않으면 모든 것에 협조하겠다”고 말했지만, 행진단은 거부했다.

행진단은 지하철 4호선 사당역에서 촛불을 밝혔다. 행진 참가자 100여 명은 세 조로 나눠 문화 공연을 열며 고단한 하루를 함께한 서로를 격려했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가 단장이 된 1조는 ‘선봉’, 송태경 팽성대책위 조직부장의 2조는 ‘황새울’, 변연식 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장의 3조는 “평택을 지키자”를 짧게 줄여 ‘평지’로 각각 이름을 붙였다. 2조 황새울이 를 개사한 를 율동을 곁들여 불러 행진단의 박수를 받았다.

장애인 인권 활동가도 휠체어를 끌며…

박김영희 장애여성공감 대표는 이날 전동 휠체어를 끌고 행진에 참가했다. 그는 장애인 인권을 외치며 그동안 수많은 도로·건물·다리 등을 점거해왔고, 그 대가로 경찰로부터 그에 못지않게 많은 소환장을 발부받았다. 박김 대표는 “법을 어기는 사람에게 날아오는 소환장은 무서운 것이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외친 것 때문에 보내오는 소환장은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가 285리 길을 걸어서 평화가 온다면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그 길을 다 걷는다 해도 평화는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평화는 우리가 다가서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초등 대안학교인 삼각산 재미난 학교 학생 38명도 행진에 참가했다. 이 학교 정재훈 교사는 “아이들에게 인권과 평화의 소중함을 가르쳐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길을 걷던 초등학교 3학년 해인이는 “왜 걷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평화 때문에요”라고 답했다. 아이가 ‘평화’의 의미를 완벽히 이해하긴 힘들겠지만, 해인이는 짝궁의 손을 잡고 힘차게 가수 김민기의 을 불렀다. “가자 천리길 굽이굽이쳐 가자 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에 내가 간다.” 도심의 거친 소음에 막혀 아이들의 목소리는 한데 뭉치지 못하고 작은 조잘거림으로 흩어졌다. 언젠가는 그 조잘거림이 커다란 함성으로 변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날이 저물었고, 행진단은 과천의 방과 후 공부방 ‘무지개 학교’에서 첫날 여장을 풀었다.



[들이운다] 조상들부터 다 이사하게 생겼어

여기가 다 바다였어, 그랬던 데가 이렇게 된 겨

정태화(71)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68-22

대추리 아저씨들이 두어 시간을 뚝딱뚝딱하더니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솔부엉이 숲에, 시원한 그늘이 있는 정자가 생긴 것이다. 국방부는 7월 초에 빈집을 철거하겠다는데, 마을에서는 자꾸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빗자루를 들고 먼지를 쓸어내시는 정태화 할아버지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노인들 쉼터지. 노는 장소지. 옛날 말로 하면 정자여. 대추리 정자여. 2006년 7월3일자로다가 정자 하나 맨들었다 그러면 돼. 이거 안 부수면 다행인데 부수면 골치 아프지. 속상하지.


나는 저 산에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산소 다 있어. 또 쫓겨나면 저 조상들부터 다 이사하게 생겼어. 여기를 안 뺏겨야 우리 조상들도 있는 거지. 요즘엔 포클레인 소리가 좀 줄어들어서 좀 편해. 근데 6월30일까지 나가라 그랬잖아. 7월부터 또 그럴까봐 걱정되지.
아이구, 논에 가봐야 혀. 가서 또 두 주먹 뽑고 와야 혀. 그게 원래 내 규칙이여. 그걸 안 하면 밥맛이 없어. 아침에 4시 반이면 나가. 그러다 6시 반에 들어와서 아침 먹고 또 나가지. 농사꾼은 항상 버릇이 있어서. 항상 때가 있거든. 지금 시기를 놓치면 농사 다 버리는 겨. 지금이 젤로 시기인데. 저 지랄로 해놨으니. 저절로 되는 게 아니거든. 사람이 가서 물 조절도 해줘야 하고, 옆에 풀 있으면 죄 뽑아줘야 하고. 만질 거 다 만지고 거름도 줘야 하고 비료도 줘야 하고 약도 줘야 하고.
나는 저 미군 비행장에서 11살에 왔어. 여기가 신대추리, 저기가 구대추리잖아. 11살이면 대략 알 수야 있어도 뭐 그냥 따라오는 거지. 당시 10월달에 왔으니까 추울 때였어. 움 파고 살았어. 그렇게 한 해 겨울을 지낸 겨. 그 이듬해 봄부터 흙으로 뭉쳐서 움집 짓고. 그래서 여태 50년 넘게 산 겨.
여기가 다 바다였어. 저기 새우젓 배가 닿던 데여. 우리 빨개벗고 들어가서 미역 감고 그랬던 데여. 그랬던 데가 이렇게 된 겨. 도두2리 저 들판 저쪽이 다 물 건너 동네였어. 19~20살부터 기계로 져서 원장도 만들고 둑도 쌓고 그랬지. 미국놈들이 밀가루 주는 거 가지고 폐품 수집했어.
여태 고생했지. 난 부모한테 받은 재산 없었어. 생전 사기를 3번 맞으며 살았는데, 그래도 맘 착하게 살으니께 먹고살게끔 돼 있데. 난 학교도 못 다녔어. 아이구 그 사연 얘기하면 말도 못해. 형제가 둘인디. 나는 작은 자식이고 우리 형님은 큰 자식 아닌가베. 왜 그렇게 옛날에는 큰 자식만 그렇게 공부 가르친 거여. 작은 자식은 쇠풀만 베어오라고 하고. 쇠풀 조금 베어오면 밥도 안 줬어. 그렇게 고생했어. 그러면 뭘 혀. 우리 형님은 일찍 돌아가신 겨. 그래서 내가 자식 똑같이 취급하라 그러는 겨. 나는 딸 다섯, 아들 하난디 똑같이 가르쳤어. 근데 월사금 한 번 내는 데 쌀 2말이었어. 2말 값이 없어서 월사금을 못 낼 정도로 살았어. 쌀 2말 값이면 다섯 식구가 죽 쒀서 멀겋게 두 달을 먹는 양이여. 그런 정도니께 못 보내지. 그러니께 내가 지금 생각하면 우리 아버지가 나 학교 안 보낸 거 이해가 돼. 허허.
글·사진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진재연




[평택 땅 1평 지키기] 불심검문을 막아 주세요

96,331,931원
7월7일 현재 9633만1931원

평택 지킴이 진재연씨는 “대추리·도두리에서 벌어지는 불법 검문이 도를 넘었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마을로 들어오는 젊은이들을 막아놓고 신분증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경찰의 불심검문을 거부할 권리가 있지만, 현장에 나선 경찰들은 이에 대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들은 “불심검문을 거부하겠다”는 젊은이들을 윽박지르고 마을 밖으로 쫓아내고 있습니다. 은 대추리와 도두리는 농민들이 농사를 짓는 마을이라고 믿습니다. 그곳은 경찰이 주민들과 방문객들의 인권을 마음 놓고 유린할 수 있는 ‘거대한 포로수용소’가 아닙니다.

계좌이체 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주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문의 평택 범대위(031-657-8111), 홈페이지 www.antigizi.or.kr,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59-2 마을회관 2층(우편번호 45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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